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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5-2)
게시물ID : lovestory_945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3
조회수 : 140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8/24 10: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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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5. 처녀유격대(2)



 “자, 이거 받어. 글피 아츰에 면소로 집합이여.”

 정순은 신가가 건네주는 영장을 박박 찢어버렸다.

 “나넌 분명히 갖다줬은게 딴소리허덜 말어라이.”

 잘 째부렀어야. 까막눈이 읽을 수나 있겄다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면서 신가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정순도 학교를 다니지 못해 문맹이었다. 열한 살에 김진사네에서 꼴머슴을 시작한 신가는 여섯 살 난 그 집 손자를 업고 서당에 다녔다. 김진사 손자는 삼 년 만에 천자문을 겨우 뗐던 것이고, 반면 소싯적부터 영악하고 눈치가 빨랐던 신가는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뗐던 것이다. 아니었다면 구장 자리까지는 언감생심이었다. 이 모두가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라 믿었다. 자신이 새삼스레 기특한 신가였다.

 신가는 내일 다시 면소로 나가서 정순이 영장을 찢어버린 사실을 보고할 생각이었다. 정순이 정말 도망이라도 친다고 날뛸지 몰랐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겠지만. 그래도 책임은 면해야 했다.                          

 고샅을 돌아나가는 신가의 뒤를 향해 주먹을 지르며 외포댁이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종우쪼가리까정 주는 거 봉게 부역도 아닌 거 겉은디 왜눔덜이 허는 일얼 우덜이 어치케 막는다냐?”

 “엄니, 걱정허덜 마시오. 나가 다 수가 있은게!”

 정순이 결연히 말했다. 말은 그리 했지만 당장 무슨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수가 있어도 정신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는 게 수라면 수였다. 종군성노예에 대한 소문은 정말 끔찍스러웠다. 처녀인 분님이나 자신이 성노예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어떤 보장도 없는 지금이었다. 혹시, 거기로 가면 안될까? 그 순간, 그녀의 뇌리에는 지리산이 떠오르고 있었다.

 외포댁이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수넌, 니가 무신 수가 있어야?”

 “냉중에 말씸 디리겄소.”

 한마디 내뱉고는 정순은 입을 닫아버렸다. 외포댁은 정순의 성미를 아는지라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은 시름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정순은 분님의 집으로 갔다. 정순은 지리산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힌 참이었다. 분님의 집은 초상집이나 다름 없었다. 아직도 눈물을 찍어내는 분님이었다.

 “가시내, 누가 죽었간디? 울기넌......”

 정순은 분님을 데리고 물레방앗간으로 갔다.

 “니 정신대 갈 거시냐?”

 목소리를 한껏 낮춘 정순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럼 벨수 있간디?”

 “야, 거그 가먼 우째 되는지 알기나 혀?”

 정순은 답답했다.

 “왜눔덜 노리개 된단 말여! 성노예 된단 말여! 니, 소문도 못 들었냐?”

 “구장이 공장 간다든디......”

 분님이 자신 없어 하며 하는 말이었다.

 “임빙! 그거넌 신가눔 말이고!”

 답답함을 참지 못한 정순이 제 앙가슴을 소리가 나게 퍽, 퍽, 쳤다.

 “우덜언 무조건 거그로 끌려가게 되야 있어야. 나이도 글고, 둘 다 예쁘장헝게로. 요 맹추야! 니, 사내허고 거시기 헌다는 거시 월매나 심들고 지긋지긋헌지 아냐?”

 “...... 글먼 니넌 혀봤냐?”

 그 경황 중에도 분님은 킥, 웃고 말았다. 굴러가는 쇠똥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는 꽃다운 처녀들이었다. 정순이 분님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도 킥, 웃었다.

 “요 맹추, 꼭 혀봐야 아냐? 니도 생각혀 봐라. 니 배 우에 무건 거 얹어 놓면 심들겄냐, 안 들겄냐? 글고 신랑도 아니고 낯짝도 모르는 왜놈들인디......”

 마치 지금 일을 당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순이 진저리를 쳤다. 분님의 몸에도 소름이 돋아났다.

 “니, 쩌어쪽 산에 사람덜 있단 소문 들었지야?”

 손으로 남쪽을 가리키는 정순의 음성이 갑자기 은근해지고 있었다.

 “...... 응.”

 “우리 거그로 가자!”

 분님이 화들짝 놀랐다.

 “잽히먼 큰일 당헐 거인디......”

 “임빙, 겁만 많여 갖고! 잽히기넌 와 잽혀. 나 말 믿어, 죽어도 안 잽힌게. 글고 차라리 잽혀 죽넌 게 나서. 왜놈덜헌티 시달리는 것보돔.”

 “거그도 다 남정네덜만 있을 거인디......”

 한 가지 걱정이 또 생긴 분님이었다.

 “임빙, 남정네라고 다 같가니? 한짝은 짐성겉은 왜눔덜이고, 한짝은 독립운동허는 사람덜이여.”

 “그려도......”

 “글고 니도 들었지야, 곧 해방된다는 소문? 눈꼽만치 고상허먼 해방돼 불 거시여. 근디 머던다고 끌레가서 그 고상헐 거시냐, 거그서 개죽음 당헐지도 모르는디 말이여, 안 그냐?”

 “그러까이......”

 “가시내, 알았어야. 니넌 왜눔들헌티 징허게 시달리다 죽어라이! 나넌 산으로 갈텐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분님을 향해 정순이 매몰차게 내뱉았다. 분님이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는 정순의 팔을 부리나케 잡았다.

 “그려, 알었어. 나도 갈텡게.”

 “그려, 잘 생각혔어.”

 분님의 손을 잡는 정순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시간이 없은게 내일 밤에 뜨더라고.”

 “우리가 떠불먼 울엄니 울아부니 겁나게 당헐 거인디......”

 분님이 말끝을 흐렸다.

 “걱정허덜 말어. 도망가 부렀다는디 죽이기야 허겄어. 우덜이 전장에 끌레가 왜눔덜헌티 당허는 것보돔 훨썩 나슬 것인게.”

 “그야......”

 분님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내일 밤에 나가 느집에 갈 거니께 딱 준비해갖고 있어야?”

 “알았어. 근디 울집에 말허먼 안되까이?”

 “니가 알아서 혀라. 좌우당간 내일 밤에 못 뜨먼 끝장인 중 알어!”

 집으로 돌아온 정순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산으로 들어가고 나면 어머니가 말 못할 고초를 당할 것은 뻔했다. 어떡하든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고초를 덜 당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외포댁도 마찬가지였다.

 “엄니!”

 정순이 나직하게 외포댁을 부르며 손을 잡았다.

 “왜 그려?”

 그러지 않아도 뭔가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던 외포댁이었다. 응어리진 걱정이 가슴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것만 같이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엄니, 나가 수가 있다고 그렸지?”

 “수넌 먼 똑별난 수겄냐?”

 외포댁은 일부러 심드렁하게 물었다. 도무지 무슨 수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정순이 오기로 한 번 해보는 소리거니 치부하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무슨 좋은 수가 생기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는 외포댁이었다.

 “엄니, 나, 산으로 갈라네.”

 “산으로? 먼 말이여?”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순이 외포댁의 손을 어루만졌다.

 “엄니도 지리산에 독립운동허넌 사람덜 있넌 거 알지야?”

 “글먼 거그로 간다 말이여?”

 지리산에 있는 사람들의 소문은 급격하게 퍼지고 있어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도 남자들만 있는 곳이 아닌가.

 “거그도 남자덜만 있을 터인디 니가 갈 데가 워딨냐?”

 “그 사람덜언 남자가 아니고 독립운동허는 사람들이여.”

 “그 말이 그 말 아니여?”

 “그 사람덜언 남자로 볼 수 없단게로!”

 정순의 음성에 짜증이 조금 묻어났다. 외포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정신댄가 머신가 가는 게 낫덜 안혀? 어채피 끌려가는 신센게 까깝허겄지만 공장서 일허고 밥은 겁나 준단게로.”

 “엄니넌 시방 무신 소리 한디야? 고거는 다 허넌 소리고, 성노예 얘기도 못 들어 봤소, 엄니넌? 아짐씨덜이야 공장으루 가겄지만 우덜 겉은 처녀덜언 몽창 군대로 끌레간단게로! 시집도 못 가고 전정 망친단게로!”

 “그거이 그리 되냐? 그라먼 안 되제! 암, 안 되고 말고!”

 깜짝 놀란 외포댁의 어조가 정순 보다 더 단호했다. 왜놈이라면 안 그래도 치가 떨리는데 목숨 보다 중한 딸을 절대로 왜놈들의 노리개로 내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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