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대에게 드리는 꿈(5-6)
게시물ID : lovestory_946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3
조회수 : 15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09/21 10:18:44
옵션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5. 처녀유격대(6)



 다시 걸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도 걸어야 했다. 가도가도 보이느니 산이요 수풀이라 지리산일 거라 굳게 믿었다. 둘은 제일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면 거기에서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르고 또 올라도 제일 높은 곳에 당도한 것 같지가 않았다. 허기도 지고 졸음도 쏟아졌다. 주먹밥을 먹으며 추위를 피하려 불을 지폈다.

 불길을 바라보던 정순은 문득 한 생각을 했다. 어두우면 불빛이 먼 곳에서도 쉽게 보일 것이고, 근처에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불빛을 보고 순사들이 쫓아올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만큼 산속 깊이 들어온 것 같았다. 둘은 쉴 때마다 불을 지폈다. 날이 밝아서는 생나무로 불을 지펴 일부러 연기가 많이 나게 했다.

 정순의 계산은 맞았다. 지난 밤, 가까운 산채들에서는 그 불빛을 보았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유격대 산채에는 즉각 비상이 걸렸다. 밤에 불빛이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불빛과 연기는 점점 높은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 왜놈들이 토벌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조선군의 작전이라면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일단 확인을 해야 했다. 눈에 띄는 연기나 불빛은 좋을 것이 없었다. 그것은 산에 사람들이 있음을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었다. 정보에 따르면 총독부나 조선군에서도 지리산에 청년들이 있는 것을 안다고 했다. 그러나 징병과 징용을 피해 몇 명씩 은신하고 있을 뿐이지 이렇게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줄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총독부나 조선군 모두 전쟁 때문에 여력이 없기는 하지만 무장투쟁을 준비 중인 것을 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토벌을 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대로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다면 유격대는 궤멸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불을 피울 때는 항상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불빛은 새어 나가지 못하게 가리고, 연기가 나지 않는 나무가 없으면 옆으로 최대한 퍼지게 만들어 잘 보이지 않게라도 했다. 특히 야간에는 소리가 새나가지 않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활과 죽창을 든, 스님 복장을 한 유격대원들에게 둘이 둘러싸인 것은 이틀째 오후가 돼서였다. 처음에는 혼비백산했으나 이내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임을 알아본 정순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지휘자인 중대장 공춘달이 물었다.

 “머허넌 처녀덜이요?”

 “정신대 피혀서 왔어라.”

 간단한 조사를 받은 둘이 멧돼지고기로 요기를 하는 동안 너나없이 처녀들을 구경하느라 기웃거리고 난리였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보내도록 하시오.”

 대대본부 산채에서 그녀들을 쉬게 한 광복군 건국유격단 1사단 2대대장 천우삼은 대원들을 전부 불러모았다.

 “자, 이 일을 어쨌으면 좋겠소?”

 “고것이 쪼까 거시기허게 되야 부렀네요.”

 공춘달이 느리게 고개를 흔들었다.

 “도로 내레가라고 헐 수도 읎는 것이고......”

 부대대장 권영진이 말했다. 그리고 더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천우삼이 결론을 지었다.

 “날이 밝으면 사령관님께 데려가도록 하겠소. 이런 일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못 되는 것 같소.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사심을 가지고 처녀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날이 밝자 정순과 분님은 연락병을 따라 사령부로 향했다. 단잠을 자고 아침까지 든든히 먹은 터라 둘은 기운이 펄펄 났다. 그들은 점심나절에 사령부에 도착했다. 초소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연락병이 데리러 왔다. 둘은 임종일 앞에 섰다.

 “대장님이신게라?”

 “대장님이 아니라 사령관님이오.”

 연락병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순은 속으로 낼름, 혀를 내밀었다. 그거이 그거 아녀?

 둘은 꾸벅 목례를 했다. 임종일은 잔잔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래,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소? 여기는 처녀들이 지낼 만한 곳이 못 되는데 말이오.”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그럴라고 왔어라. 위원회 사람덜이 징용허고 징병 가지 말고 산으로 가라고 헌다고 들었어라.”

 정순이 얼른 대답했다. 내려가라고 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어찌해야 될 것인가? 생각에 잠긴 임종일의 침묵이 길어지자 초조해진 정순은 그만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고 말았다.

 “지가 오먼서 왜눔 앞잽이 악질 구장눔을 죽여 불고 왔어라. 야는 모르겄지만 지는 내레갈 수가 없어라.”

 “아니, 니, 니......”

 놀란 분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을을 떠나오면서 정순이 정신없이 허둥대던 것이 떠올랐다. 

 임종일은 아무런 동요 없이 한동안을 더 침묵했다.

 “일단 여기에 머무르도록 하시오.”

 “대장님, 참말로 고맙구만이라.”

 임종일의 승낙에 정순이 분님의 손을 와락 잡았다. 분님은 정순이 신가를 죽였다는 말에 아직 가슴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곧 회의가 열렸다. 임종일이 의견을 물어도 누구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총각인 대원들은 속으로는 그녀들을 받아들였으면, 하고 있었다.

 “동지들이 의견이 없다면 내가 결정하겠소. 그래도 되겠소?”

 “지덜언 사령관님 결정만 따르겄습니다.”

 모두들 찬동했다. 임종일이 지시했다.

 “다시 내려보낼 수는 없는 일이고 하니 이 기회에 지금부터는 정신대를 피해서 나온 여성동지들도 규합하도록 합시다. 제발로 찾아오도록 하는 데서 한발 더 나가서 여성들도 입산하도록 적극 선전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지금부터 두 사람을 여자로 보는 일은 없어야 되겠소. 여자가 아니라 동지들이오. 행여 사심을 가지는 동지들이 있을까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오.”

 구체적인 계획이 논의됐고, 열흘 쯤 후에 김란과 방남경이 지리산으로 왔다. 그녀들은 건국연맹 여성위원회 조직책들이었다. 정신대에 끌려가게 될 여성들에게도 입산을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은 가지산・팔공산・주왕산, 소백산・태백산, 오대산・설악산・금강산, 언진산・입암산, 묘향산 지구들에 병력배치를 끝내고 활동을 시작한 2사단에도 하달됐다. 건국유격단은 한 달여 만에 오백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건국연맹 산하기구들의 적극적인 선전활동 때문이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