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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결혼식
게시물ID : panic_168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몬샤벳
추천 : 3
조회수 : 192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6/28 22:48:26
어두침침한 취조실의 전등 아래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형사는 테이블 앞에 앉아 담배를 꼬나문 채 사건 서류와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양형사 맞은편에 초췌한 얼굴의 조사장이 앉아있었다. 
서류를 다 읽어본 양형사가 사진들을 휙휙 넘겨보더니 힐끗 조사장을 바라보았다. 
양형사는 썩은 웃음을 날리며 서류와 사진들을 테이블 위로 내던졌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너 정신병자야? 싸이코야?”

그러나 조사장은 말이 없었다. 
조사장은 테이블 위에 흩어진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전부 다 딸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이었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다 너 사정이고. 예 혹은 아니오 로만 대답해. 변호사 오면 그때 입 열거야?”
“......아니오. 솔직하게 다 털어놓겠습니다.”
“그래. 솔직한 게 서로한테 편한 거 알지? 헛소리 하면 죽을 줄 알아. 그럼 읊어봐.”

양형사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그리고 긴 한숨처럼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옆에 놓여 있던 타자기를 끌어당겨 자신의 앞에 놓았다. 
타이핑 준비가 되자 조사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밤이 깊은 새벽이었다. 
한적한 도시 외곽에 위치한 스튜디오 건물 앞에 고급 외제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문이 벌컥 열리자 피투성이 얼굴을 한 구상원이 쏜살 같이 튀어나왔다. 
구상원은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땅바닥 위에서 발버둥 치다가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나 곧이어 차 안에서 나온 두 명의 용역 직원들이 구상원을 무자비하게 밟아대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스튜디오 건물의 문이 열리며 안에서 조사장이 나왔다. 
조사장이 앞에 서자 두 명의 용역 직원들은 조사장에게 인사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네가 구상원이라는 이름의 청년인가?”

그러자 땅바닥에 쓰러진 구상원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구상원은 코피를 쓰윽 닦아내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 잡아 죽이려는 남편들 많다는 거 나도 알거든요? 그런데 누군지는 알고 좀 맞읍시다. 
누구 남편이오?”
“......조아라라는 이름의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가?”

구상원은 허공을 바라보며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상원은 양복에 묻은 흙을 털고 주름을 반듯하게 펴며 말했다. 

“아, 그 순진무구한 애? 아이고 정말 영계를 물으셨네. 정부인은 아니죠? 
당신도 떳떳한 관계는 아닐 텐데 내가 물었다고 이러는 겁니까?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 아이는 내 딸일세.”

조사장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구상원을 노려보았다. 
어두운 조명에 비친 조사장의 얼굴은 초로의 얼굴이 더욱 피곤하고 늙어보였다. 
매우 화가 나서 얼굴이 굳어있었지만 조사장은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제야 구상원은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다.

“에이, 이 사업 하다보면 임신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십니까? 따, 따님도 이런 저런 남자경험 하다보면 다 겪는 일일 겁니다. 자, 자 화 푸시고 정 그러시다면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하던지 하세요. 까짓것 빵에서 몇 년 썩으면 되니까.”
“......자네는 아라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는가?”
“다, 당연히 미안하죠. 저도 양심이 있는데. 하지만 남녀 관계라는 게 헤어질 때는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사랑해서 헤어질 수도 있는 거죠.”
“......그럼 자네는 아라를 정말로 사랑했는가?”
“당연하죠. 우리 아라가 그렇게 울고불고 한 거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그럼 따라오게.” 

조사장은 뒤돌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상원은 어떻게든 튀기 위해 재빨리 뒤돌아섰다. 
하지만 험악한 표정을 한 두 명의 용역 직원들이 곧바로 구상원의 앞을 막아섰다. 
구상원은 두 손을 들고 다시 뒤돌아서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나는 내 몸뚱이가 사업 밑천이라고.”

구상원은 용역직원들과 함께 스튜디오 안에 들어섰다. 
환한 조명으로 가득 찬 스튜디오는 전형적인 웨딩 스튜디오였다. 
구상원은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환한 곳으로 들어오자 눈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가렸다. 
구상원이 찡그리며 앞을 바라보자 조사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스튜디오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나랑 결혼하자고 했다고 설마 결혼사진까지 찍으러 여기까지 온 건......”

구상원은 스튜디오의 가운데를 바라보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곳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조아라가 서 있었다. 
어찌 보면 웨딩스튜디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구상원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하며 입을 벌리고 말았다. 
조아라는 천장에 매달린 끈에 의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조아라의 시선은 위로 향한 채 입이 쩌억 벌어져 있었고 두 발은 50cm정도 허공에 떠 있었다. 
구상원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용역직원들에 붙잡히며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우리 아라는 너무 조용하고 소심해서 남자는커녕 친구 하나 사귀기 힘들었네. 그런데 자네 때문에 자기 아이를 임신한 채 죽고 말았지. 누가 내 딸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자네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다못해 영혼결혼식이라도 치러줘야 내 딸의 원한이 풀리지 않겠나.”
“미, 미쳤어?! 쟤가 자살한 게 왜 나 때문이야? 그리고 나보고 지금 저 시체랑 결혼하라고? 단단히 미쳤네! 난 가겠어!”

구상원은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러자 용역 직원이 구상원의 목을 향해 시퍼런 회칼을 들이밀었다. 
구상원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회칼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구상원의 뒤통수를 향해 조사장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자네가 협조하지 않겠다면 자네의 시체를 옆에 매달아놓고 결혼식을 올리겠네. 
그리고 아라와 함께 합묘할 것일세. 어떻게 할 건가?!”

다른 용역직원 한명이 구상원에게 턱시도를 내밀었다. 
구상원은 매우 분노한 얼굴로 이를 악물며 조사장을 뒤돌아보았다. 



양형사는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양형사는 그 중 제일 큰 사진을 집어 들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여느 사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부가 천장에 목이 매달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의 구상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턱시도를 입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딸의 소원이었던 결혼식을 시켜준 거야?”
“......제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양형사는 담배를 꼬나물고 사진을 한 장씩 넘겼다. 
구상원이 조아라의 시체를 등에 업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 바로 다음 사진은 시체가 뒤로 넘어가서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이 찍혀 있었다. 
다음 사진에는 구상원이 조아라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을 질질 끌고 가는 장면이 이어졌다. 
카메라의 화질은 좋았지만 사진 경험이 전혀 없는 용역 직원이 찍어서인지 정말 마구잡이로 찍혀 있었다.

“자, 그럼 내가 사진을 내밀 때마다 그 사진이 어떤 상황에서 찍혔는지 똑바로 말해. 말 돌리지 말고. 알았지?”
“.......”

양형사는 세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첫 번째 사진은 주례처럼 가운데 서 있는 용역직원과 그 양 옆에 허공에 매달린 조아라의 시체와 뻣뻣이 서 있는 구상원이 있었다. 
다른 사진에는 조아라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우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는 의자에 올라선 구상원이 조아라의 입에 키스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구상원은 한손으로 조아라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조아라의 벌어진 턱을 억지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억지로 키스하고 있는 구상원의 얼굴을 조아라가 노려보고 있었다.

“보다시피 결혼식 하는 모습입니다. 결혼 선서하고 반지 교환하고.......”
“좋아. 그럼 이건 뭐지?”

양형사가 내민 사진은 고급 외제차 뒷좌석에 타고 있는 조아라와 구상원이었다. 
어느새 조아라는 교복으로, 구상원은 원래 입고 있던 양복으로 갈아입어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용역 직원은 구상원의 목에 회칼을 들이밀고 있었고 구상원은 조아라의 머리채를 잡은 채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조아라는 다시 입을 쩍 벌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혼여행을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왕 시작한 거 첫날밤까지 치러주자는 생각으로 그랬습니다.”
“음? 딸내미 나이는 22살이던데 교복을 입혀 놨네?”
“괴롭힘을 심하게 당해서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학교를 매우 그리워해서 마지막으로 입혀주고 싶었습니다.”

양형사는 다음 사진을 보았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한 바닷가 백사장이였다. 
조아라는 휠체어에 앉은 채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구상원은 조아라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손으론 조아라의 열린 입을 닫고 있었다. 
어느새 채워놓았는지 구상원의 오른팔과 조아라의 왼팔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구상원의 한쪽 뺨에는 칼로 당한 듯 꽤 깊은 상처가 나있었다. 

“음? 그런데 이건 뭐지?”

양형사는 자세히 보기 위해 눈가를 찌푸렸다. 
조아라의 머리 위에 희뿌연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분명히 조아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넋이 나가있는 조아라의 시체와 달린 희뿌연 형상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양형사는 사진을 조사장에게 내밀었다. 조사장도 그 사진을 바라보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일출을 등지고 찍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렌즈에 빛이 굴절돼서 형상이 두 개로 찍혔을 겁니다.”

조사장은 다시 사진을 건네주었다. 양형사는 다시금 유심히 사진을 바라보았다.
과연 빛의 굴절로 인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었다면 피사체인 조아라와 구상원 전체가 두 개로 보여야 했다. 
하지만 조아라의 얼굴만이 희뿌옇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계속 그 눈빛을 응시하고 있다 보니 잔뼈가 굵은 양형사도 소름이 끼쳐왔다.

“당연히 그렇겠지? 보고서에다가 유령 따위가 찍혔다고 할 수는 없잖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양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께름칙해졌다. 
양형사는 얼른 다음 사진을 보았다. 다들 어딘가 산속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장면이었다. 
구상원 은 낙엽 위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수갑에 의해 구상원의 손에 매달린 조아라 역시 낙엽 위에 누워있었다. 양형사는 다음 사진을 넘겨보았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앉아있는 구상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구상원의 어깨 뒤에 조아라의 머리가 찍혀 있었다. 
그 머리는 어깨 위로 눈만 내민 채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연사로 찍혔는지 바로 다음 장에는 그 머리가 뒤로 돌아가 있었다. 
이건 명백한 심령사진이었다. 조아라의 몸은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서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아라의 머리가 떨어져서 구상원의 어깨 뒤에 있을 리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양형사는 그 사진만 따로 빼서 뒤집어 놓았다. 
조사장이 딸의 심령사진을 본다면 어떠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온갖 범죄자를 대하면서도 무섭지 않았지만 실제 귀신의 눈빛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이 떨려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양형사는 얼른 다음 사진을 보았다. 조사장 일행은 커다란 호텔방 안에 있었다. 
어느새 조아라와 구상원은 한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조아라의 시체는 더블침대 위에 놓여있었고 용역 직원이 구상원의 팔과 다리를 침대의 네 기둥에 묶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 사진에는 카메라를 찍고 있는 용역 직원의 칼을 쥔 손이 겁에 질린 구상원의 목 앞에 들이밀어져 있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먼. 정말 첫날밤까지 치러준 거야?”
“.......그래야만 제 딸이 한을 품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갈 거라 믿었습니다.”

구상원은 조아라를 침대 위에 던져 놓은 뒤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용역 직원 한 명은 밖의 상황을 살펴보고 다른 한 명은 캠코더를 거대한 벽걸이 텔레비전에 연결하고 있었다. 
조사장은 구상원을 내려다보며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라. 이게 마지막이다. 오늘밤 동안만 내 딸과 같이 있어주면 내일 아침에 풀어주겠다. 이게 다 내 딸이 원한을 풀고 승천하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 날 원망하지 마라.”
“뻥치지 마! 나까지 죽여다가 이년이랑 같이 무덤 속에 처넣으려는 거 다 알아! 너희들 전부 미쳤어! 이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전부 미쳤어!”
“다 되었습니다. 사장님.”

용역 직원이 캠코더를 벽걸이 텔레비전에 연결한 뒤 캠코더 테이프를 뒤로 감기 시작했다. 조사장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구상원에게 말했다.

“잘 보게. 내 딸의 마지막 유언일세.”

테이프가 전부 감기자 조사장은 캠코더를 플레이 시켰다. 
그러자 지난밤 조아라가 목매달아 죽은 스튜디오가 나왔다. 
잠시 후 웨딩드레스를 입은 조아라가 조심스레 화면 앞에 나타났다. 
너무 울어서 눈이 부어버린 조아라는 한참 동안 고개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결국 조아라는 고개를 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너무 오빠 좋아했던 거 알지? 난 오빠가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어. 난 정말로 정말로 오빠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만 내 마음을 오빠가 알아줄지 모르겠어. 하지만 난 정말로 오빠뿐이야. 아무리 오빠가 날 버린다고 해도....... 오빠. 내 안에는 오빠랑 나의 귀여운 아기도 있어. 하지만 오빠가 이런 식으로 날 버린다면........”

구상원은 경악으로 입이 벌어졌다. 
조아라는 죽기 직전에 영상 형식의 유언을 남긴 것이었다. 
그것도 아예 작정한 듯 스튜디오를 통째로 빌려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유언을 하고 있었다. 
조아라는 한참 동안이나 구상원을 향한 사랑과 일방적인 헤어짐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 했다. 
유언이 계속 되면 계속 될수록 조아라의 말은 흐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럴 수 밖에 없는 거 나도 정말 괴로워. 마지막으로....... 아빠 미안해.”

조아라는 흐느끼며 카메라 앞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스튜디오 중간에 있는 의자 위로 올라갔다. 
이미 천장에는 올가미가 매달려 있었다. 
조아라는 조금 망설이더니 올가미에 목을 매고 의자를 발로 찼다.
구상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조아라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조아라의 눈동자가 약간 옆으로 돌아간 채 구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상원은 온 몸에 소름이 끼치며 얼어붙었다.

“어딜 보고 있어?! 네가 한 짓을 똑똑히 보라고!”

분노에 찬 조사장의 호통이 떨어졌다. 조사장은 눈물 훔치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구상원은 조사장의 호통에 얼어붙었던 몸을 억지로 돌리며 다시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목을 맨 조아라는 조금씩 몸을 꿈틀대더니 시간이 흘러갈수록 움직임이 더뎌졌다. 
그렇게 3분이 넘어가자 조아라는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움직임을 멈췄다.

“이 영상을 보고 나는 마음을 굳혔다. 어떻게든 내 딸의 소원인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네가 원인으로 일어난 일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나마 원한을 풀어주는 것은 이 방법 밖에 없다. 묶어!”

갑자기 용역 직원 한 명이 밧줄로 구상원의 팔다리를 침대의 네 기둥에 묶기 시작했다. 
구상원은 격렬하게 반항하다가 조아라의 머리채를 잡고 용역직원의 머리를 향해 올려쳤다. 
그러자 기습을 받은 용역 직원은 뒤로 물러서며 입에서 피를 흘렸다. 
곧이어 다른 용역 직원이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며 지원의 목에 회칼을 들이밀었다. 
그제야 구상원은 반항을 멈추며 잠잠해졌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기습을 받은 용역 직원이 구상원의 머리를 방망이로 내리쳤다. 
그러자 구상원은 기절하며 조아라의 시체 위로 쓰러졌다. 
두 명의 용역 직원은 구상원을 마저 침대에 묶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조사장은 눈물 흘리며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조아라의 모습만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구상원은 정신 차리며 눈을 떴다. 호텔방은 이미 아무도 없는 듯 불이 꺼진 채 고요해져 있었다. 
구상원은 상황이 어떻게 됐나 보려고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뭔가 묵직한 것이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구상원은 어둠에 눈이 익자 깜짝 놀라며 비명을 내뱉었다.

“이, 이런 미친 새끼들!”

조아라의 시체가 구상원의 위에 올려진 채 청테이프로 꽁꽁 묶여져 있었다.
조아라는 구상원의 가슴께어서 눈을 부릅뜬 채 구상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달빛에 비친 조아라의 표정은 더욱 더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어떻게든 탈출해야 해.”

구상원은 밧줄로 묶인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한참을 용을 쓰다 보니 왼쪽 팔이 묶여있는 침대 기둥이 헐겁다는 게 느껴졌다. 
구상원은 온 힘을 다해 왼쪽 팔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한참을 밀고 당기자 기둥이 서서히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뭔가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다. 구상원은 침대 기둥을 보다 말고 정면을 올려다보았다.

“으아아악!”

어느새 흐릿한 형상의 조아라가 어두운 허공에서 구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흐릿한 하얀 손이 구상원의 목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구상원은 온 몸에 짜릿한 한기와 소름이 돋아 올랐다. 
구상원은 미친 듯이 비명 지르며 몸을 꿈틀댔다. 
그러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침대의 왼쪽 기둥이 뽑혀 나왔다.

“우지끈!”

침대의 모서리가 뽑혀 나오자 침대 한 쪽이 무너지며 주저앉았다. 
구상원은 서둘러 침대 기둥에서 팔다리를 묶은 밧줄을 뽑아내었다. 
그때 옆방에 있던 조사장 일행이 잠에서 깨어났는지 우당탕 소리가 났다.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온 구상원은 재빨리 호텔방의 문으로 달려갔다. 
구상원이 문을 잠그자 간발의 차로 용역 직원들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야! XX새끼야! 빨리 문 안 열어?” 

구상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긴 방문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복도로는 도망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다. 구상원은 묵직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앞을 바라보았다. 
조아라의 시체가 자신의 몸에 청테이프로 묶인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구상원은 좋은 생각이 들었다.

“딸 때문이라고? 나도 딸 때문에 한번 살아보자.”

구상원은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호텔방은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구상원은 뛰어내릴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하지만 잠깐 즐기려고 만난 미친 여자 하나 때문에 인생을 여기서 끝마칠 수 없었다. 
구상원은 이를 악물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조아라의 시체를 바닥 쪽으로 향해 뛰어내리면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구상원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한순간에 아스팔트 바닥이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퍽!”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히자 둔탁한 머리 터지는 소리가 났다. 
구상원은 잠시 후에야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뇌진탕을 당했는지 눈앞이 핑핑 돌았다. 
그러나 다행히 조아라의 시체가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서 큰 부상은 없었다. 
다만 조아라의 머리는 참혹하게 터져버리고 말았다.
구상원은 조아라의 시체를 몸에 매단 채 다리를 절룩거리며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상원과 조아라의 시체는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니까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그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 놈이 실종된 지 일주일이 지났어!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게 말이나 돼? 게다가 옆에 시체까지 매달고!”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네가 그 놈을 죽인 다음에 어딘가에 파묻었기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자꾸 서로한테 피곤하게 할 거야?!”

양형사는 벌떡 일어나서 의자를 걷어찼다. 
그러나 조사장은 고개 숙인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양형사는 다시금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러다가 따로 뒤집어놓은 두 장의 심령사진들을 다시 돌려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는 조아라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십 수 년 잔뼈 굵은 형사생활의 본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양형사님! 구상원 그 놈 찾았습니다!”

신참인 김형사가 취조실의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그러자 조사장은 깜짝 놀라며 김형사를 바라보았다. 양형사는 황급히 김형사에게 말했다.

“그래? 그 놈 어디에 숨어 있었어?”
“제 딸은........ 제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

김형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양형사에게 사진과 관련서류들을 내밀었다. 
양형사는 서류를 받아 서둘러 넘기기 시작했다. 
김형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사장을 향해 말했다.

“이틀 전에 울릉도의 절벽에서 동반 자살한 남녀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구상원이랑 피의자 따님이라고 국과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틀 전이라니요? 그럼 5일 동안 둘은 도대체 뭘 했다는 겁니까? 
그리고 울릉도에서 발견됐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게....... 이거 정말 많이 이상한데?”

양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관련 서류들과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조아라의 시체를 거대한 캐리어에 실은 채 울릉도행 배에 타고 있는 구상원의 뒷모습이 cctv에 찍혀 있었다. 
조아라의 시체를 가지고 울릉도에 가서 5일 동안 뭘 했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조아라의 시체와 함께 울릉도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까지 했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한데요?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 분명 조아라는 죽은 상태 맞지요?”

양형사는 김형사가 내민 사진을 받아보았다. 
구상원과 조아라가 발견된 현장 감식 사진이었다. 
구상원과 조아라는 수갑을 찬 채 절벽 아래 바위에서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두 명의 시체는 지난 5일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정말 참혹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아라의 손이 구상원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출처

웃대 황금나무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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