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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5-4)
게시물ID : lovestory_945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4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9/07 10: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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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5. 처녀유격대(4)



 일단 저녁을 든든히 먹어야 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었지만 거시기는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 아닌가. 배곯고는 하기 힘든 것이 거시기였다. 거기다가 상대는 다름 아닌 정순이었다. 한 번만 거시기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적어도 두 번, 아니 세 번, 아니 열 번이라도 거시기가 말을 들어주면 죽을 때까지라도 할 작정을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벼르고 있는데 마누라가 생각보다 늦게 오니 울컥 짜증이 치솟은 것이었다.

 오래 굶은 놈처럼 밥을 끌어넣고 있는 신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말골댁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저녁에 무신 일 있소?”

 “그려, 아조 긴헌 일이 있단 말여!”

 긴헌 일언 무신 긴헌 일, 술 처묵고 지집질헐 긴헌 일? 그려싸도 나가 다 알고 있어야. 말골댁은 속으로 신가를 욕해 대고 있었다. 그러나 남들은 공출이며 부역에 죽네사네하는 이 혹독한 시절에도 끼니 걱정 않게 하고 재물까지 착실히 불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녁을 한껏 먹어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신가는 신이 나서 물레방아로 향했다. 옷을 알아서 입기는 했지만 10월의 밤인지라 좀 쌀쌀했다. 날씨 또한 안성맞춤이었다. 힘든 거시기를 하다보면 이깟 날씨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더운데 거시기를 하기보다 서늘해야 힘도 덜 들었다.

 너무 일렀는가 정순은 나와 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신가는 정순이 아직 숫처녀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숫처녀일 것 같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더라고, 표시가 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당차다고는 하지만 여자는 여자, 어떤 잽싼 놈이 벌써 입맛을 다셔버렸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정순이 좋아하는 어떤 놈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신가는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숫처녀가 아니라고. 숫처녀라면 아무리 수줍게 말을 꺼냈다고는 하나 그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처녀에게 이 일이 어디 보통 일인가. 처녀를 잃고 목을 맨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아무리 제 에미가 각다분한 처지가 됐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떤가. 마누라야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정순의 발바닥에나 미칠 지 모를 일이었다. 마누라가 반쯤 썩은 명태라면 정순은 살아서 파닥이는 싱싱한 횟감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초고추장 찍지 않아도 비린내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은. 거기다 우수리로 외포댁까지 수중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외포댁은 급할 것 없이 천천히 날을 잡으면 될 것이었다.

 그야말로 횡재였다. 그러나 그저 얻은 횡재는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이 잘나서 구장까지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정순의 아버지 김방우가 그때 어혈들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꿈도 못꿀 일이었다. 김방우는 완력도 완력이었지만 배짱도, 성깔도 남달랐다. 소싯적부터 김방우에게만은 주눅이 들어 살았다. 보복이 두려웠던 신가는 소작쟁의를 고변할 때 순사들에게 김방우가 주동자란 것을 강조하면서 다리라도 하나 병신을 만들어놔야 제대로 입맛을 다시고 앞으로는 앞장선다고 나서지 못할 거라 넌지시 부추겼던 것이다. 그랬는데 김방우는 순사들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대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심한 고문을 당했고, 결국 죽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신가 자신의 잘못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도 어차피 드러날 일이었고, 김방우가 고분고분했으면 죽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정순의 집에서 세세하게 알 리가 없었으므로 정순 모녀의 원한이 그렇게 깊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정순이 매번 지나치다 싶은 행악을 떨어댈 때도 아비를 닮아 제 성질이 더러워서라고 치부했으며, 설령 원한을 품었다 해도 네까짓 것들이 어쩔 테냐 싶었던 것이다. 

 신가는 멍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아랫도리에 힘을 주고 곧 있을 정순과의 거시기를 상상하며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외포댁과 정순은 작별을 했다. 외포댁은 소리 죽여 울고, 정순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그러나 눈물까지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엄니, 편히 기시시오!”

 “정순아, 이년아, 부디 몸조심혀야!”

 모녀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정순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그러나 끝내 소리는 내지 않았다. 행여라도 이웃이 알까봐 외포댁도 따라나서지 않고 마당에서 하염없이 울고 서 있었다.

 물레방앗간 앞에서 정순은 쉽게 찾을 곳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숨겨온 부엌칼을 꺼내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로 오는 동안 어둠에 익은 눈이라고 해도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새로운 어둠에 익자 저쪽에 물체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마음으로는 벌써 수도 없이 죽였건만 막장 진짜 죽이려니 두려웠다. 신가는 왜놈들 앞잡이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고, 세상에서 없어져야 마땅한 놈이고, 남은 어머니를 위해서도 죽여야만 한다고 침착하자, 침착하자고 그녀는 자신에게 타이르고 또 타일렀다.

 “아재!”

 신가의 어깨를 흔들며 정순이 나직하게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아재!”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흔들었다. 그제야 신가는 잠에서 깨어났다. 신가는 꿈에서도 정순을 만났다. 그런데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정순이 자꾸만 달아나는 안타까운 꿈이었다. 지금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정순이 자기 앞에 있는 것이었다. 더 생각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와락 정순을 껴안았다. 그러나 그것은 신가의 생각이었다. 정순이 칼을 쥐지 않은 왼쪽 팔을 뻗어 신가의 가슴을 밀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재 옷이나 벗으시오. 나 옷은 나가 벗을 텐게.”

 정순의 음성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몸도 와들와들 떨렸다. 그러나 신가는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라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

 “그려, 그려.”

 신가는 잽싸게 옷을 벗었다. 옷을 벗으면서 목욕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만약 씨름대회처럼 옷빨리벗기대회 같은 것이 있었다면 일등은 문제없었을 날랜 동작으로 눈 깜짝할 새에 홀라당 다 벗어 버렸다. 그리고 벗은 옷을 멍석 위에 대충 깔았다. 알몸이 된 신가는 냉기가 살갗을 스치자 정순과 거시기를 하게 된 것이 더욱 실감이 났다.

 아직 정순은 옷을 벗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말은 그리했어도 부끄러웠을 것이라 생각한 신가는 내 손으로 벗겨 줘야지, 생각하면서 정순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정순이 안기려는 듯이 다가왔고, 그녀의 손길이 자신의 배에 닿았는가 했는데 느닷없이 뱃속 깊숙한 곳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커다란 불잉걸 하나가 쑤욱 들어온 것처럼 못 견디게 뜨거웠다.

 “니, 니...... 헉!”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삽시간에 온몸의 힘이 풀린 신가는 정순을 붙잡으려고 몇 번 허우적거리다가 철퍼덕, 엎어지고 말았다.

 물레방앗간을 빠져나온 정순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신가가 피를 철철 흘리며 따라와 자신의 머리채를 낚아챌 것만 같아 소름이 쫙쫙 끼쳤지만, 뛰면 안 된다고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랬다. 뛰는 소리에 누구라도 나온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정순은 종종걸음으로 분님의 집으로 갔다. 분님은 집 앞에서 초조하게 정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지리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순은 한사코 앞장을 서서 걸었다. 뛰다시피 걸으면서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느라 돌부리에 채여 엎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니, 와 그라냐?”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은 분님이 물었다.

 “따러오넌 눔덜이 있지 싶어서......”

 정순은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대로 이야기했다가는 겁 많은 분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지도 몰랐다.

 둘은 정신없이 걸었다. 날이 새기 전에 지리산 어귀에 닿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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