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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다오리 이야기(펭귄 이름의 유래).jpg
게시물ID : humordata_1961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소리제거반
추천 : 7
조회수 : 150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2/09/04 13:29:59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1682083&s_no=1682083&kind=search&page=1&keyfield=subject&keyword=%EB%B6%81%EA%B7%B9

이전에 올라왔던 글이 있지만, 이 이야기를 알게된후 관심이 가게되서 조금 더 자세하게 글을 작성하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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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독특하게 생긴 이 새를 보신적 있으신가요?

도요목 바다오리과에 속하는 '큰바다오리'(Great auk)라는 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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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들은 한때 캐나다 해안에서부터 그린란드를 거쳐 노르웨이까지 

대체로 추운 지역에서 수백만 마리가 광범위하게 번성하였습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크게 번성하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 바이킹 등의 유물에서 이들의 뼈로 만든 장신구가 대량으로 나올정도로

큰바다오리는 겨울동안의 북쪽 거주민들에게는 주요 식량 공급원이자 문화적 상징이었고,

100,000년전 네안데르탈인들도 이들을 사냥했던걸로 보이는 증거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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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크기 80cm, 체중 5kg의 비교적 대형 조류였던 큰바다오리는

깊은 물속에서 15분 이상 잠수할정도로 수영 실력이 매우 뛰어났던 반면,

그렇게 진화된 대가로 육상에서는 매우매우 느린 속도로 어설프게 걸어다녔습니다.

대체로 1년에 한번 한개의 알만 낳았으며, 

암수가 교대로 지키면서 헌신적으로 새끼를 돌보아 키웠습니다. 

수명은 대략 20~25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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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북쪽 거주민들이 식량, 옷감 등을 위해 큰바다오리를 사냥하였지만 

워낙에 많은 개체수가 있었기에 그 영향은 매우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약 1500년경 항해기술의 발달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서식지에 찾아갈 수 있게 되고,

산업기술의 발달로 보다 많은 자원이 요구됨에 따라 큰바다오리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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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지역에서는 인간들의 동물 남획으로 인해 1770년대 부터 육상동물들의 수가 급감하였습니다.

더 많은 고기, 깃털, 가죽, 기름 등의 동물 자원을 얻기 위해 인간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향하였고,

물속에서는 당해낼수가 없으나 육상에서는 너무나 손쉬운 사냥감인

큰바다오리가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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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많은 큰바다오리는 태어나서 인간들을 처음 보는 것이었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던 대다수의 큰바다오리는 오히려 도망치지 않고 인간들에게 쉽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인간들의 큰바다오리 사냥이 시작되었는데

자원을 얻기 위한 사냥 목적만이었다면 좀 더 개체수가 줄어드는 속도가 늦춰졌겠지만 실상은 더 어두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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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지역에선 나무가 부족했기에 선원들은 큰바다오리를 일부러 여러마리 잡아 땔감으로 이용했습니다.

추운 지역에 사는 만큼 몸에 지방이 많이 포함되었기에 불에 매우 쉽게 잘 붙었다고 합니다.

또 많은 선원들이 본인의 사냥 실력을 뽐낼겸 재미로 큰바다오리들을 죽였으며,

새로 구입한 화승총 격발 시범용 표적으로,

몽둥이 강도 테스트 표적으로,

배게가 불편하다고 그 속에 채울 깃털용 등

단기간내의 수백만 마리의 큰바다오리가 죽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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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남획으로 그 넓었던 큰바다오리의 서식지는 아이슬란드의 몇 개섬으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유럽 몇몇 국가에서는 뒤늦게야 큰바다오리 사냥 금지령을 내렸긴 하지만 학살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큰바다오리의 희소성이 증가하자 이번에는 

얼마 안남은 큰바다오리 표본을 얻고자 하는 부유한 수집가들의 의뢰가 증가하였기 때문이죠.

그 덕에 돈에 눈먼 선원 / 탐험가들은 눈에 불을 켜고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지역까지 진출하여

큰바다오리들을 정말 싹다 쓸어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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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844년 6월 3일.

아이슬란드의 가이르풀라스케어(Geirfuglasker)라는 섬에 한 선원들이 닻을 내립니다.

그 곳엔 큰바다오리 한 쌍이 살고 있었는데, 알들은 채집과정중 실수로 깨버리게 되고

큰바다오리 부부는 결국 선원들에 의해 목이 졸려 죽게되었습니다.

1852년에도 한마리의 큰바다오리 목격담이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큰바다오리의 마지막 기록은 1844년으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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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다오리의 사진, 영상 기록 등은 전혀 없으며

전세계에 남겨진 오직 80여개의 표본만이 큰바다오리가 지구상에 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세기말 인간이 남극에 도달하게되고 

그곳에서 어떤 새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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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알던 큰바다오리와 너무나도 비슷한 생김새에 

인간들은 이 생물에게 큰바다오리의 학명 'Pinguinus Impennis' 을 따와서

'펭귄' 이라고 이름 짓게 됩니다.

(왜 굳이 생각해내기 어려운 학명을 붙였을까 의아할수도 있는데 

유럽 일부지역에선 16세기부터 큰바다오리를 Great auk라는 이름 대신 펭귄이라고 부른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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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레이캬네스에 위치한 멸종된 큰바다오리 동상.

끝.

 

 

참고로 연구결과에 따르면 큰바다오리의 유전적 다양성은 펭귄보다도 더 높았을정도로 잘 살았었기 때문에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남극엔 펭귄, 북극엔 큰바다오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출처 과학드림 [Science Dream] 펭귄의 기원과 진화 https://youtu.be/WhIMz78KT7Q?t=338
https://seahistory.org/sea-history-for-kids/great-auks/
https://www.zmescience.com/other/pieces/great-auk-extinct-tragic/
https://www.thoughtco.com/the-great-auk-1093724
https://en.wikipedia.org/wiki/Great_auk
https://www.forbes.com/sites/grrlscientist/2020/03/20/human-hunting-drove-the-great-auk-extinct/?sh=609524922a45
https://namu.wiki/w/%ED%81%B0%EB%B0%94%EB%8B%A4%EC%98%A4%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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