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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에서
- 문수림
국도에는 고요보다 깊은 고요가 있어
달리는 차들의 소음만이 고즈넉함을 깬다
그래서
때로 밭길을 지날 때면,
여름날 정오의 해보다 느린 걸음의 노인들이 나타난다거나
산길에서는
배가 갈려 종(種)을 못 알아볼 짐승이나
뼈가 으스러진 고라니의 사체도 만날 때가 있고
해안가에서는
갈매기의 것인지 까마귀의 것인지도 모를
배설물과 배설물을 뒤집어쓴 조개껍질을 만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ㅡ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당신의 손을 잡는다
고요보다 깊은 고요를 품은 국도에는
달리는 차가 빚어내는
서사(敍事)가 있고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 있고
삶을 다독이는 사랑이 있다.
출처 | https://roseandfox.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