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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맞이하여 똥을 지려봅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20117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15번지
추천 : 5
조회수 : 55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3/08/01 23:2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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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귀가하여 꺼진 에어컨을 틀고ㅡ

잠들어 있는 가족들 얼굴을 바라보면,

그대로 그들과 나 사이에 

깊고 깊은 바다, 멀고 먼 섬이 되어 

그제야 오롯이 나는 나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나의 글은 내 나이보다도 먼저 녹이 쓸어
이젠 감히 무엇도 끌어오질 못합니다.

그래서 바쁘게 움직이는 손은
내 상상력이나 과거의 경험을 따라잡으며 
우주를 만화경으로 빚어내긴커녕

타인의 글을 끌어와 만집니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대포집 늙은 마담의 허벅지를 만지는
떠돌이 인부의 그것마냥 

손에는 어떤 다정함이나 부드러운 온기도 없습니다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빠르게 다듬어
출판을 대행해 주는
나의 손은 
굳은살과 자잘한 상처들로 거칠고
심지어 성급하여 

더듬는 영혼도 더듬어지는 생명도
아니, 그 이전에 그무엇도ㅡ 
만족을 못합니다.

뭐, 
물론, 
그래도 나이먹고 하는 일이니 
그게 제 밥벌이기도 하여
그렇다고 전혀 못봐줄 결과물이 탄생하는 건 아닙니다.

상품 하나, 하나, 하나가 차례대로 만들어지고
그때마다 전 감성이 흔들리지 않게 

억지로 

스스로

나의 머리에 십자 흠을 내고 
내 아이의 키만한 드라이버를 아내의 손에 들려줍니다.

그러면 밤의 장막 저편으로 물러나 있던

깊고 깊은, 멀고 먼 섬이 
다시 내 눈앞으로 다가와 꽃처럼 피어납니다.




ㅡ아,

전 그런 가 봅니다.

몰입하여 작품을 쓰고 싶은가 봅니다.

그걸로 밥을 지을 수 있다면,
그걸 제 처와 아이의 입에 물려주며 말해주고 싶은가 봅니다.



어때?
이게 아직 우리가 닿지 못한 세상이란 거야..

출처 우리집 이불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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