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그대에게 드리는 꿈(8-1)
게시물ID : lovestory_948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90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3/12/14 12:19:05
옵션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8. 청년단 그리고 의열대 (1)



 조직이 급속도로 커지다 보니 건국연맹은 자금 마련에 일대 전기가 필요했다. 자발적으로 연맹에 가입한 재력가들에게는 이미 한 차례 큰돈을 받아낸 상태였다. 그렇다고 비밀한 돈을 시도때도 없이 받아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왜놈들이 아무리 다급해졌다 해도 눈뜬 장님까지 됐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재무위원장 황규철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황의 요청으로 몇 명만 모인 자리였다. 

 “아시다시피 지금 가장 문제되는 것은 자금입니다. 지금 당장이야 괜찮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광복군이 국내로 이동하기 위해서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됩니다. 아직도 각처에서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는 태부족입니다. 지금은 겨우 지역간 연락을 취하고 유격단에 조금 지원하는 정도입니다. 병기를 마련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획기적인 자금조달방략이 필요합니다.”

 “좋은 방략이 없겠소?”

 더욱 어두워진 표정으로 황이 말을 마치자 여운형이 강성종과 김경재를 바라보았다. 

 김경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위험이야 무릅쓴다해도 어렵게 자금을 대 주시는 분들에게 더 내놓으라고 하기도 그렇고......”

 한참을 생각하던 강성종이 말했다.

 “부왜분자들에게 빼앗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빼앗다니? 어떻게 말이오?”

 “왜놈 강도단을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왜놈 강도들이 돈 많은 부왜파놈들에게 빼앗는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실패하면 조직이 전부 드러나게 될 수도 있는데 말이오......”

 “그래도 지금으로는 그 방법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만약 그 일을 한다면 누가 해야겠소?”

 “아무래도 우리 청년단에서 결사대를 조직하는 것이 제일 마땅할 듯 싶습니다.”

 그와 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운형이 말했다.

 “조선에서 설치는 왜놈 강도들이라...... 그거 괜찮을 것 같소. 어차피 무얼 해도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그렇게 해보도록 하시오.”

 “예. 왜말이 능숙한 동지들이 청년단에 꽤 있습니다. 잘 계획해서 추진하겠습니다.”

 여운형의 지시에 그의 대답에는 힘이 넘쳤다. 실패할 것을 미리 염려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곧 경성 근교의 어느 외딴 집에서는 난데없이 왜말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각 지역 청년단에서 왜어가 능통하고 특별히 기민한 사람들을 선발해 합숙훈련을 했다. 하야시 밑에서 운전수를 겸했던 종로의 김정달, 명치정의 최명원, 부산의 곽순식 등 20여 명이 그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의열단의 혁혁한 투쟁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의열대’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대장은 김정달이었다. 김은 운전도 가능한데다 왜인이나 다를 바 없는 왜어 솜씨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김을 교관으로 삼아 완벽한 왜어를 구사하기 위해서 생각까지도 왜어로 하는 훈련을 했다. 우리말을 한마디 하면 ‘나는 왜놈의 종이다’를 왜어로 100번씩이나 써야 하는 벌도 받았다. 다들 왜어를 곧잘하는 사람들이라 열흘만에 합숙은 끝이 났다. 그동안 그들은 말만 숙달시킨 게 아니라 왜국의 관습도 익혀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을 정도의 왜인이 되었다. 그리고 김정달에게 운전술도 배우고, 왜국칼을 쓰는 훈련도 하고, 강성종이 준 권총 두 자루로 총 쏘는 법도 익혔다. 상황 변화에 대처하는 훈련도 했다.


 의열대가 지목한 첫 번째 대상은 김명길이었다. 그 작전에는 김정달을 비롯해서 6명이 한 조를 이루었다. 의열대 1진이었다. 1진은 훈련성적이 가장 좋은 사람들로 구성됐다. 나머지 대원들은 소속지역으로 돌아가서 개별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다 2진・3진을 구성해 교대한다는 계획이었다.

 영광스럽게도(?) 1호로 지목된 김가는 충청 최대의 갑부였다. 대전 감영의 사령 군노로 노름판을 덮치러 갔다가 여자 하나를 만나 정분을 맺고, 그 여자를 충청감사의 소첩으로 상납하는 바람에 벼락 출세를 시작한 김가였다. 여자는 김가를 오라비라 속였고, 여자의 미색에 홀딱 빠진 감사가 김가를 군수로 앉혀 준 것이었다. 이후 김가는 충남 각지의 군수가 되어 횡령을 일삼고, 그 돈으로 땅을 사들여 거대지주가 됐다. 중추원 참의까지 지낸 김가의 악독한 부왜행각은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가혹한 소작료로 신문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리는 자로 충청도 사람들 사이에선 거시기 하나로 총독 못잖은 권세를 얻었다 해서 ‘거시기 총독‘이라 불렸다. 일찌감치 임정에서는 김가를 칠가살로 지목해 놓은 터였다.

 의열대 1진은 대전에서 그곳 청년단원들과 위원회 사람들에게서 김가 집의 구조 등 모든 것을 파악했다. 열흘 쯤 전에 열 일곱 먹은 첩을 새로 들여 해가 지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도 알아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의열대는 전화선을 자르고 김가의 집 담장을 넘었다. 대원들 모두가 복면을 하고 사무라이 복장에 왜국칼을 차고 있있다. 지은 죄가 많은 만큼 김가의 집에는 개도 여러 마리였다. 개들은 몇 번 짖어보지도 못하고 칼을 맞고 스러졌다. 머슴들도 몽둥이를 들고 뛰어 나왔지만 의열대원들의 발길질에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재수 없게도 집에서ᅳ집에 있음을 알고 덮친 것이지만ᅳ 새로 들인 어린 첩의 양기를 뺏고 있던 김가는 심상찮은 바깥 분위기를 눈치채고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선이 잘려 나간 전화가 될 턱이 없었다. 김가는 드디어 독립운동을 한다는 조센징놈들이 나를 죽이러 왔구나, 싶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전화선을 끊고 들어올 정도로 영악한 놈들이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김가는 방문을 닫아걸고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옷이라도 입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금고에 권총이 있었지만 생각도 나지 않았고, 생각이 났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었다.

 의열대원들은 일부는 안채를 덮치고 김정달과 최명원은 사랑채의 김가의 방문을 당겼다. 방문이 열리지 않자 최명원이 칼로 방문을 사정없이 찔렀다.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칼날을 보는 순간, 김가는 질펀하게 오줌을 싸면서 이불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그들이 이불을 거칠게 잡아채며 물었다.

 “네놈이 긴조 이치로냐?”

 믿어지지 않게도 그 말은 왜말이었다. 그들의 왜말은 김가에게는 이역만리 타관 땅에서 고향 사투리를 듣는 것보다 천배 만배로 반가운 것이었다. 그 왜말을 듣는 순간 김가는 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부왜파 중의 부왜파, 왜왕도 인정한 ‘황국신민’인 긴조 이치로가 아니냐. 이 도적놈들은 독립운동한다는 놈들이 아니라 왜놈들이다. 설마 조선땅에 사는 몇 안 되는 같은 왜국 사람끼리 죽이기야 하겠는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복면을 하고 있으니 더 희망적이었다. 그것은 재물만 빼앗아 가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바가야로 조센징! 에잇 지린내, 오줌을 싸다니!”

 눈에서 불이 튀도록 뺨을 얻어맞은 김가는 발가벗은 것도 잊고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서 닭똥 냄새가 나도록 빌었다. 그런 김가의 태도는 충청 최고의 갑부이자 부왜파 거물이 아니라 감영의 아전 나부랭이들에게 아첨해서 연명하던 군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나리들, 제발 목숨만은 살려줍쇼! 아시다시피 저는 조센징이 아니라,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라고 천황폐하도 그랬습니다요. 동포를 대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제발 목숨만은 살려줍쇼!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요!”

 역시 다 벗고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여자를 이불로 덮어씌운 김정달은 단칼에 김가를 베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껄껄 웃었다.

 “그래, 네놈이 우리 내지인이나 다름없는 황국신민이라는 건 우리도 알고 있지.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살려 주지. 우리 사무라이들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아.”

 “고맙습니다요, 고맙습니다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요!”

 “이제 그만! 우리가 온 이유는 알겠지?”

 “예. 알구말굽쇼!”

 “그러면 당장 내놔!”

 김가는 얼른 문갑에서 지전 한 뭉치와 회중시계 하나를 꺼냈다. 지전은 5천 원 정도였다. 금고에 더 많은 돈과 보석이 있었지만 자신을 상하게 할 것 같지는 않다는 희망이 보이자 금세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