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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8-3)
게시물ID : lovestory_949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2
조회수 : 180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1/04 10: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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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8. 청년단 그리고 의열대(3)



 “아이구, 아이구, 나 죽네! 나 죽어!”

 겨우 실눈을 떠서 경찰서장을 보자 김가는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오른쪽 눈은 아예 떠지지를 않았다. 다카키 서장은 김가의 몰골을 보고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죄송하다면 다요? 사람 죽고 난 뒤에 죄송하다고 그러시오. 내가 언제적부터 우리집에 순사들 좀 배치해 달라고 했소, 안 했소? 아이구, 아이구, 나 죽네!”

 김가는 더욱 엄살을 부리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다. 조선인 서장 같았으면 운신을 못하니 뺨을 때리지는 못하더라도 욕은 한 바가지는 퍼부었을 것이다.

 “거듭 죄송합니다만 의원님,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힘드시더라도 답을 해주십시오. 그래야 그놈들을 빨리 잡을 수가 있습니다. 머슴들한테 들어보니까 내지인들 같더라는데 그놈들이 내지인들 맞습디까?”

 “내지인들 맞소. 아이구, 아이구!”

 “정말이지요?”

 “내가 내지인 모르고, 조센징 모르는 사람이오? 아이구, 아이구!”

 “혹시 내지인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조선놈들이 아니었습니까? 독립운동하는 놈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하는 거요? 그놈들은 내지인들이 틀림없소. 그놈들이 독립운동하는 놈들이라면 나를 살려놨겠소? 아이구, 아이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얼마나 충성스런 황국신민인가를 왜놈 서장에게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싸리’한 왜놈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을 다시 후회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긴 자들인지는 못 보셨습니까?”

 “복면을 썼는데 어떻게 얼굴을 보겠소? 아이구, 아이구!”

 “혹시 보셨는가 해서요......”

 서장은 계속되는 김가의 죽는 소리에 은근히 짜증이 나고 있었다.

 “잃으신 것들은 얼마나 됩니까?”

 “현금 25만 원하고 패물 노리개까지 30만 원은 족히 될 거요. 아이구, 아이구!”

 김가는 거짓말을 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강도 당한 액수가 많다고 해야 더 적극적으로 신변을 보호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면서, 서장이 자신에게 받아먹은 것들을 상기시키고, 앞으로도 잘만 하면 얼마든지 더 줄 수도 있음을 암시하려는 것이었다. 가끔씩 서장에게 뭉칫돈을 주기도 했었다. 서장으로서도 이 조선땅에서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공공연한 뇌물이 있어서였다. 그중 김가가 주는 뭉칫돈은 최고였다. 서장은 그래도 자신이 도움 주는 일에 비해서는 많은 돈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함께 김가의 농토만 한바퀴 돌고 와도 한동안은 소작료 시비가 자취를 감추었고, 고리대금 뺨치는 집세 등도 마찬가지였다.

 김가는 수사를 해서 강도놈들을 잡기는 아예 바라지 않았다. 잡힐 놈들 같지도 않았고, 화가 난 그놈들이 정말 자신을 다시 찾아온다면...... 강도놈들이 자신의 바지를 벗기고, 한 놈이 자신의 거시기를 잡아늘여서 왜국칼로 스윽, 베는 것이었다. 그놈들이 막 잘라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거시기를 흔들어대며 웃었다. 김가는 생생한 환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등에는 금세 식은땀이 축축했다. 두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경찰로부터 철저히 보호를 받는 것만이 거시기를 수호하고,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액수로군요......”

 “뭐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오.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이 또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오.”

 “설마 또 오기야 하겠습니까?”

 “무슨 소리하는 거요? 그놈들은 꼭 다시 올 놈들이요!”

 김가는 펄쩍 뛰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서장의 태도를 보아서 신변보호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같아 보였다.

 “알겠습니다, 의원님. 곧바로 수사를 시작하지요.”

 “수사는 안 돼요, 안 돼!”

 김가는 있는 힘을 다해 손사래를 치며 도리질을 했다. 그놈들이 권총까지 뺏어 갔다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랬다간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할 것이 뻔했다. 서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사를 안 하면 그놈들을 어떻게 잡습니까?”

 “그놈들이 신고하면 나를 죽이겠다고 그랬단 말이오. 수사는 그만두고 순사들이나 좀 보내주시오. 나 좀 지켜주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소.”

 이제 김가는 사정을 하고 있었다. 신고하면 거시기를 자르겠다고 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놈이 지은 죄가 많으니 겁은 어지간히 나는 모양이지. 서장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잘하면 단단히 울궈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변보호는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그래도 수사는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의원님께서 강도를 당하셨는데.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수사도 하지 않으면 저는 목이 달아납니다. 그깟놈들 잡는 거야 시간문젭니다. 신변보호는 확실하게 해드릴테니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그게......”

 서장이 워낙 자신 있게 말하니 김가는 좀 안심이 되기도 했다. 특히 신변보호를 확실히 해주겠다니 믿어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달랑거리며 나타난 것은 조센징 순사 하나였다. 김가는 가슴이 철렁했다. 동시에 서장에 대한 괘씸함도 솟구쳤다.

 “워쪄 혼자여?”

 “왜유? 혼자믄 안 되남유?”

 “너 혼자서 워찌 그 많은 눔들을 당헐 것이여?”

 김가는 분통을 터트렸다. 총으로 무장한 순사 열 명, 하다못해 네 다섯은 보내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달랑 하나를 보내다니. 거기다가 얼치기 조센징 순사를. 그 순사는 경찰서 급사를 하다가 충성심을 인정받아 겨우 몇 달 전에 순사가 된 이팔룡이었다.

 “왜 겁을 먹구 그류? 나헌티는 총이 있잖유. 그러고 순사라믄 겁부터 집어묵는 것들이 도독눔들 아뉴. 이 와지마 순사만 믿고 안심허시라니께유.”

 “이눔아, 당장 가서 서장 오라고 그래!”

 그놈들에게도 총이 있단 말이다! 답답함을 못 이긴 김가는 자신이 순사가 된 것을 과시하기 위해 모자를 톡톡, 치는 이팔룡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다. 그 상판대기 한번 보기 좋다, 이눔아! 속으로 악담을 퍼부으며 이팔룡은 돌아갔다.

 다시 병원으로 온 서장은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안 그래도 인원이 없는 판에 하나 보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지. 서장은 네놈이 나에게 준 것이 있으니 그만큼이라도 해주는 것이라고 말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기에는 이번 일로 좀 받아먹으려고 하던 것이 무산될 것 같은 안타까움도 한몫을 했다.

 김가도 부아가 치밀고 있었다.

 “아니, 순사 하나 달랑 보내면 어쩌자는 거요? 그놈들은 반드시 다시 올 놈들이오. 혼자서 그 많은 놈들을 어떻게 막는다는 것이오?”

 “제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는 놈들이라도 도둑놈에 불과합니다. 독립운동한다는 놈들이라면 몰라도 도둑놈들이 순사 해치는 것 봤습니까? 순사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니까요. 그리고 현재는 의원님께 빼드릴 인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사를 더 보내주기 정 곤란하다면 총을 몇 자루 주시오. 머슴들을 무장시키겠소. 곤란하면 내가 총독 각하께 직접 말씀을 드리겠소.”

 김가는 다시 사정조가 되었다. 총을 달라니? 서장은 기가 막혀 웃고 말았다. 그러다가 머슴놈들이 총이라도 갖고 독립운동하는 놈들에게로 넘어가 버리면 그땐 자신은 목이 열 개라도 살아남지 못할 판이었다.

 “총독 각하께 이야기하셔도 안될 겁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가봐야겠습니다. 아까 그 순사 다시 보내드릴까요, 말까요?”

 “그러시오! 그 순사라도 보내주시오!”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서려는 서장에게 김가가 황황히 한 말이었다. 얼치기 순사라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나았고, 총이 한 자루 생기는 셈이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됐다. 그놈들에게도 총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가서 황태수라는 놈 좀 데리고 오니라.”

 김가는 옆에 죄인처럼 서 있던 머슴에게 호령했다. 이번에 보았듯이 머슴놈들은 믿을 게 못됐다. 아무래도 싸움질로 먹고 사는, 간덩이가 큰 주먹잡이들이 나을 것 같았다. 돈은 아까웠지만 거시기가 걸린 일이었다. 황태수는 대전 주먹잡이들의 도꼭지이자 건국청년단 충청지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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