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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이승만을 싫어했던 이유
게시물ID : sisa_12318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8
조회수 : 88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4/02/18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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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dayhumor.com/?sisa_1231706

 

위 링크를 보시면 박정희가 이승만을 가리켜 "동정할 여지가 전혀 없다."라면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왜 그토록 이승만을 싫어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승만 집권 시절, 군인들의 처우가 매우 형편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래는 당시를 살아가던 군인들의 증언들입니다. 

 

1955년부터 1960년까지 강원도 화천 3사단 포병중대의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강호창의 증언

"휴가를 나간 사병이 안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데리러 가 보면 '배가 고파서 못 견디겠다'고 귀대를 거부했다. (중략) 많은 장교들이 도둑질로 먹고 살고 있었다."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이 일부러 장교들의 처우를 나쁘게 해놓고는 군대를 통제하려고 한다."


5.16 쿠데타에 참가한 이석제의 증언

"4.19가 일어난 1960년 육군 중령이던 내 월급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어서 거지 신세를 겨우 면할 정도였다. 군대 월급으로 네 식구가 보름 정도 버티면 다행이었다. 월급으로 생존이 불가능하니까 장교들은 사병들에게 지급되는 주식과 부식, 각종 보급품을 빼돌려 가정생활에 보태야 했다. 군을 통솔하는 고급 장교가 부대 보급품에서 퍼낸 쌀자루를 어깨에 메고 귀가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내 아내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가족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다. 열흘 정도는 어렵게 버티다가 나머지 보름은 동네 가게에서 외상으로 쌀과 연탄을 얻어다 궁핍한 살림을 꾸려갔다. 어느 날에는 며칠째 양식이 떨어져 식구들이 곡기를 끊었다. 일어설 힘도 없어 육군대학으로의 출근을 포기하고 자리보전하고 누워 맹물로 허기를 달랬다."

 

1960년 육본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육사8기 이영근 중령의 증언

"장교들은 영내에서 점심을 굶고 '불식미'라는 전표를 모아 쌀로 바꾸곤 그릇도 마땅치 않아 신문지에 받아서 집으로 가져가곤했다. 미국에 군사유학까지 간 장교가 쌀이 부족해 군용파카의 털달린 안감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살던 시대였다. 울분이 절로 솟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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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군인들을 굶겨 놓았으니, 자연히 군인들은 이승만에 대해 깊은 분노를 품었고 그래서 1960년 4월 19일 이승만을 몰아내려는 국민들의 4.19 혁명이 일어나자 이승만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불렀으나 군인들이 이승만의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시위대에 가담하는 바람에 결국 이승만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출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398473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권/ 113~115쪽
1998년 6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박정희 생애] 제8부 격랑속으로-④ 황용주의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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