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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서울대 이대남은.
게시물ID : sisa_12077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늑대와호랑이
추천 : 19
조회수 : 1428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22/07/20 16:11:45
나는 왜 '부끄러운 서울대' 1만인에 서명했나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 기고]
합격증은 채권이 아니다

나는 5·18 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1년 서울대에 입학했다. 합격 사실을 알고난 뒤 몇 달간은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는 우쭐함,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소문은 들었으나, 과장된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학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다. 점심시간, 학생식당으로 들어가려는데 2층 난간 위에서 어떤 학생이 유인물을 뿌린 뒤 뭐라고 외치다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어른들에게 “대학 가면 데모하지 마라. 신세 망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탓에, 데모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는 왜 스스로 ‘신세 망칠’ 짓을 한 걸까? 그는 왜 제적 당하고 감옥 간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저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달 뒤인 5월 27일, 날씨가 화창해서 친구들과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주변에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서관 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옆에 있던 친구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경제학과 4학년 김태훈이 도서관 5층에서 “전두환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투신한 장면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몇 달 뒤면 졸업할 사람이,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을 듯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자기 목숨을 던졌을까? 부모들은 어떡하라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것은 ‘알려는 의지’ 또는 ‘이해하려는 의지’다. 부자가 되려는 욕망, 권력을 가지려는 욕망, 남보다 우월해지려는 욕망은 인간의 고유 습성에 속한다. 이런 욕망은 초역사적이며 보편적이어서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완용의 생각과 행위를 이해하는 데에는 ‘지적 노력’이 불필요하다. 그러나 안중근의 마음에 닿으려면 고뇌(苦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해하려는 의지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행위 또는 현상에 직면할 때 촉발된다. 이것이 의사와 열사들의 행위가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시대정신’을 만든 이유다.

"대학생 친구 한명만 있었다면...."

10년 전 전태일이 노동자도 사람으로 대우해 달라며 자기 몸을 불살랐던 사실을 알았다. 6년 전 서울대생 김상진이 유신 철폐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사실도 알았다. 1년 전 광주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도 알았다. 이후 “내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으면”이라는 전태일의 말과 광주에서 희생된 내 또래 젊은이들의 함성과 절규는 늘 마음 한 구석에 걸려 있었다. 그들의 몸은 비록 죽었으나, 정신은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았다.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산 대학생들은, 누군가는 보잘 것 없는 대학생 친구의 도움조차 바란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자기 목숨과 가족의 평생 행복을 던져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일신의 입신양명과 출세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건 그들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살아남은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국가 공동체는 서울대생들에게 남다른 혜택을 베풀었다. 좋은 시설, 훌륭한 스승, 적은 등록금은 우리 공동체가 나중에 갚으라고 서울대생들에게 빌려준 것이었다. 많은 서울대생이 합격증을 공동체에 대한 일종의 ‘채무증서’로 여겼다.

물론 그 시절에도 세상일에 눈 가리고 귀 막은 채 출세만을 위해 매진하는 학생은 많았다. 그래도 그런 학생들의 ‘선(善)한 동기’가 의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예비고사든 학력고사든 수능시험이든 수석 합격자들은 기자들에게 늘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말했다. 각자의 선택과 행위가 달라도 같은 시대에 같은 일들을 겪은 사람들의 양심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런 양심들이 87년 넥타이부대의 항쟁으로 표현되었다.

그 선한 의지는 다 어디로 갔는가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5년, 검사와 판사가 정보기관원들의 지휘에 따라 기소하고 판결하던 시대는 끝났다. 정보기관원들이 언론사에 상주하며 기사를 검열하던 시대도 끝났다. 독재의 잔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이 양심을 저버릴 이유는 없어진 듯했다. 하지만 평생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나 시장에서 고생하며 모은 돈을 저축은행에 넣었다가 잃어버린 사람들, 주가조작 사기에 당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터무니없는 의료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판사나 검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미담은 거의 듣지 못했다.

오히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금융 사기나 주가 조작 범죄를 덮어주고 불법적 의료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을 은폐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모질게 다루었다는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이 들렸다. 심지어 최근에는 법조인들이 부동산 개발회사를 돕는 대가로 수십 억원씩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성공해서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던 그 ‘선한 의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런 의지가 남아 있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사라졌을 것이다. 선한 의지와 양심이 사라진 곳에는, 인간의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요즘 서울대생들은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부채의식마저 털어버린 듯하다. ‘자기가 누리는 것은 순전히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믿는 학생이 많다. 그들은 지방 대학에 다니는 동년배를 ‘지잡대생’이라고 부르며 사회적 배려 대상자 특별 전형이나 기회균등 선발 전형으로 입학한 동기생들조차도 ‘사배충’, ‘기균충’이라고 모욕하는 데 익숙하다. 대학 진학률이 90%에 육박하는 데다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흠뻑 받고 자란 세대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면서도, 자기의 성취 안에 포함된 ‘공공의 기여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 선배들이 ‘빚 갚는 모습’이나 ‘선한 의지를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기도 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권력의 사유화를 막는 노력을 다시 하자

사실 국가는 처음부터 공동체라기보다는 왕이나 황제의 사유물이었다. 국가를 ‘국민들의 공동체’로 바꾼 것은 민주주의 이념이었다. 그래서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욕망은 본디 반(反) 민주적이다. 하지만 수천 년 된 인간의 욕망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 스스로 그런 욕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민주적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는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욕망의 전시장이 펼쳐져 있다. 검찰권 독립도, 사법부 독립도, 언론자유도 모두 힘없는 시민들이 피흘려 가며 ‘국가를 사유화한’ 독재자들과 싸워 얻어낸 것들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판검사 대다수는 독립된 검찰권과 사법권을 사유물 취급하고, 언론인 대다수는 언론자유를 자기들만의 자유로 취급한다. 공적 책무와 사적 권리를 혼동하고, 위임받은 권한을 개인의 사유물로 취급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남에게 베푼 것도 없으면서 대학 합격증이나 고시 합격증 등을 공동체에 대한 ‘채권’으로 여기고, 그 ‘채권’을 행사하여 국가 권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유화하려는 욕망을 불태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 중에 서울대 출신이 특히 많아 부끄럽고 미안하다.

민주공화정의 정신적 토대는 ‘천하공물(天下公物)’이라는 생각이다. 민주공화국의 어떤 권한과 권력도, 담당자나 종사자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시험 성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검찰권력이든 사법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그밖의 어떤 권력이든, 종사자의 것이 아니라 국민 일반의 것이다.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욕망이고 권력을 사유물로 취급하는 태도이다. 사유화의 욕망이 절대적인 시대지만, ‘천하공물(天下公物)’인 국가마저 사유화의 욕망에 잡아 먹히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공인된 엘리트들이 담합하고 합세하여 공동체에 대한 ‘채권자’ 행세를 하게 되면, 절대다수 시민은 빚진 것도 없이 ‘채무자’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노력하는 것, 선한 의지와 양심을 지키는 것이 서울대인들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더는 길이다.

※ 전우용 서울대 국사학과 81학번
출처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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