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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란 - 연실(蓮實)의 노래 (1959)
게시물ID : music_1724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삼월이집
추천 : 3
조회수 : 15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2/07/28 19:16:00

 

 

1959年 노래라...

 

지금 10대나 20대를 보내고 있는 분들은 저 당시 사람들을 어찌 볼까요?

 

멀게는 말고.. 제가 1965(年生) 입니다.

 

지금 10대나 20대 분들은 저 같은 꼰대같은 사람들을 어떤 눈으로 볼지 궁금하네요...^^

 

곧 60이 됩니다.

 

늙어가고 말 안 통하고 등산복이나 입고 다니는 걍 노친네에 가까운...ㅋㅋ

 

고등학교를 지방에서 졸업 후에, 재수해서 겨우 인서울 해서 서울 구경한답시고 명동에 갔더니,

 

아가씨들이 민소매 옷을 입고 다니더군요.

 

나시.jpg

 

이런 거. 서울이라 역시 뭔가 다르구나 하는 충격이...

 

당시 막 유행하던 거라서 모두가 입고 다니진 않았지만,

 

방학 때 귀향하여 보니 여동생과 누나도 이리 입고 다니더군요.

 

1959年 노래라서 참 옛날이다 싶은데,

 

당시도 젊은이들은 역시 젊은이들 이었고, 지금 노인네 되어 구부정한 분들도

 

한 때는 제법 청춘을 불사르고 다녔다고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예전 이야기 몇 가지 더.

 

일제시대 때 만석꾼 맏며느리 분이 쓰신 수필에 나온 이야기인데,

 

하루 시어머니, 시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5끼(조반으로 죽, 아침, 점심, 저녁, 밤참)를 차렸는데,

 

시어머니께서 숯냄새를 싫어 하셔서(부잣집이니 숯으로 밥을)

 

가스레인지를 사용해야 했다고 하더군요.

 

지금과 같은 거는 아니고, 가스를 켜고 성냥으로 불을 붙이는.

 

1930년 쯤 되겠네요.

 

 

저희 어머니 이이기도 하나 첨부 합니다.

 

일제시대 분이셨어요.

 

재일교포였는데, 외갓집이 갑부였죠.(절대 친일파 아님, 건설업 하셨음)

 

커다란 배 타고(지금으로 말하면 크루즈선 같은) 일본에서 태국으로 관광가고 그랬답니다.

 

한국으로 시집올 때 하이힐 신고 왔다고.

 

 

한가지 더...

 

6.25 전쟁통에 우리나라 유명한 카사노바가 있었습니다.

 

여기 이름을 적기는 그렇고.

 

당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혼란기라 아가씨들을 수십명인가 백명이 넘었던가...

 

다들 몸을 주더랍니다.

 

문제가 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무죄로 방면되었습니다.

 

당시 판사의 판결문 중의 명언이...

 

'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순결만 보호한다' 였던가 하는 걸로 기억합니다.

 

그 분들 지금 다 무덤속에 있겠네요.

 

 

뭐.. 길게 적었지만, 지금 10대나 20대 분들이 노인들 보시면,

 

저들도 한 때 나 처럼 청춘이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재미나시라고...

 

나이 들었다고 다 그 만큼 품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 양아치 짓 하던 이들도 늙고, 공부하고 수양한 이들도 늙고.

 

저는 나이 많다고 무조건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존중은 해주죠.

 

 

저도 곱게 늙으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꼰대는 안 되려고 흔히 나이든 사람들 사이 떠도는 말로,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잘 안 되지만.( 이 보세요! 말이 많잫아요! ...ㅋㅋㅋ)

 

 

요즘 아두이노 하고 코딩 공부하는데.. 골 빠개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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