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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19900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빈유가좋다
추천 : 6
조회수 : 202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2/05/28 04:06:37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몹시 나른합니다. 불 붙은 모기향은 타오르고, 여름 햇살은 내리쬐고, 에어컨 대신 낡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열린 창문과 커튼 사이로 바람이 살짝 붑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시끄럽습니다. 저렇게 방송 틀어놓고 다녀도 아무도 가지고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저 솜사탕 같은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에 짜증이 살짝 납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맞다. 밥솥. 밥솥도 사려나? 냉장고 위의 밥솥이 생각이 났습니다. 고장 난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먼지가 많이 쌓였지만, 지금 들고 가서 팔 수 있지 않을까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아저씨, 이거 밥솥도 취급하십니까?”

~ 한 번 줘 보세요~”

아저씨는 밥솥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이건 살 수 있겠네요.”

얼마나 주실 수 있으세요?”

잠시만요. 파실라고요?”

. 안 사세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손님. 밀양사람 아니지요?”

. 갑자기 왜요?”

경상도 말에는 성조가 음운의 역할을 한다는 거. 너무 어려운 이야깁니까?”

?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경상도 말로는 삽니다와 삽니다는 다른 말입니다. 저는 밥솥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밥솥을 살리는 사람이지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사실 지금 나오는 이 방송도 원래는 내가 물건 좀 살라고 어디서 갖고 온 거기는 한데, 방송을 가마 들어보이 삽니다가 아니라 삽니다라 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살릴 수도 있지 카는 생각이 들어가 고치고 있지요.”

, 그러면 밥솥 안 사실 거에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살릴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거 살리면 쓰겠는데요.”

벌써 밥솥을 새로 사놓은 게 있어서...”

그래요? 그라믄 제가 살게요. 오천 원 드릴 수 있는데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 그러면 오천원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잠시만요. 혹시 고치는 데는 얼마에요?”

그것도 오천원입니다~”

혹시 고쳐주시겠어요?”

~ 이건 금방 끝납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여기 있습니다~ 요기 요 부품이 낡아가 새로 갈아 끼웠습니다. 잘 될 겁니다.”

.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 감사합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밥솥을 콘센트에 꽂아보니 불이 들어옵니다. 잘 고쳐진 것 같습니다. 두 대의 밥솥이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슨 짓을 한 걸까요? 그냥 팔면 되는 거였는데. 왜 이걸 고쳐서 왔지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저 말이 마음에 쓰입니다. 솔직히 가전수리하는 사람 중에 저딴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하지만 살린다는 말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 같아서,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수리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아저씨가 이걸 노린 거라면 장사의 천재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여전히 낡았지만, 불이 들어오고 조금 깨끗해진 모습이, 왠지 오랜 친구가 다시 돌아온 기분입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다시 밥솥의 전원을 뽑아서, 선을 잘 말아 넣고, 비닐을 씌워서 냉장고 위에 올려둬야겠습니다. 결국 이럴 거였습니다. 괜한 짓을, . 맞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장 난 노트북도 들고 갈걸.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좀 멀긴 하지만 아직도 소리가 들립니다. 동네를 빙빙 돌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 들고 뛰어가면 수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숨을 헐떡이며 트럭에 손짓합니다. 트럭에서 모자 쓴 아저씨가 내립니다. 어라?

어이고, 열심히 뛰어오시네. 컴퓨터 파시려고요?”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안 파실 거에요?”

아저씨 혼자 다니시는 거에요?”

. 그거 상태 좋으면 삼만 원은 드릴 수 있는데.”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이럴 수가. 아까와 다른 사람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착각했나봐요.”

안 파시려고요? ~”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아까 아저씨가 인터넷에서 방송 소리를 찾았다고 했으니 단순히 같은 소리를 쓰는 다른 사람인 걸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들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밥솥이나 정리해야겠습니다.

고친 밥솥의 전원을 뽑으려다 자세를 고쳐 앉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모기향은 마지막 연기를 힘차게 내뿜고, 해는 산 위에 걸터앉았고, 선풍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열린 창문과 커튼 사이로 부는 바람이 살짝 추운 기분이 들게 합니다.

 

고장 난 냉장고 컴퓨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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