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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교사가 소설 은하영웅전설을 싫어했던 이유
게시물ID : readers_374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9
조회수 : 104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3/02/21 02: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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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구판 표지.jpg

 

아마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이름의 소설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일본의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가 발표한 소설인 은하영웅전설은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나도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에는 그 소설에 깊이 빠져서 학교와 집에 가지고 다니면서 즐겨 읽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전제국가인 은하제국과 민주국가인 자유행성동맹의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여 두뇌 대결을 벌이는 소설의 줄거리가 무척이나 박진감이 넘치면서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고등학생 시절, 내 담임교사는 은하영웅전설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내가 학교에 은하영웅전설을 가져온 걸 보면, 크게 화를 내면서 "이 따위 책은 절대 읽지도 말고 가져오지도 말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나나 다른 학생들이 은하영웅전설을 가져오면 죄다 빼앗아 버렸다. 그래서인지 내가 돈에 쪼들리던 고등학생 시절에 애써 모았던 은하영웅전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점에는 전부 없어졌다. 


왜 담임교사가 유독 은하영웅전설을 싫어했는지는 그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다만 과거 운동권 경력이 있었다고 말했던 담임교사의 심정을 추측해 보자면, 아마 은하영웅전설 속의 내용이나 메시지가 무척이나 거슬려서 그러했을 것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자유행성동맹의 시민들이 사악하고 이기적인 선동꾼인 욥 트류니히트를 지도자로 선출했는데, 그는 말만 요란하게 하며 자신의 잇속만을 채우는 부패한 정치인이라서 은하제국이 공격해오자 항복하고 나라를 팔아넘기는 매국노가 되어 끝내 자유행성동맹을 멸망시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자유행성동맹의 시민들이 어리석은 중우정치에 빠져 끝내 망하고 말았다며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결론이 담임교사로 하여금 '이 소설은 학생들한테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있다. 나쁜 영향을 끼치니 못 읽게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거쳐 사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가끔씩 화제가 은하영웅전설로 나오고는 했는데, 그때 내 주위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은하영웅전설? 그건 민주주의를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일본인들의 잘못된 편견이 더해진 엉터리 소설이야. 세상에, 자유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그렇게 어리석은 판단을 내려서 무능한 지도자를 뽑아 나라를 망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아마 일본은 자발적인 민주화 혁명에 실패해서 일본인인 작가가 그런 식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담긴 소설을 썼을 테지만, 한국은 달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주화 혁명을 몇 번이나 성공시켰는데, 설마 은하영웅전설에서처럼 그렇게 멍청한 중우정치를 겪기나 하겠어?"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아직 나는 충분히 세상 경험을 하지 않아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러 2023년인 지금, 우리는 감히 은하영웅전설이 '민주주의를 잘 모르는 일본인들의 무식한 편견이 담긴 엉터리 소설'이라고 도저히 비웃을 상황이 못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은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말했던 '중우정치에 빠진 어리석은 시민들이 뽑은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망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외 무역 수지는 연일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고, 미래 경제에 대한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전쟁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일촉즉발이고, 이런 절망적인 현실에 지친 국민들은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집권한 보수 정권은 국가의 미래나 국민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정적 제거와 그것을 통한 영구집권에만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진실을 전해야 할 언론들은 보수 정권과의 야합 때문에, 혹은 보수 정권의 협박이 두려워서 진실을 숨기고 오히려 무능한 보수 정권을 미화하고 포장하는데 열을 올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 정권의 끝없는 실정과 무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좀처럼 저항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다. 


참으로 끔찍한 현실이다. 이럴 때, 은하영웅전설에서 읽었던 구절 몇 가지 떠오른다.


"정치에 있어서 민중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러나 결코 민중을 신성시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도 별 거 없습니다. 저 같은 인간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고 권력을 잡아 남의 생명을 빼앗는 위치에 오른다...... 이게 민주주의입니다." 

출처 https://cafe.daum.net/historywar/2PPq/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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