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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구름은 나에게 생각 당할 뿐이다
게시물ID : lovestory_936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70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0/12 20:15:25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인원, 꽃사과를 보러 갔다




꽃을 사칭해 열매를 맺으며

열매를 차용해 꽃을 피우며

꽃과 사과 사이를

사과꽃과 꽃사과 사이를

죽어라 오가는 나무

무서워라

괜한 꽃멀미를 핑계로

그대를 보러 가서 아직

꽃도 아니고 열매도 아닌

사랑도 아니고 미움도 아닌

어정쩡한 나만 쓸쓸히 만나고 왔네, 아니

자칫 잘못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쓸쓸함

그 어정쩡한 함정을 아슬아슬 피해서 돌아 왔네

누명 같은 꽃을 훨훨 벗어던지고

오명 같은 열매를 툭툭 떨구면서

오직 이름값에만 충실한

한 알 한 알 붉은 저 애와 증의 관계를

한 치도 어김없는 공전과 자전이라 읽고 왔네

애먼 꽃가루 알러지 증상이나

더듬더듬 사칭하다 왔네

그대 몰래

죄 없는 그대를

또 한 번 차용하고 왔네, 아니

그대 목울대 안에서 분주하게 피고 지며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암산하고 있는

작은 꽃사과 하나를 똑똑하게 목격하고 왔네

 

 

 

 

 

 

2.jpg

 

황학주, 얼어붙은 시




한 사람의 젖어가는 눈동자를

한 사람이 어떻게 떠올리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

파탄이 몸을 준다면 받을 수 있겠니


숨 가쁘게 사랑한 적은 있으나

사랑의 시는 써본 적 없고

사랑에 쫓겨 진눈깨비를 열고

얼음 결정 속으로 뛰어내린 적 없으니

날마다 알뿌리처럼 둥글게 부푸는 사랑을 위해

지옥에 끌려간 적은 더욱 없지


예쁘기만 한 청첩이여

목이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좀 아프면 어때

아픔은 피투성이 우리가 두려울 텐데


순간마다 색스러워질 수 있는 것

그 모든 색 너머 투명한 얼음이 색색으로 빛나는

색이 묻어나지 않는 색의

기쁨인 그것들


우리는 대못 자국 같은 눈빛이

맑디맑게 갠 다음 무엇을 보는지

여간해선 짐작 못한다

 

 

 

 

 

 

 

3.jpg

 

황성희, 구름의 생각




구름이 흘러간다

나의 생각이다


구름 새의 구름 머리

나의 생각이다


구름 새의 구름 깃털

나의 생각이다


구름은 하늘에 없다

구름은 나의 생각 속에 있다

땅을 베고 누운

나의 생각 속에 있다


땅은 나의 생각이다

누웠다는 것도 나의 생각이다

팔이 저리다는 것은...모르겠다

모르겠다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구름에게는 생각이 없다

구름은 나에게 생각 당할 뿐이다

그것이 매우 억울할 것이다

이것만은 구름의 생각이었으면 하지만

구름의 생각 또한 나의 생각이다


생각이 흘러간다

나의 구름이다

 

 

 

 

 

 

4.jpg

 

김종미, 면접




꽃을 사러 꽃시장에 갔다

꽃을 일렬로 앉혀 놓고

나에 대한 호감도와

네 인생의 목표를 물었다


이미 발목이 잘리는 아픔을 겪고

여기까지 온 당찬 녀석들의

대답은 저마다 특히 매혹적이었으므로

지독한 편견이 필요하다

나는 그 중 단 한 송이를 골라야한다


우리의 드라마를 위해

지상에는 눈이라도 좀 왔으면

스칠까 말까

먼데서 시작한 우리의 옷깃이 긴장한다


네가 바라는 만큼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한다 아니

몰랐으면 한다

잔혹해지는 마음은 귓바퀴를 돌아 숨는다


아직도 목에 기브스를 감고 있는

거베라 한 묶음을 골라들고

남겨진 꽃들이여

나의 지독한 편견에 대해서는 절대 문제 삼지 말라


지독한 편견이 아니라면

누가 누구에게 단하나의 존재가 될 것인가


가자, 앙다문 입술들이 쌓여 미끄러운 지상에

입 맞출 운명 한 묶음을 손에 쥐었으니

 

 

 

 

 

 

5.jpg

 

유계영, 시작은 코스모스




낮보다 밤에 빚어진 몸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병이 비치는 피부를 타고났다


모자 장수와 신발 장수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끔은 갈비뼈가 묘연해졌다

죽더라도 죽지 마라

발끝에서 솟구쳐


사랑은 온 몸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는 나의 바지다

구세주에게는, 나도 죽어서 신이 될 거야

그러나 버릇처럼 나는 살아났다


검은 채소밭에 매달리면

목과 너무나도 멀어진 얼굴

두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진 국기처럼 서로 마주 봤다


멀리서부터 몸이 다시 시작되었다

젖은 얼굴이 목 위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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