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나는 손끝으로 끊임없이 너를 건드린다
게시물ID : lovestory_935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51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8/13 16:12:3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허수경, 정든 병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2.jpg

 

나선미, 네가 있어줬잖아




고마워

무엇이 고맙냐. 물어본다면

역시 따라오는 그 물음이 고맙다고 말할래

 

 

 

 

 

 

3.jpg

 

김경인, 물속의 편지




멋대로 출렁이는 파문이 좋아

파문에 쓸려 가라앉은 누더기 입술이 좋아

지문이 다 지워진 손가락으로 쓸래

고요한 밤하늘을 찢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의 푸른 비명이 좋아

도마뱀의 잘린 꼬리는 더 좋아

호수를 잔뜩 뒤덮은 플랑크톤처럼

내 위로 번식하는 내 얼굴이 좋아

불투명 유리창이 좋아

유리창 뒤의 염탐꾼이 좋아

나를 바라보는 깨지지 않는 유리눈알이 좋아

녹지 않는 눈깔사탕이 좋아

물 속 가득 차오르는 거품이 좋아

산산이 흩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네 귀퉁이부터 사라지는 편지지에 쓸래

당신이 좋아

조각난 손거울이 좋아

 

 

 

 

 

 

4.jpg

 

오은, 스케치북




뚜껑을 열면 뽀얀 너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나는 나의 부분을 들어 너의 전체를 쓰다듬는다

너는 하얗다 과분하다 아득할 정도로

뿌루퉁한 크레파스를 꺼내 너를 조준한다

네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린다

너의 부분에 먹칠을 해주겠다

너의 전체에 본때를 보여주겠다


너의 얼굴에 대고

빨간 동그라미를 그린다


네 입에 달콤함 사과를 물린다

커다랗고 하얀 이가 덥석 사과를 문다

사과는 본분에 충실하다 먹음직스럽다 아찔할 정도로

내 손이 군침을 대신 흘린다

기꺼이 나는 너의 부분이 된다

너의 이가 너의 목구멍으로 책임을 떠넘길 때까지

사과가 전체처럼 아득해질 때까지


내 묘사가 그 누구의 동의도 구하지 못할 때까지

나는 손끝으로 끊임없이 너를 건드린다

 

 

 

 

 

 

5.jpg

 

김재진, 가득한 여백




만약에 네가 누구에게 버림받는다면

네 곁에 오래도록 서 있으리라

쏟아지는 빗줄기에 머리카락 적시며

만약에 네가 울고 있다면

눈물 멎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리라

설령 네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때아닌 장미를 고른다 해도

주머니에 손 넣은 채 웃기만 하리라

가시에 손가락 찔린 네 예쁜 눈이

찡그리며 바라보는 그 짧은 순간을 다만

안타까운 추억으로 간직하리라

만약에 내가 너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온다면

쓸쓸한 눈빛으로 돌아서리라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 긴 시간을

너의 후회가 와 채울 수 있도록

가득한 여백으로 비워두리라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