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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드리는 꿈(8-4)
게시물ID : lovestory_949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아자씨
추천 : 3
조회수 : 19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4/01/18 10: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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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

  그대에게 드리는 꿈


    8. 청년단 그리고 의열대(4)



 순사 하나에다 주먹잡이 10여 명을 병원 안팎에 배치시키고 나서야 김가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제깐놈들이 아무리 난다긴다해도 이제는 별수 없을 것이었다. 불안이 조금 씻겨나가자 빼앗긴 재물이 아까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놈들에게 빼앗긴 것만 해도 쌀이 5천 가마 꼴이었다. 그리고 또 주먹잡이들 하루 품삯이 한 명당 20원이었다. 밥도 먹여야지, 거기다가 서장놈도 챙겨 줘야지, 순사놈도 챙겨 줘야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시기로 흥했으나, 거시기 지키느라 망할 것만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강도놈들이 잡히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수사는 대전 인근의 우범자들을 족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봤자 나오는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급기야 경무국에서는 하야시를 불러들였다. 조선에 들어와 있는 왜국 낭인들은 모두 하야시의 똘마니나 다름 없었다. 왜국 낭인들은 조선의 주먹잡이들처럼 크고 작게 나눠진 것이 아니라 전부가 하야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경무국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다고는 해도 뭉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수사과장 마쓰다의 추궁을 받던 하야시가 맞고함을 질렀다.

 “이보시오, 우리는 사무라이요. 아무리 궁해도 도둑질은 하지 않소. 정 우리가 의심된다면 수사를 해보시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쓰다가 하야시를 달랬다. 낭인조직이 없으면 조선의 통치는 더 힘들 것이었다. 총독부가 직접 나서기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집단이 낭인들이었다.

 “그래, 짚이는 놈들도 없어?”

 “없다고 했잖소.”

 “안 그러면 요새 조센징놈들은 수상한 점 없었어?”

 “요새라고 별로 다를 것은 없었소. 한 달쯤 전에 저희들끼리 두 패로 갈려 대가리 터지게 싸운 것은 아실테고......”

 그렇다면 왜국에서 건너온 이름도 없는 올챙이 도둑놈들의 소행이 분명했다. 수사는 아무런 진전이 없고, 빼앗아 갔다는 자동차마저 오리무중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선 조선의 부호들에게, 특히 부왜 재력가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열대 1진이 전과를 보고하자 반민특위위원장인 김경재가 희색이 만면해서 치사를 했다.

 “동지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고마워하오! 동지들의 혁혁한 투쟁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오. 자랑스럽소......”

 이어서 김경재가 모르는 것까지 들어서 알고 있는 강성종이 당부했다.

 “모두들 너무너무 고생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의열대 결성식 때 했던 말을 다시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군인입니다.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별하고 빼어난 군인이지요. 무뢰배는 무차별적인 폭력을 쓰지만, 군인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만을 행사합니다. 불필요한 폭력으로 임무를 그르쳐서는 안 됩니다. 내일 그 적을 제거하는 임무를 받았으면 오늘 죽여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게 군인입니다. 물론 그놈들도 나중에는 우리 손으로 처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임무는 그놈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을 조달하는 것입니다. 각별히 신경을 써 주기를 바랍니다......”

 단 한번의 거사로 엄청난 자금이 들어오고, 대전의 청년단원들까지 김명길에게 고용돼 벌이가 짭짤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건국연맹 지도부에서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것이 아니냐고 좋아들 했다.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던 일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두 번째로 강도를 당한 자는 문갑술이었다. 영남의 대부호인 문가는 왜왕을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광신도라 부르는 게 마땅했다. 평안도 출신으로 유민으로 떠돌다가 포항에 정착한 문가는 권세를 가진 자들 앞에서 납작 엎드려 기면서 기회를 잡아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쥐어짜서 발판을 마련했고, 육군기와 해군기 1대 씩을 헌납하면서부터 명실공히 조선 최고의 부왜파로 인정받게 됐다. 그 비행기들의 이름이 ‘문갑술호’였다. 왜말만을 사용한 지 오래인 문가는 기모노에 게다짝을 끌고 동경을 마실 다니듯이 하는 것을 크나큰 자랑으로 삼고, 자신은 잠꼬대도 왜말로 하므로 왜말을 상용하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도 않는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문가의 부왜행각 중 백미는 세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자살특공대의 필요성을 중왜전쟁 때 이미 주창한 것이었다. 왜국에서 볼 때 문가는 선견지명을 가진 지혜로운 선각자 중의 선각자였다. 당연히 문가도 ‘칠가살‘ 대상이었다.

 과연 문가는 예지력이 남달랐다. 며칠이 지나 경무국의 통보와 소문을 바탕으로 김명길이 강도를 당한 전모를 나름대로 파악한 문가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강도놈들이 자신에게도 올 것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강도놈들이 왜놈들이 아니라 필시 독립운동가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가는 얼굴이 영 못쓰게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었고,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차라리 동경으로 피신을 가서 몇 달 놀다 올까 싶기도 했다. 경성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긴자의 기생들이 눈에 삼삼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지, 그놈들에게 꼭 당할 필요는 없지. 내 손으로 때려잡을 수도 있는 일이지. 그놈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놈들이 맞고, 내 손으로 때려잡는다면...... 그리 되면 또 한번 큰 공을 세우는 것이었다. 인자하신 천황폐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충성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경찰서로 달려간 문가는 다짜고짜 서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나에게 총을 주시오!”

 “난데없이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느닷없는 문가의 요구에 어리둥절해진 서장 석봉구가 물었다. 이 영감탱이가 노망을 했나? 석가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대전 긴조상에게 온 그놈들이 나에게도 분명 올 것 같소. 그러니 나에게 총을 몇 자루 주시오! 우리집 애들을 무장시켜서 그놈 새끼들을 때려잡아 버릴 거니까.”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로는 오지 않을 겁니다. 온다고 해도 제가 지켜드립니다.”

 석가는 기가 차서 웃고 말았다. 노크도 없이 문가가 문을 열어젖힌 데 대해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총독놈들도 인정하는 왜놈의 종이라도 그렇지, 이 영감탱이가 눈에 뵈는 게 없나? 눈치채지 않게 문가를 한번 째려보는 석가였다.

 “아니오. 그놈들을 꼭 내 손으로 잡고 싶소. 그놈 새끼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냄새가 나오. 독립운동한다고 제 죽을 줄 모르고 설쳐대는 그놈들일 것 같소. 그놈 새끼들이 그런 놈들이라면 가차없이 때려잡아야지. 그래서 천황폐하께 충성하고 싶소.”

 석가는 노망도 가지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왜파지만, 그래서 서장까지 됐지만 문가가 설치고 다니는 꼴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가는 도지사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벗바리가 좋았고, 또 막강한 재력도 갖고 있었다. 석가도 제깐에는 뇌물이든 뭐든 닥치는 대로 챙겼지만 문가의 재산에는 새발의 피였다.

 “그렇다고 해도 총은......”

 “어허, 이거 보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볼일을 보면 될 것 아니오. 나는 우리집에 오는 도둑놈들을 잡을 테니까!”

 문가가 성급하게 석가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나 되지도 않을 소리였다. 그랬다가 총이 밖으로 새어나가서 독립운동하는 인간들에게 넘어가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문가야 왜왕도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이라고 해도 그 집 가노놈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말이다. 석가도 대전경찰서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어찌 총을 달라고 하십니까? 총은 함부로 내돌려도 되는 물건이 아닌 것 아시잖습니 까? 아무 걱정마시고 집에 가서 계십시오. 우리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이보시오 서장, 말을 그렇게도 못 알아듣소? 내가 그놈 새끼들이 분명히 온다고 하잖소!”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무식한 게 말이 통해야 말이지. 너에게 온다고 그놈들이 기별이라도 보냈드냐? 석가는 마음 같으면 이가의 뺨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문가가 자꾸만 어거지를 쓰자 그만 쫓아버릴 심산으로 석가는 서랍을 열어 권총 한 자루를 내놨다. 자신의 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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