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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는 없는 국사 (1.태조~성종) 비정제된 자료입니다.
게시물ID : history_10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기심소년
추천 : 1
조회수 : 8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1/05/01 00:46:26
1.근세의 정치

한국사에서의 근세는 조선 전기

조선은 
'15C '조선 초기 9대 성종까지 (왕조 창업기)'
 16C 조선 중기(연산군~광해군)

초중기를 합쳐 조선 전기라 하고 이를 근세라한다.
17C 조선 후기는 흔히 근대 태동기라 한다.

조선 전기와 후기는 양난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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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배층 ; 양반 (동반과 서반/ 문반과 무반)  임금의 왼쪽 문반 , 임금의 오른쪽 무반 임금의 맞은편 남반은 기술관 

양반만이 조선의 지배층은 아니다. 과거를 준비하는 사계층과  과거에 합격한 대부 (사대부)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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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시대 주인공은 양반 사대부 중에서 관학파 -> 훈구파 (15C 수준 높은 근세 문화 창단의 주역)
cf)주례를 받아들여 통치제도 정비에 활용 

조선 중기 '시대 주인공은 -> 사림파  (경상,충청 지방 선비들이 조정에 출사하여 새로운 세력 형성) 
cf)주자가례를 향촌에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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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 신진사대부의 분화

1.온건파 사대부 : 정몽주, 이색 -> 고려왕조 그대로 지키자

2.혁명파 사대부 : 정도전, 조준 -> 새 왕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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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 정치 발전 

태조 이성계 시대에는 소수의 재상들이 활약했다. 이 중에서도 정도전이 가장 중요 

정도전: 우리나라 최초의 입헌군주론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도전이 바라본 군주제의 문제:  뛰어난 군주와 용렬한 군주의 차이가 크다 -> 군주제의 모순 
but 군주제 부인 불가, 따라서 재상들의 군주 보필 강조    

*cf)정도전의 3권의 책: 불씨잡변 / 고려국사 / 조선경국전

그러나 왕자의 난으로 인해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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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난

태조 이성계의 부인 2명 향처인 함흥 처 한씨부인 / 경처 개경 처 강씨부인

한씨 부인은 조선 창업 전 죽는데, 이 여자로부터의 아들 6왕자가 있다. 

강씨 부인으로부터 7왕자 8왕자 / 방건 , 방석

큰 아들 이방우는 아버지와 노선이 다르다. 아버지의 역성혁명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의 신하로 남음. 큰 아들은 세자 책봉에서 제외

누가 세자를 책봉할 것인가. 5왕자 이방원이 왕조 창업 과정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함. (정몽준을 선죽교에서 때려잡는 등)

그러나 정도전과 강씨부인의 추천으로 8왕자 12살 이방석이 세자가 됨. 

한씨 부인 소생의 5왕자들은 불같이 일어나고. 

*1398 무인정사 (1차 왕자의 난) -> 2왕자 이방과, 4왕자 이방간, 5왕자 이방원이 큰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 방번, 방석+정도전 등을 무력으로 때려 죽임

이성계는 옥쇄를 가지고 함흥으로 떠난다. 

이후 이방과가 2대 정종이 됨, 이때 2차 왕자의 난(이방간 < 이방원) 으로 이방간 연금 , 이방과 물러나는 식으로 이방원이 왕이 된다. 
이방원: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닦음 
+외척을 처단 ( 왕권 강화의 걸림돌인 자신의 부인인 민씨의 남동생 4명을 모두 때려죽임)

-> 세종 세조로 이어지는 황금시대의 초석을 닦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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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umos31.blog.me/5010297220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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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에게는 4왕자 
1.양녕대군 2.효령대군 3.충녕대군 4.성녕대군 

양녕대군은 세자로 20년동안 있다가, 덕이 없다고 쫓겨남 (???)

효령대군은 스님이 되었고 (장수함 성종때까지)

성녕대군은 일찍 죽고 

충녕대군이 19살에 왕이 된다. (세종)

세종의 정식 부인 청송 심씨로부터 8왕자 (모두 천재였데)

큰 아들은 문종 / 둘째 수양대군 세조 / 셋째는 안평대군 최고의 문필가, 인기남 등등 다 잘났다

*문종이 몸이 아주 약했다. 세종은 아주 걱정을 했다. 
세종은 어느 날 양녕대군을 불러 고민을 털어놓음 (문종이 너무 몸이 약하다~) 
양녕대군은 세자를 수양대군으로 갈자고 제안, 그러나 세종은 거절 (농경 국가인 조선이 세종 이전에 적장자 상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생각하여) 

문종이 왕이 되었을 때도 자기가 금방 죽을 것을 고려하여 문종이 김종서 황보인을 불르고, 노산군에게 김종서 황보인에게 절하게 하고,  아버지로 따를 것을 명령, 범같은 자기 동생으로부터 노산군을 지켜달라. 

그리하여 우의정 김종서가 정권을 획득하고, 2왕자인 수양대군(소수파), 안평대군(다수파)을 견제.   특히 수양대군을 심히 견제, 

수양대군 : "이게 이씨 나라지 김종서 나라냐?" -> 장사들을 모아 매복하고 출근하는 김종서를 때려잡음 (계유정난) 



수양대군 : 왕은 그대로 있고 영의정이 됨.  그러나 종친이 관직에 오르느냐 등등 문제로 신하들은 왕에게 상왕이 되게 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됨. 이후 상왕을 폐위-> 유배->허리꺾어 죽이기

세종 말년에 몸이 안 좋았고 문종도 마찬가지여서 환관을 많이 부름 -> 왕권이 약화되어 있음. 이러한 상황에서 세조는 6조 직계제를 부활시킨다. + 일부 종친들을 등용

*일부종친 
구성군(이준) : 수양대군의 동생 임영대군의 아들   -> 이시애의 난 토벌 and 영의정에 앉힘
남이장군 : 태종 딸의 아들 -> 병조 판서에 앉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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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복위 운동 (성삼문 , 박팽년 등등)에 참여한 6명 중 5명이 집현전 학자들 
따라서 세조는 집현전 없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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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에게는 아들이 둘
세자(덕종)는 일찍 죽음 , 둘째 예종이 왕이 되지만 아버지 장례 지내고는 금방 죽음 (발에 종기기 옮아 붙어서)

그래서 죽은 세자(덕종)의 아들 (12살 월산대군, 9살 잘산대군) 중 잘산대군(성종)이 왕이 됨. -> 성종이 마누라 잘 만남 (그 당시 실세였던 한명회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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