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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게시물ID : lovestory_931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4/27 20:04:2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조말선, 가로수들




한 손이 다른 손에게 구름을 건네주고 있었다

이 발이 저 발에게 바람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것은 늘 움직이고 있는 한 손과 다른 손

이 발과 저 발이어서 장소가 없었다

도착이 없었다

당신은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옆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아

반쯤 표정을 숨긴 태도가 나를 외롭게 해

한 옆모습이 한 옆모습을 돌려세우려고 가고 있는 당신은 더 외로워 보여

그러니 당신은 이봐 이봐, 당신을 돌려세우려고 가고 있었다

외로움의 제복을 당신에게 당신을 건네주고 있었다

제복의 아름다움은 길게 줄을 서는 것

그것은 늘 움직이고 있는 현상이라서 봄이 왔다

한 손이 다른 손에게 봄을 건네주고 있었다

이 발이 저 발에게 봄을 건네주고 있었다

저 소실점까지

 

 

 

 

 

 

2.jpg

 

우대식, 스토커




당신의 손가락

길게 허공을 젓다가 오른손 검지부터 차례로

움켜쥘 때 손 안의 모든 공기는 부풀어 올라

숨조차 멈추는 팽팽한 세계

당신의 발뒤꿈치

창백한 더러 붉은색이 번지는

단 한 번에 목숨을 앗아갈

치명의 기록

그리고 당신의 등

언제나 바라볼 수 있음

후, 등에 대고 멀리서 불어보는 입김

가 닿지 않음

누군가의 손바닥 흔적이 희미하게 보이는 아픔

당신의 가슴

그것만큼은 순결이어야 하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머리조차 들 수 없는

내 가엾은 목숨의 저류지

당신의 귀밑머리

몇 올이 턱선을 따라 내려오다 다시 살짝 말려 올라간다

만날 수 없음

쓸쓸한 회귀

당신 한가운데 피어난 꽃

겹겹이 색이 다른 피를 머금은

입술을 대면 울면서 노래 부르는

그 노래를 듣는 일은 괴롭고도 즐거워

차라리 내 안의 칼을 겨누어

죽음에 이르는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사랑

 

 

 

 

 

 

3.jpg

 

이은규, 밤과 새벽의 돌멩이




세상에 말 못 할 비밀은 없다

다만 들어줄 귀가 없을 뿐


절기마다 비밀은 아름다운 법칙으로 태어나고

광합성도 없이 한 뼘씩 자라나는 문장들


밤으로부터 새벽에게로


오래된 이야기 속 목소리 들린다

잠든 돌멩이를 깨워보렴, 속삭여보렴

모든 비밀은 위대하거나 은밀하거나

시인이 말했듯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다는 것처럼 가난한 일


밤의 돌멩이로부터 새벽의 돌멩이에게로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말해보렴, 모든 걸 털어 놓으렴

말 못할 네 문장을 대신 간직해 줄 거야

뒤척이다 기지개를 켜는 용기

돌멩이를 깨워 한 줄 문장을 속삭이는 사람

여름 잎처럼 짙어가는 비밀만 풍요롭다


저만치 오고 있는 절기

떨어지는 잎들의 비밀이 한창일 때

문장을 간직하는 것으로 잠들다, 깨어날 돌멩이


다만 들어줄 귀가 없을 뿐

세상에 말 못 할 비밀이 있을까

 

 

 

 

 

 

4.jpg

 

박서영, 뿌리의 방




열대의 비닐하우스에서 우리가 얼마만큼 자랄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고백과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나무의 혀들이 모래흙 밖으로 나와 있다

잎사귀가 축축 늘어져 있어 혀의 진실은 감춰져 있다

파파야와 바나나, 이런 이름표가 없었다면

처음 만나는 우리가 악수를 할 수 있었겠는가

아직 자라지도 않았는데 익어버린 열매를 매달고

너무나도 붉은 말을 혀 위에 올려놓은 사람

새순처럼 혀가 점점 길어진다

길어진 혀는 심장을 보여주려고 한다

나에게 도착하려고 계속 말을 걸어온다

열대(熱帶)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혀

우리는 가장 깊이 감춰둔 샅을 보여주려고

길어지는 발설과 침묵으로 불타오른다

뜨거운 폐허가 열렸는데도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5.jpg

 

이용한, 불가능한 다방




어차피 불가능한 다방이에요

불가피하게 날이 저물죠

치통처럼 11월은 오고

목요일은 지나가요

걸레질이 끝나면 화장을 고치죠

난간에서 선량한 음모를 쓰다듬으며

등이 굽고 엎질러진 숙맥들이나 사랑하면서

모든 연민은 구석에서 식어 가요

마음속에서 마음을 찾는 것만큼 외로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누구나 혼자 걸어가는 망령인 걸요

우리는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으니까

돌아앉은 골목과 납작해진 각오들

아무튼이라고 말하는 입술들

어떤 손가락은 서둘러 담배를 끄고

7시의 여자들을 만나러 가죠

참 이상하죠? 고장난 것들을 사랑한다는 건

물끄러미 연속극이나 보면서

바닥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냥 살아요

다방은 그저 다방일 뿐이죠

여기서 사소하고 유일한 티켓을 기다리거나

끝끝내 슬픈 슬리퍼에 대해서 함구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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