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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설립 기념글 - 단군신화
게시물ID : history_1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쓰랄
추천 : 1
조회수 : 6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4/08 00:25:52
13세기 일연스님 편찬 『삼국유사』「기이 제 - 1」《 고조선 조 》의 단군신화 전문. 고기(古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자주 인간 세상에 뜻을 두었다. 아버지가 이를 알고 삼위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만했다. 이에 천부인 세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라 불렀다. 그가 바로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는리고 곡식, 목숨, 질병, 형벌,선악 등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렸다. 이 때 곰 한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에서 살았다. 둘은 환웅에게 늘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환웅이 영험한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받아먹었다. 곰은 금기를 잘 지켜 21일만에 여자가 되었으나, 범은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결혼할 상재가 없었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 배기를 빌었다.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요임금이 왕위에 오른 뒤 50년 되는 경인녕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일컬었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왕위에 오른 을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단군은 장당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었다. 나이가 1908세 였다고 한다 - 단군신화에 대한 쓰랄 대족장의 사족. 무척이나 이분법적 요소가 많고 선민사상이 엿보이지만 자주민족의지를 돋보이는 아주 `떠거운` 우리신화. 환인의 아들 환웅이 데려온 무리 3천과 인간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곰과 호랑이 토템으로 대표되는 사람들까지 서로 화합을 이루어 오랫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던 우리민족의 신화는 구약성경이나 그리스 로마신화, 북구신화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흔히 해석되다시피 천제의 피를 이은 선민사상과 토테미즘은 말할것도 없고 중국과의 역사에서도 스스로 분리된 자주적인 민족의지와 음양의 요소까지 언급한 우리 신화는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흥미진진하고 멋진 서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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