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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6-4)
게시물ID : lovestory_947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76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0/26 10: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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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6. 입국(4)



싸움을 걸려면 먼저 주먹을 날리는 수밖에 없었다. 최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젖혀 그의 주먹을 피했다. 섬뜩했다. 이렇게 빠른 놈이 있었다니! 그저 그런 주먹이라면 한 손으로 술잔을 든 채 한 손으로는 날아오는 주먹을 막아 비틀었어야 했다. 반격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제대로 맞았다면 분명히 어디가 부러졌을 강한 주먹이었다. 최는 그가 만만찮은 상대임을 직감했다.

 놀란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 주먹을 피하다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과연 소문으로 듣던 대로였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으로 나갑시다.”

 그는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을 서고 있는 그를 따라가면서 최는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이길 거라는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제법 넓은 공터에 이르자 그가 뒤로 돌아섰다. 어떻게 알았는지 삽시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당대 최고의 주먹 최우용이 벌이는 일전이었다. 그는 가방은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윗도리와 넥타이를 구경꾼들에게 맡기고 자세를 잡았다. 모두들 숨소리를 죽였다.

 둘은 아무런 말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틈을 노렸다. 진짜 강자는 싸우면서 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싸우면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하는 것은 얼치기 무뢰배들이나 하는 행동이었다.

 먼저 그의 오른 주먹이 최우용의 얼굴을 노렸다. 몸을 틀어 그의 주먹을 피한 최가 이마를 앞세우고 땅을 박찼다. 평안도 박치기라는 말을 낳은 유명한 박치기였다. 최는 용수철이나 다름없었다. 탁구대를 길게 놓고 모둠발로 예사로 뛰어넘었다. 스라소니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최가 날아다니면서 싸운다는 게 헛소문이 아니었다. 옆으로 비켜 박치기를 어렵게 피한 그의 돌려차기가 최의 턱을 노리고 바람을 갈랐다. 최는 재빠르게 허리를 뒤로 접었다. 그의 발이 최의 턱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듯이 비켜갔다. 이번에는 최의 주먹이 허리의 반동을 실은 채 날아왔다. 옆으로 몸을 틀어 피한 그의 발이 최의 옆구리를 후리고 들었다. 최는 가볍게 한바퀴 몸을 굴려 저만큼 멀어져 있었다. 막상막하였다. 자기 공격을 피한 상대방의 공격을 예상하고 싸운 것은 서로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상대는 거의가 한번의 공격으로 끝이 났던 것이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구경꾼들의 손에도 땀이 축축했다. 그러나 주위를 감쌌던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한마디에 금이 가버리고 말았다.

 “형님, 내가 졌소!”

 “.......”

 과장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는 이미 자세를 풀고 있었다. 세 번, 두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으니 이만하면 인사는 치른 셈이었다. 어차피 결판을 짓기는 힘든 싸움이었고, 그렇다고 일부러 한 대 맞아 줄 수도 없었다. 빗맞더라도 며칠은 운신을 못할 게 분명했다. 길게 끌다가 순사들이라도 꾀어들어 얼굴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었다. 최만 빼곤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수록 좋았다. 다행히 그가 최보다 두 살이 적었다. 노소를 불문하고 이기는 자가 형님인 주먹세계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인사를 트는 것이었다. 가만있을 최가 아니었다.

 “야, 끝장도 안보고 무슨 소리가? 끝장을 보자우, 끝장을!”

 “형님은 술도 한 잔 했잖소. 그리고 나이도 나보다 많으니 비겨도 내가 진 거요.”

 그는 가쁜 숨을 더욱 과장했다. 이 정도면 최의 체면도 세워준 셈이었다. 최는 그렇지 않았다. 싸우면 끝장을 봐야 했다. 승패를 가리지 않는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싸움도 아니고 뭣도 아니었다. 최의 주먹이 다시 그의 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래도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최의 주먹이 자신을 가격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천하제일의 주먹이 무방비인 자신을 공격할 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최의 주먹은 그의 코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멎었다.

 “그 새끼레 참......!”

 더이상 어쩔 수 없게 된 최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기저기서 끝장 보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것도 잠시 사람들은 아쉬움을 안고 하나 둘 돌아섰다.

 둘은 어느 작은 요정에 자리 잡았다. 조용한 장소가 필요해 그가 끌다시피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가 악수를 청했다.

 “형님, 나 김대철이오.”

 이제 그는 건국연맹에서는 OSS의 오재두가 아니라 김대철이어야 했다. 그래야 미국을 속일 수 있었다.

 최는 그의 이력이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강자인데도 그에 대한 소문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넓은 바닥이라고 해도 그만한 강자라면 소문이 나게 돼 있었다.

 “니레 어디서 놀았네?”

 “미국, 왜나라, 중국 전체가 무대였소.”

 그가 껄껄거리고 웃었다.

 “기래? 쌀나라야 내 모르디만 다른 데서도 니레 이야기 못 들어서야.”

 “......”

 술상과 함께 여자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는 말을 접었다.

 “형님, 우리 친형제 합시다.”

 여자들을 내보낸 그가 정색을 하고 제의했다. 최는 생각했다. 의형제를 맺는 일이야 주먹세 계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아직은 그의 정체를 제대로 몰랐고, 보통 주먹잡이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의형제를 맺으면 정말 형제가 돼 버린다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형제는 형제였다.

 그는 최우용의 그런 마음을 읽고 있었다. 주먹세계에서 배신은 씻을 수 없는 죄였다. 바로 그들의 그런 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완력과 배짱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나서는 일에는 그들보다 더 용감할 수 있는 집단은 없었다. 그들은 명분만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더 용감하게 싸울 것이었다. 어차피 훈련을 제대로 시킬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은 몇 사람 몫을 해낼 것이었다. 그 숫자 또한 계획에 큰 도움이 될만했다. 그는 조직화할 수 있는 주먹잡이들이 전국에 대략 삼천 명은 넘으리라 추산하고 있었다.

 “기래, 돟아서.”

 마침내 결심을 굳힌 최가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단호하게 내뱉았다. 후회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둘은 손을 마주잡고 힘을 주었다. 이로써 둘은 형제가 됐다. 기분 좋은 술이 몇 순배 돌고, 그가 웃으며 물었다.

 “형님은 왜 왜놈들, 부왜파놈들만 골라서 혼내주는 거요.”

 “잘 모르가서. 여하튼 고놈들만 보믄 패주고 싶디 안카서.”

 “그건 그놈들이 우리 동포들을 못살게 구는 것 때문 아니오?”

 “기래, 기러티. 기런데 내레 워낙 무식해서리 말이디......”

 최는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형님도 독립투사요.”

 “기러면 니레.......?”

 단호한 어조에 술잔을 들다 말고 최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웃음을 싹 거둔 얼굴로 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은 지금 전쟁을 어떻게 보시오?”

 “왜놈들 디금 발악하디만 곧 자빠디디 안카서.”

 “그럼, 우린 어떡해야 되겠소?”

 “......”

 최우용은 갑자기 말문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까지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해방을 맞아야 되겠소? 왜놈들, 부왜파놈들 씨를 말리고 나라를 되찾아야 되겠소?”

 “기거야 기리티만 말이디......”

 자신이 없는 듯 최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바짝 몸을 앞으로 숙였다.

 “우린 할 수 있소!”

 선포하듯이 말하며 그가 수첩을 꺼내 펼쳐 보였다. 군복을 입고 왜왕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최는 깜짝 놀랐다. 잠깐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속았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이놈은 왜놈 앞잡이라도 거물이 틀림없는 놈이다. 그런 놈에게 자신은 속을 드러내보인 것이다. 이런 놈은 사정없이 죽여야 한다! 벌떡 일어서려는데 그가 수첩에서 두 장의 사진을 더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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