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열등감과 패배감에 완전히 제압 당해 있는 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모든 말에는
좌절과 비애가 깊게 베어 있어
누구와도 정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밤.
도망치듯이 눈을 감아보지만
펼쳐지는 건
지금까지 놓쳤던 순간.
패배했던 순간.
그런 순간들만 토해내는 낡은 영사기
의
필름처럼
거슬리는 소음과 어색한 화면 연결로
비연속성의 연속성을 세뇌하듯이 나열하다 말고 ㅡ
어느 순간 분절된다
분절시킨다
분절하여 다시
배양하는 것들은 파편 같은 이미지이면서
이미지가 아닌 세월이고
세월처럼 위장한 서사이고
서사보다 허름한 감정의 파편들이고
거기엔 또 하나같이
이제는 추억으로도 부르지 못할 과거의 인연들.
이별과 배신의 아픔,
미성숙해서 그릇된 욕망을 서로에게 퍼붓다
그만 증오로만 남은 관계
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고
그것들이
평생 씻어내고 싶었지만 조금도 씻어낼 수 없었던
가난과 맞물려
빚어낸다 내면
에
자리잡은 가장 검고 탁한 잎사귀.
허물어진 마음의 살점을 맨손으로 뜯어내서라도
덮어버리고 싶은 그 잎사귀.
아니,
잎사귀 끝에 달린 주름,
내 얼굴 가득히 끼어든 주름
어둠
의
주름.
이미 온 얼굴과 손바닥에
짙게
깊게
패여있는 주름
그 주름을 닮아 소리조차 까맣게 말라버린
울음.
그래서
나 외에는 누구와도 닿지 못하는
깊고, 깊은, 밤.
그렇고, 그런,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