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책 읽어서 뭐 얻어?
게시물ID : freeboard_20093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염소네
추천 : 10
조회수 : 67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23/06/28 04:24:08
딱히 고질병에 붙일 이름을 못찿아
관찰병이라고 붙혀봅니다

전 초3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동화책부터 백과사전까지 무지하게 읽었어요
시골학교 도서관이라 초5쯤 되니
아주 희얀한 장서 빼고는 거의 다 읽다시피해서
도서담당 선생님이 
1년에 두번 새책 들여올 때
제게 그렇게 호기있는 표정으로
볼테면 봐라 
도서관 문을 열어 주셨죠

여고가 함께 있는 여중을 다니면서는
학교도서관도 커졌고
새로 생긴 불면증과 함께 
정말 책을 또 어마어마하게 
읽었죠
50권짜리 세계명작을 서너번씩 보기도 했죠
폭풍의 언덕, 테스, 주홍글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기자셨던 고모부가 기자실에 보내지는 신간을
명절때 모아오시면 
화장실 갈 때도
양장판 세계지도책을 끼고
다원이 여행한 곳곳을 찾을 정도였으니,
기이한 여자 아이였죠

그래서 초5 아들이 베르베르의 개미  5권짜리를
일주일만에 읽는게 놀랍지도 않았죠

그 엄청난 독서 덕분에 이상한 병에 걸렸죠
사람을 관찰하는 병,
먼저 대화를 많이 하진 않는데
조용히 관찰해요
그리고 서사를 만들죠

그래서, 머리속에 단편드라마가 가득 들어 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은
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주인공으로
한두번씩은 드라마에 등장했죠

가끔은 이게 재능이 되나...
글을 써볼까 하다가도
그 방대한 노동에 지레 포기하지만
등산하면서
요리하면서
이렇게 새벽에
또 어김없이 단편드라마 하나를 찍어요

동생이 방송국 작가를 한적이 있는데
그 때 살짝 질투를 했지만
그렇게 부지런 떨기는 싫었죠

오유에서 가끔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네요

그래서 그렇게 자랑할만큼 
독서하고 글 써서
뭘 얻었냐고,

남편은 무지 무지 잘생겼어요
시골 촌에서만 산 제게,
서른쯤, 
태권도로 다져진 어깨 넓고 
뽀얀 그 남자는 정말 잘생겨 보였죠

인품, 지성, 개나 줘버려
인물보고 걸혼했죠
아닌척하며..
열심히 편지를 썼죠
그 편지는 운동만 해온 남편에게
지성의 빛 같았겠죠
다 드라마틱하게 계산한거였죠

딱 한번 
그 많은 독서로 얻은 관찰병으로 
남편 하나 얻었죠
좀 잘생긴...

그럼 됐죠 뭐
이젠 늙어서 그 잘생김은 주름졌지만 
그래도 웃음만큼은 여전히 잘생긴
남편 하나 옆에 친구처럼 있으면 됐죠 뭐

책 죽어라 많이 읽은 큰아들
책은 죽어도 안읽는 작은아들
행복은 작은아들 편입니다
책 대신 사람을 보고 저렇게 미친듯이 
웃고 있으니..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