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BGM]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9351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5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08/17 22:43:20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신용목, 하루가 지나간다




네가 사랑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너에게 실패한 것이다


사랑이 네 몸에 들어와서 이 험한 현실을

살아내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이 너의 고통을 빌려 몸부림치고

너의 슬픔을 빌려 울고 너의 절망을 빌려 밤을 찢을 때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몸을 잃고 헤매는 사랑에게 가만히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 아침마다 열리는 창문이 많고

후후 입김을 불며 닦아야 할 거울이 있다

창문을 넘어온 바람이

거울 속에 맺힌 눈물을 데려가는 오후가 있다

슬픈 웃음이 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흰 종이 위에 그의 이름을 한 자씩 썼다가

다시 그 검은 글씨를 하나씩 지우면, 하루가 지나간다

 

 

 

 

 

 

2.jpg

 

최영미, 어느새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밟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서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 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3.jpg

 

유안진, 타동사에 얹혀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 했더니

언제 살았던 적 있었느냐고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죽고 싶어질 수 있느냐고

정색하고 반문한다


너무 괴로워서 그만 헤어지자 했더니

언제 사귄 적 있었느냐고

사귄 적 없는 이들이 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비웃듯 다그친다


온 적도 없이

오래전에 가버린 시대

구호와 운동의 스테레오 이중주 속에서

암흑물질을 찾다가 기다리다가

살았던 적도 없이 사귀었던 적도 없이

지칠 대로 지쳐 눈뜨기도 힘든 아직 여기

 

 

 

 

 

 

4.jpg

 

이영광, 사랑의 미안




울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이 들어가서 태우는 몸

네 사랑이 너를 탈출하지 못하는 첨단의 눈시울이

돌연 젖는다

나는 벽처럼 어두워져 아, 불은 저렇게 우는 구나, 생각한다

따로 앉은 사랑 앞에서 죄인을 면할 길이 있으랴만

얼굴을 감싸쥔 몸은 기실 순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성채

울어야 할 때 울고 타야 할 때 타는 떳떳한 파산

나는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없다

사랑이 아니므로, 함께 벌 받을 자격이 없다

원인이기는 하나 해결을 모르는 불구로서

그 진흙 몸의 충혈 껴안지 못했던 것

네 울음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나는 소용돌이치는 불길에 몸 적실 의향이 있지만

그것은 모독, 모독이 아니라 해도, 이 어지러움으론

그 무엇도 진화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사랑보다 더 깊고 무서운 짐승이

올라오기 전에 피신할 것이다

아니,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을 것이다

네가 단풍처럼 기차에 실려 떠나는 동안 연착하듯

짧아진 가을이 올해는 조금 더디게 지나는 것일 뿐이리라

첫눈이 최선을 다해 당겨서 오는 강원도 하늘 아래

새로 난 빙판길을 골똘히 깡충거리며

점점 짙어지는 눈발 속에 불길은 서서히 냉장되는 것이리라

만병의 근원이고 만병의 약인 시간의 찬 손만이

오래 만져주고 갔음을 네가 기억해낼 때까지

한 불구자를 시간 속에서 다 눌러 죽일 때까지

나는 한사코 선량해질 것이다

너는 한사코 평온해져야 한다

 

 

 

 

 

 

5.jpg

 

성기완, 한적한 엔딩




의외로 마지막 날

한적하다

함께 이 텅 빈 밤을

걸어갈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