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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 많던 꿈이 다 상처가 되었을 게다
게시물ID : lovestory_931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5
조회수 : 44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5/06 21:42:3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원태연, 순간 순간




떠나고 싶어

하지만 한 번도 떠난 적은 없어

이상하지 떠나고 싶어지면 짐을 싸야 하는데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있으니까

이것저것

묶였고 묶어버린 끈들 때문에

떠나고 싶단 생각도 금방 접어버려

그때마다 난 떠나고 싶어

 

 

 

 

 

 

2.jpg

 

신경림, 고목을 보며




그 많던 꿈이 다 상처가 되었을 게다

여름 겨울 없이 가지를 흔들던 세찬 바람도

밤이면 찾아와 온몸을 간질이던 자디잔 별들도

세월이 가면서 다 상처로 남았을 게다

뒤틀린 가지와 갈라진 몸통이

꽃보다도 또 열매보다도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인데


내 몸의 상처들은

왜 이렇게 흉하고 추하기만 할까

잠시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게 하던

감미로운 눈발이며

밤새 함께 새소리에 젖어 강가를 돌던

애달픈 달빛도 있었고

찬란한 꿈 또한 있었건만

내게도

 

 

 

 

 

 

3.jpg

 

이정하, 사랑의 우화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 비야 비켜가면 그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4.jpg

 

장시우, 섬강에서




열리지 않는 섬

꽃망울을 피워 올린 몸짓은 힘겹다

눈뜨지 못할 아침이 찾아와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햇귀는 그늘을 지운다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풀꽃은 잠시 흔들렸다

가슴 깊이 물이 스며

들숨 날숨이 뒤섞인 섬강은

뿌리 속으로 물이 들었다

물떼새 날갯짓 따라 흐른다

눈 감으면 발목에 감기는 강물소리

그는 울음을 강바닥에 묻었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달맞이꽃과 같아서

그에게 가서 입을 맞춘다

풋잠처럼 씨앗처럼

 

 

 

 

 

 

5.jpg

 

허수경, 밤 속에 누운 너에게




가끔 너를 찾아 땅 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저 침침하고도 축축한 땅속에서 시간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러 있던

너를 찾으려 했지

땅속으로 내려갈수록

저 뿌리들 좀 봐, 땅에는 어쩌면 저렇게도 식물의 어머니들이

작은 신경줄처럼 설켜서 아리따운 보석들을 빨랫줄에 걸어두는데

저 얇은 시간의 막을 통과한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것들이

땅이 흘린 눈물을 받은 양 저렇게 빛나잖아

가끔 너를 찾아 땅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세월 속으로 가고 싶어서

머리를 지하수에 집어넣고

유리처럼 선명한 두통을 다스리고 싶었지

네 속에 눈물이 가득할 때

땅은 속으로 그 많은 지하수를 머금고 얼마나 울고 싶어 하나

대양에는 저렇게 많은 물들이 지구의 허리를 보듬고 안고 있나

어쩌면 네가 밤 속에 누워 녹아갈 때

풀 없는 사막은 너를 향해 서서히 걸어올지도 모르겠어

사막이 어쩌면 너에게 말할지도 몰라

사랑해, 네 눈물이 지하수를 타고 올 만큼 날 사랑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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