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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는 나 자신으로 한 겹 물러났다
게시물ID : lovestory_937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4
조회수 : 7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2/11/16 22:53:43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행숙, 포옹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2.jpg

 

이규리, 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3.jpg

 

박세현, 신호대기 중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게 있냐고 되물었다

선사 달마의 농담이 아니라

내 아파트 경비를 서는 직업군인 출신이

했던 말인데 이 순간에 눈앞에서

그 장면이 다시 돌아간다

바뀌지 않는 신호등 앞에서는

생각도 바뀌지 않는다

국그릇에서 국물을 떠내듯이 삶을 좀

덜어내야겠다 출렁거리는 게

거추장스럽다

 

 

 

 

 

 

4.jpg

 

이재훈, 평원의 밤




막막해졌네

타인에게 무심해지고, 타인의 죽음에 무심해졌네

모든 감정에 무심해졌네

가르치는 자들이 내놓는 규율에 무심해졌네

단순히 어지러움 때문이네

고개를 숙이다 고개를 들면 어지럽네

빙빙 돌고 울렁거리네

앉아도 누워도 빙빙 도네

과음 때문이네

두통 때문이네

내 몸에 잡초들을 태우려 했네

산화하는 것만이 아름다운 거라 여겼네

악수도 청하지 않고 떠나는 게 배려라 생각했네

슬픔이 없는 세계는 없지

나는 아름답게 슬픈 동물이고 싶었네

충만한 마음으로 춤을 출 것이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내 옷자락에 배었던 냄새 한 다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슬픈 밤이네

천둥이 음악소리를 덮을 무렵

자정의 달빛이 머리칼을 적실 무렵

저 우주에 몸을 눕히고 별들을 덮을 것이네

아무 언어도 없이 심연에 잠길 것이네

평원에 앉아 바람의 마음을 얻을 것이네

 

 

 

 

 

 

5.jpg

 

이제니, 구름과 개




이제는 없는 개

사라지고 없는 개


어느 날 개는 하품을 하였다

하품 너머로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말 대신 하품으로

하품 대신 구름으로


구름은 점점이 흩어지고 있었다

오래 전 무언가를 닮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들려줄 말이 떠올랐지만 돌려줄 곳이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얼굴로 벽을 마주 보고 섰다


나는 내 개다

내 개는 나의 거울이다


나는 웃었다

언젠가 웃었던 개


나는 울었다

언젠가 울었던 개


나는 나로 남겨졌구나

개는 개로 완성되었구나


시간이 흐르자 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뒤늦은 인사가 구름으로 흘러가는구나


내 개는 내 입으로 말을 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 한 겹 물러났다


이제 개는 없고 나는 다시 하품을 하였다

한낮의 허공 속에 둥실 떠서 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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