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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모든 사랑은 가장 늦게 떠난다
게시물ID : lovestory_930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87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2/04/02 15:42:3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홍석하, 망각을 기다리며




꽃잎이 지는 날에는

다들 떠나고 빈 자리

산그림자만 길게 누워있고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르면

꽃을 필텐데

서운해서인지

바람이 서렁거린다


마음 한 구석이 아직

비어있는 것은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서인가


할 말 다 못하고 사는 세상

남을 미워하거나

눈 흘길 일 머 있겠는가


꽃이 피면 피는 대로

꽃이 지면 지는 대로

웃으며 그냥 게지


슬퍼서 눈물 흘릴 일 있어도

외면하고 돌아서면

잊어지는 것을

 

 

 

 

 

 

2.jpg

 

신현락, 모든 사랑은 가장 늦게 떠난다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겠다던 너에게

편지가 오고 그렇게 가을이 왔다

이미 가을이 오기 전 빗속에서 가을 냄새를 맡던

너의 병적인 감수성으로 예감하던

이별이었다 읍내 거리에서는 먼지바람을 이고

코스모스가 피고 지고 편지 속에선

곱게 말린 하얀 꽃잎이 낙루의 흔적은

보이고 있었다 너의 글자들이 먼 구름을 이끌어

거리에는 점점이 빗방울 꽃잎으로 번지어가고

흘러가는 꽃잎들 꽃잎들

시외버스 정거장 낡은 벽에

한때의 유치한 사랑의 맹서처럼 쓰여진 낙서들

빗물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떠나가고 떠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귀퉁이가 부서져 내린 시멘트 의자에 앉아서

네 편지를 거듭 읽는다

한 사람을 품에 안는 것도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도

꽃이 피고 지는 것만큼이나

아름답고 벅차고 슬픈 일이었으므로

나는 우리의 만남과 이별이 덧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지금 떠나가는 사람은 사랑을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사랑이든지

이별에 앞서 떠나가는 사랑은 없다

모든 사랑은 가장 늦게 떠난다

네가 사랑에 앞서 결행한 이별의 전언이

흔들고 있는 어느 가을날 오후의 정거장

흙탕물을 튕기며 버스는 떠나고

어깨가 기울어진 코스모스가 야윈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을이 국도처럼 허리 굽은 긴 하루였다

 

 

 

 

 

 

3.jpg

 

황경신, 소나기




아무런 전조도 없는 듯했지만

그저 몰랐을 뿐이었지

비를 잔뜩 머금고 바삐 움직이는 구름들과

잠시 숨을 멈추고 있는 바람을


아주 갑자기 끝나버린 듯하지만

그저 모른 척하고 싶었을 뿐이었지

점점 희미해지는 구름의 빛깔과

가쁜 숨을 고르는 바람의 소리를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고

잡으려면 잡을 수도 있었어

청춘이 지나가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사랑 몇 번이나 할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지

다 지나가도록

소나기 같은 너와

소나기 같은 그 사랑이

 

 

 

 

 

 

4.jpg

 

허영만, 뒷굽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5.jpg

 

박주택, 이별의 역사




극장 앞에는 의자가 놓여 있네

그 의자 비에 젖네 가을비 내려 뒹구는 잎사귀 젖고

술집의 문고리도 젖어 잠마저 젖는 어느 가을날

이별이 이토록 쉬운 것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네

기억은 가물거리지도 않고 평생을 바친 힘으로

한사코 망각을 물리치네, 이것이 누구의 이별이든

모든 이별에는 흐느낌이 있네, 잠 못 드는 저 애인들


술집에서. 작은 방에서, 깊은 시름에서

그림자마다 조금씩은 비에 젖고 인간의 역사가

이별의 역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지라도

이별은 언제나 처음인 것을 그리하여, 몸은 아프고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고 두려운 아침이 오지만

그러나 이별도 순환하여 사랑이 사랑과 만나는 것처럼

이별도 이별과 만나 사랑이 낳은 이별을 힘껏 껴안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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