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 때, 서울대학교 앞에서 치킨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집 나와가지고, 그냥 대충 서울에서 제일 싼 동네 찾아보니 신림동이길래, 무작정 신림동을 찾아가서, 낮에는 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치킨호프집 알바를 했다. (대학생 휴학생인데, 인턴 할 정도로 성적이 좀 좋긴 좋았다. 헤헤)

 

치킨집에 중국인 유학생이 왔었는데,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랑만 살았고, 유학을 와서 알바를 하는 걸 엄마가 알면 슬퍼할 까봐 엄마한테는 비밀이라고 했다.

나와 그 친구는 한자로 필담을 많이 했는데, (나는 사실 지금 90년대생들처럼 한자를 잘 아는 세대는 아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다 어나더레벨로 돈이 많다는 얘기는 진짜 잘 모르고 하는 소리고,

이 친구는 생활비 모자라서 호프집에서 알바해서 충당했는데, 한국어를 너무 몰라서 주문을 매번 못 받으니, 결국 사장님이 해고했다.

나는 이 친구랑 친했기 때문에, (왜인지 다른 친구들은 이 친구랑 이야기를 안 나눔. 우리나라가 외국 나가서 인종차별 많이 한다는데,

내 생각에 우리나라 사람도 인종차별 (국가 차별) 많이 하는 듯.)

이 친구한테 아무 생각없이 난 내가 사는 집에 놀러오라고 했고, (그래봤자 집 나왔기에 고시원임.)

집에 와서 가게에서 준 (사장님이 내가 마감하니까 나한테 전기통닭 남은걸 한 마리씩 주는데, 어쩔땐 두 마리 세 마리도 줌. 그래서 나한테 통닭이 많음.) 통닭을 함께 나눠먹더니, (그래도 밥솥에 요리해서 줬다. 전기통닭 밥솥에 찜솥 기능으로 데워서 주면 파삭파삭하니 잘 구워진다.)

 그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오라고, 우리집이 더 좋다고 했다.

 

나는 신림동이란 동네 자체를 잘 몰라서,

서울대입구역에서 가까운 고시원을 골랐기 때문에, 역 근처이고, 그야말로 상업건물 내에 있는 고시원이었는데,

이 친구가 자기네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몇날 몇일날 몇 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내가 그 동네에 가 보니, (친구가 친절하게도 메모지에 버스 번호를 적어주며 이걸 타고 오라고 했다.)

지하철역에서도 굽이굽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 고시원이었다.

그때 신림9동을 가 봤고, 고시촌에서 내려, 종점에서 더 올라갔다. 마침 내가 버스를 타고 종점을 향해가던 때에, 친구가 바나나를 들고 가고 있었다.

나는 내려서 그 친구를 부르자, 그 친구는 내가 오니까 바나나를 사서 나를 대접(!) 하려고 했다고 한다.

 

같이 그 친구네 고시원에 올라왔는데,

나랑 같은 고시원비인데, 이 친구네 고시원 방에는 창문도 큼직한 게 달려있고, 방도 제법, 옷장이 들어갈 정도로 컸다.

샤워실도 컸고, 살 만한 동네였다.

 

고시원에는 "중국인은 목소리를 작게 내시오." 라는 말이 있었다.

"이건 뭐야...?"

라고 물어보니 그 친구는 몰라요, 하고 자리를 피했다. 

이사 올 때, 같은 학교 (이 친구는 서울대생) 남학생들이 많이 도와줬다며, 남자애들 이럴 때 부르기 좋다고 웃었다.ㅎㅎ

 

그후 나는 일하는 친구가 사는 이 고시원에 이사왔다.

부엌은 없는 고시원이었지만, (그러니까, 완전 기숙사 느낌도 났다.)

방이 넓고 창문도 있어서 좋았다.

아쉽게도 이 친구는 해고되었지만, 같은 고시원이어서 종종 만났다.

친구는 하루하루 생활비 걱정에 시달렸다.

국립대학에 왔는데도 돈에 허덕였다.

 

중국인 유학생은 부자라는 얘기는 사람들의 뇌피셜이고, 그냥 보통의 유학생들과 똑같이, 알바를 하며, 그것도 시간 제한이 있거나,

아니면 4대보험 없이 (사실 나 대학생 때에는 알바에게 4대보험이나 근로계약서 이런 거 없었다. 그나마 나는 은행에서 인턴해서, 4대보험이 적용된, 직장이라는 곳에 다녀, 직장 경력이 생기면서 알바도 해서 괜찮았었다. 사실 과외도 했었다. 빡세게 살았다. 걍 아버지 말 듣는 게 빡쳐서. 나왔다.) (학교 도로 들어가서 다시 마저 다니라는 주변 친구들의 조언에, (나는 그때 사춘기였는지, 학교 나중에 다니지, 뭐. 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지금처럼 일 하고, 직장 다니고, (은행 다닌 이후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잠시 일했다.) 그러다가 다시 다니지 뭐, 라고 생각을 했었다.) 주변 친구들의 조언에, 그냥 어버이날 되니 부모님 생각도 나고, 월급도 차곡차곡 받고, 신림동에 사니 돈만 모이고, 고시촌 구경다니면서 사법고시 (그때 아직 사법고시가 있었다. 고시 답안지 연습용으로 팔고, 강의 테이프도 팔았다. 당시 가난한 고시생은 강의 들을 학원비도 없어서, 이렇게 녹음된 테이프만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고시생도 많았다. 담배 개비담배도 팔았다.) 용지도 구경하고, 서점도 구경하고, 그러다가 문자로 내가 지금 일하고 있어서 집에 못 가는데, 조만간 찾아가겠다, 라고 하니, (내가 핸드폰을 없애버렸었음. 부모님이 연락 못 하게.) 부모님이 화들짝 놀랐고, 곧이어 트럭을 가지고 와서 내 짐을 싣고 나는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부모님이 내가 없어지자마자 바로 출입국 조회부터 하고, 진짜 .. 아버지란 사람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버지의 손에는 많은 공권력과 권력이 쥐어져 있어서,

내가 전국 어디에 있든 찾아내는 사람이라서,

내가 시드니에 간다고 말도 안 했는데, 내가 언제 출국했는지 어디로 갔는지 몇편행 비행기를 탔는지도 다 알아냈더라.

아마 공항에서 붙잡혔을 지도 모를 일...

그러고서 내가 어디 은행 어느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지, 내가 뭐하고 있는지도 다 조회해서 알고 있었는데,

가만히 계셨던 것이다.

 

 

아무튼, 중국인 유학생....;;

그 중국인 유학생은 주7일 알바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불안정한 유학생이었다. 희한하게도 서울대에서 국문과로 들어왔다. (중국인이 왜?) 한국어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근데 그런 것 치곤 한국어 너무 못했음.......;;

말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음....

 

사실 그도 그럴 듯이,

그 호프집에 대학생이 나뿐이었고,

나머지는 고등학교 중퇴 여학생 2명, 고졸 한의원 직원 언니 1명 있었다.

 

나는 분명 200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는데,

말 쓰고 보니 세기말 90년대 같다. 꼭. 비트같네.

 

산아제한 정책이 있어서, 형제는 없고 외동이었던 그 아이.

엄마 하나만 중국에 남겨져 있어서, 엄마 걱정 안 시키려고, 알바 하는 거 모르게 한다는 그 아이.

나랑 한 살차이였는데,

그 아이는 뭐할까. 

 

같이 맥주도 먹고, 우리집에서 치킨 먹고, 그 친구네 집에서 바나나 먹고, 잘 지냈었는데.

그 친구가 중국어 나한테 알려주는데,

나보고 중국어 발음 그거 아니라고 하는데 내 귀에는 다 똑같이 들리는데 자꾸 아니라구 다시 발음해주는데

자꾸 내 발음 그거 아니라고 하니까 슬슬 나도 개빡쳤다...ㅋㅋㅋㅋㅋ

 

사장님은 이 친구 한국어 못 한다고 잘랐는데, (사실 주문이 오면 이 친구는 자기 못한다고 피함. 이러니 사장님이 자를 수 밖에. 주문을 아예 예 못 받으니. 못 받고, 안 받고.)

내가 나중에 외국인 통역봉사 하는데, 그때 만난 중국 유학생들이 나한테 어설프게 한국어 할 때에는,

걔네는 진짜 더 못했어서, 걔네에 비하면 얘는 엄청 잘하는 편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외국 나가서 영어 아무렇게나 해도 그 사람들 다 알아듣는다, 하는 거,

그거 진짜 영어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차라리 짧은 문장이라도 완성된 문장으로 말을 해야지, 길게 아무거나 말한다고 해서 영어가 다 되는 게 아니다.

 

이걸 똑같이, 중국 유학생들 중 어떤 아이가, 한국어를 막 아무렇게나 나한테 이야기하면서 어떻게든 알아듣겠지 생각하고 말을 하는데,

진짜 도저히 못알아듣는 한국어를 하는 것이다.

뭔말이야 이게........;;

싶은 말.

단순히 조사가 틀렸다거나 이런 수준이 아니고 걍 진짜 아무것도 아닌 말.ㅋㅋㅋ

 

암튼 통역봉사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같이 덕수궁도 가고, 경복궁도 가고, 재미나게 놀았다.

거긴 어차피 중국어 해설요원이 있어서, 그분이 알아서 설명 다 해주시고, 나는 뒤따라 걸어다녔다.ㅎㅎㅎ

날씨 좋고, 구경다니고.

외국어 잘하면, 

봉사활동 하기 좋았다. 대학생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