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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동남아에서 사업 하게된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20166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발자국꿍꿍
추천 : 2
조회수 : 4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1/01 19: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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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또한번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 했다. 지금까지 큰 현장에서 나름 많은 노하우를 배웠다고 생각 했고, 그까짓 인테리어 조그마한 프로젝트 한두개씩만 하면 내 월급 보다는 충분히 많이 벌겠지 싶었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또 녹록치 않았다. 대기업에서 근무 할 때 나에게 접근해 오던 연락들은 불과 퇴사 몇달만에 모조리 끊겼고, 그나마 연락 주고 받는 사람들은 같이 식사 한끼 정도 하는게 다 였다. 그 때는 잘 몰랐다. 이렇게 식사 한끼라도 같이 해 주는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 인지.

 

아무튼 난 현실적인 돌파구가 필요 했다. 내 월급은 커녕 사무실 임대료, 인터넷비용, 전기세, 직원들 보험, 세금, 직원들 월급, 사무실 비품, 영업 활동비, 등등 손 닿는 그 모든것 하나하나가 다 지출 이었다.

 

그저 숨 쉬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돈을 내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공사에 대한 노하우는 노하우가 아니었다. 그저 대기업의 우산 아래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하청 업체들 지시하고 닥달하고 자료 요청하는것 정도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나마 현장에서 굴렀던 경험이 있어서 자잘한 공사를 할 수 있다는것 뿐 이었다.

 

또한, 큰 현장에 있어봤기 때문에 인테리어를 얕봤는데, 이건 또 다른 영역이란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페인트 색깔부터, 목공의 시트지, 바닥재, 천정재, 등등 고객의 취향을 미리 파악하여 제안을 해 주고, 고객의 예산 안에서 최대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콘크리트 밖에 없는 공간을 보고 미리 머릿속에 그려내어 제안해야 하는 일 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재 공부 부터 다시 해야했다. 자주 활용되는 자재 수백가지를 접하고 공부 하는데만 2년은 걸린것 같다. 사업을 시작한지 만 7년이 되는 지금도 새로운 자재들을 심심찮게 접한다.

 

처음으로 나의 모든것을 쏟아부어 시작한 사업은 한도 끝도 없이 좌절만을 주고, 장난질을 치는것인지 좌절을 안겨줄 때 마다 또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함께 주었다. 차라리 희망이 없었다면 애초에 포기 했으리라.

 

사업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어가던때 쯤엔 빚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나마도 한국처럼 금융권 빚이라면 얼마나 좋으리. 이 나라에서 내가 돈을 빌릴수 있는곳은 전부 지인뿐 이었다. 월 이자 1.5% ~ 3% 씩 급하니 쓰고, 공사해서 갚고, 남은돈이 없으니 새로운 공사를 하기전 까지 버티기 위해 또 빌리고, 빌린돈과 이자를 갚으면 또 남는것이 없는 악순환 이었다.

 

2~3년 가량 매일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눈만 감으면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빌고 있었고, 이번에 못 갚아서 죄송하다고 빌고 있었다.

 

하루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직원이 슬리퍼를 끌고 걸어가는 소리, 프린터 출력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그저 공포스럽고 지금 당장이라도 차라리 죽고싶다는 생각이 아무 거리낌 없이 들었다. 휴대폰 진동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러한 증세가 자꾸 심해져서 병원을 찾아가 보았다.

 

의외로 의사선생님은 의연했다.

 

“공황발작 같네요. 약 하나 지어드릴테니까 증상 있을때 드세요. 우선 3주치 드릴테니까, 약 다 드시고 나서도 또 그러면 다시 오세요.”

 

너무 좋은 약 이었다. 세상이 멍 해지고, 정신이 몽롱해 지는 그런 약 이었다. 신경 안정제 같은 약 인가보다. 그렇게 몇주간 약을 달고 살다가, 아무래도 멍청이가 될 것 같아서 최대한 약을 안먹기로 해 봤다. 다만, 평소에 괜찮을때 조차도 주머니에 약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래서 늘 한두봉씩은 챙겨 다녔다.

 

사업 3년차. 이제서야 조금씩 노하우 라는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빚의 고리에서는 탈출 못 했지만, 사업 초창기때 내 집에 전기가 떨어지고, 쌀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직원들 급여는 어떻게든 챙겨주고, 현장에서 직접 나가 뛰면서 같이 밤 새고, 달밤에 먼지 구데기 속에서 함께 2000원 짜리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지낸 덕 이었을까. 간혹 급여가 밀릴때도 1-2주 씩은 참아 주었다.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게 조금씩 직원도 늘었고, 이제는 내가 영업을 하지 않아도 먼저 연락해 주는 클라이언트들도 생기기 시작할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마침 그 때 열심히 영업을 하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한국의 모 기업이 진출해 짓는 공장 프로젝트였다. 기사에 의하면 약 1조원 짜리 프로젝트. 1조원이 싼 똥에 앉은 파리 발톱의 때 만큼만 하청 받아도 좋을것 같았다.

 

당시 나에게는 이 나라에 와서 함께 동고동락 했던 친구 2명이 있었다. 둘 다 나보다 5살 6살 많은 형들 이었지만, 셋 다 온 시기도 비슷했고, 와서 만난 시기도 비슷했다. 그 중 한명은 나보다 1년반 정도 먼저 사무실을 차려 독립 했다. 행사 대행 업체였다. 각종 기업의 행사를 기회부터 실행까지 대행해 주는 사업을 했다.

 

이 형에게 코로나는 쥐약이었다. 극단적으로 놓고 보면 사람을 모으는게 주 업무인데, 국가 전체가 셧다운이 되었으니, 그 어떤 기업에서 행사를 주최하겠나.

 

그러던 어느날 둘이 소주 한잔을 주고 받고 있었다.

 

“야, 실은 내가 좀 전부터 같이 얘기 되고 있는 현지 투자자가 있는데 …”

 

“뭔 투자 ㅋㅋㅋ 사기 아니야 형?”

 

“아니야, 나도 다 알아봤지.”

 

“근데?”

 

“이게 금액이 커서, 이번에 이거 투자 받으면 어차피 우리 회사 혼자서 다 감당이 안돼. 일단 우리 회사는 총 금액에서 일정부분 써서 회사 키울건데, 남는 금액을 어떻게든 굴려야 되거든? 너 뭐 좋은거 없냐?”

 

1조원 짜리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어차피 백만분의 일 확률로 수주한다고 해도 1조원이 싼 똥에 앉은 파리의 발톱 떼 조차도 내가 혼자 감당 할 수 없을테니까.

 

“있어. 나 아직 어떻게 해결해야 될 지 모르는데 그냥 일단 따고 보자는 생각으로 영업하고 있는 프로젝트 있거든? 만약에 우리가 수주 하면 그게 한 30억 정도 될꺼야. 근데 이거 어차피 선급금도 없고, 선급금 10% 받아봤자 자금이 딸려서 힘들어.”

 

“그래? 수주한다 치면 얼마 필요한데?”

 

“4-5개월 짜리 프로젝튼데 30억이고, 2개월 안에 50%정도 공정률 뽑아야 한다면 단순 계산으로 한 15억 필요하지?”

 

“15억 투자하면 얼마 남겨줄수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오갔고, 그럼 내가 좀 더 공격적으로 영업해서 일을 따 와 볼 테니까 자금 부분은 형이 해결해 달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또 몇달간 영업을 했고, 그 백만분의 일 확률이라 생각했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우리 회사가. 이제 자금만 해결 보면 될 일 이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당일 사진을 찍어 형에게 카톡을 보냈고, 투자금이 해결 되었냐고 물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고 며칠이나 지났으려나…

 

또다시 카톡을 하는데 대답이 없었다.

 

-계속-

출처 https://youngsoop.com/read-blog/19_5-%EB%8F%99%EB%82%A8%EC%95%84%EC%97%90%EC%84%9C-%EC%82%AC%EC%97%85-%ED%95%98%EA%B2%8C%EB%90%9C-%EC%9D%B4%EC%95%BC%EA%B8%B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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