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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단편] 어머니의 눈빛
게시물ID : panic_168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몬샤벳
추천 : 2
조회수 : 265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6/28 23:03:33
만약에……,
  만약에 인간 내부에 악마성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을까?

  0. 프롤로그.
  아아, 나는 그럴 수 없다.
  째깍째깍.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째깍째깍.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째깍째깍.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째깍째깍.
  하지만, 하지만…….
  째깍째깍.
  이 일을 마치지 않을 수가 없다.
  째깍째깍.
  아래층에서는, 아래층에서는…….
  째깍째깍.
  나는 어머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째깍째깍.
  여전히 말을 못하는  어머니는 그래도 뭔가 말하고 싶어했다.
  째깍째깍.
  넋이 나가있음에도 뭔가를 말씀하려 하셨다.
  째깍째깍.
  그 눈빛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째깍째깍.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째깍째깍. 째깍째깍.
  그 눈빛을…….
  째깍째깍. 째깍째깍. 째깍째깍.

  1.
  "아악!"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스라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 비명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헐레벌떡 뛰어 부모님의 침실로 뛰어갔다. 어두운 복도를 불도 켜지 않은 채 달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뛰어드는 순간…….
  "아악!"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침대가 온통  붉은 피로 덮여있었다. 침대 옆에는 어머니가 넋을  잃은 듯이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어머니의 눈길이 내게로 돌아왔다. 아아,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다. 
  공포에 질린  어머니의 눈길……. 
  그것은 내가 평소에 보아왔던  눈빛이 아니었다. 예전의  그 다정하던 눈빛이 아니었다. 
  그 온화하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것은 전율이었다. 또한 그것은 절망이었고 죽음이었다.
  나를 본 어머니가 입을 벙끗했다. 아마 뭔가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애꿎은 입만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를 낚아챘다.

  2.
  "자네가 이 집 따님인가?"
  그가 음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굴 없는 목소리.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는 내 모근이 다 뽑아져나갈 정도로 억세게 내 머리채를 감아쥐고 있었다.
  어머니의 표정에는 변화가 왔지만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영원히 그 자리에 붙박여있는 하나의 조각이었다.
  "흐흠, 이렇게 큰 따님이 계셨다니, 정말 몰랐는 걸?"
  "왜, 왜 이래요?"
  조금 여유를 찾고  난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정하듯이 물었다. 
  그러나 그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 여전히 자신이 할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스무 살은 넘었을 것 같군. 이 정도 큰 아가씨라면 내 말을 잘 알아듣겠지? 
  그리고 상황파악도 금방 할 테고."
  "무, 무슨 일에요, 대체?"
  떨리는 나의 물음에 그는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하! 이-런! 다 큰  아가씨가 아직도 상황을 파악 못하나? 
  보다시피 자네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도 넋이 나가버렸지. 아마 고통이 심했을 거야."
  "세상에……. 아빠……."
  "이 인간은 죽어도 싼  자야. 물론 넌 모르겠지만 이 인간 때문에 
  열 명 가까이 되는 우리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제 놈은 아주 잘 살고 있더군?"
  "울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자넨 잘 모르겠지.  자네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하지만 이 인간은 십  년 전, 그래, 꼬박 십 년 전이군. 
  그때 우리를 배반하고 저 혼자 돈을 다 챙겼어."
  그의 음산한 목소리 속에서 약간 추억의 냄새가 묻어났다.
  "엄청난 상황이었지. 그 쏟아져 내리는 폭우 속에서 돈 보따리를 모두  챙긴 뒤에 
  우리들은 모두  급류에 휩쓸려 가게 만든 놈, 그놈이 바로 저놈이야. 
  저기 죽어있는 놈! 그때 저놈이 밧줄만 걷어올리지 않았어도……."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래, 나쁜 놈이라구. 그때 밧줄만 타고 올라왔어도……. 
  그랬으면 모두 살아났을 텐데, 결국은…… 모두가 계곡의 급류 속에서, 마구 불어나는 물 속에서……."
  정말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남의 목숨을 앗아가며 돈을 챙겼다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아버지가 살인마란 말인가?
  "그 돈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더군. 아주  잘 살고 있어. 
  이렇게 좋은 집에서  말야. 우린 모두 죽고  겨우 나 하나만 살아남았지. 
  내가 겨우  돌아왔을 때, 가장을 잃은 가정들은 모두 폭삭 망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지. 
  일곱 개의 가정이 엉망이 됐어. 그 중에  어떤 애들은 고아가 되고 말았지. 
  고아가 뭔지 알아?"  두피와 목에  급격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그가 내 얼굴을 그 자신 쪽으로 돌린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달빛을 등지고 서있는 그 남자의 얼굴이.
  "고아가 다섯 명이나  생겼지. 그리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어. 
  남편을 잃은  아내가 꾸려나가는 가정에서 어린애들이 얼마나 행복했겠어?"
  아아, 정말 이럴 수가. 아빠가 살인마라니…….
  "자네 가족을 찾는데 십  년이 걸렸어. 아주 잘 살고 있더군. 
  하긴, 그 여러 명이 나눌 돈을 혼자 챙겼으니까. 
  그리고 죄를 지은 것이 얼마나 겁이 났으면 이렇게 철저한 방범장치를 해놓고 살고 있지?"
  그의 얼굴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잠깐이지만 나는 달빛을 받은 그의 옆얼굴 윤곽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윤곽 뿐이긴 했지만 그 속에서는  엄청난 분노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섬뜩한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사내가 내 머리채를 놓았다. 그리고 커다란 재킷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도자기 받침 위에 놓고 스위치를 눌렀다. 
  그에 따라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째깍째깍…….
  "보다시피 3분으로 돼있다.  폭발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알고 싶으면 여기서 기다려."
  갑자기 얼굴근육이 뻣뻣해졌다.  눈과 입은 한없이 벌어지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진공상태가 생긴 것처럼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경악조차도 폭발력이란 단어의 위력을 
  이겨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시계바늘은 계속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째깍째깍.
  "가능하면 주저하지 말고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자네 부모는 이미 구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래층 벽  속의 금고에는 자네의 동생들이 갇혀있다는 것이지. 
  물론 자네 혼자 달아날 수도 있어."
  맙소사! 동생들이 있었지? 깜빡  잊고 있던 동생들. 그 애들이 금고에 갇혀있다고?
  째깍째깍.
  "그리고 몇 가지  힌트를 더 주지. 첫째,  이 폭탄은 절대 움직일 수 없어. 
  조금만  움직임이 있으면 그대로 터지고 말지. 
  그리고 둘째, 그  금고를 열기 위해선 자네 부모의 오른쪽 안구가  필요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행하게도 자네 아버지 눈은 내가 찔러버렸어. 
  그럼 무슨 소린지 알겠지?"
  째깍째깍.
  시계초침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저런 것들은 휴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땡그랑.
  그가 바닥에 뭔가를 떨어뜨렸다. 내 눈은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했다. 
  달빛을 받아 시퍼렇게 빛나는 그 무엇…….
  "수술용 칼이야. 아마 고통이  무척 심할 테지. 하지만 자네 어머니는 이미 고통을 받고 있어."
  그의 눈길이  어머니 다리 쪽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 자리에는…… 오직 흥건한 핏물만이…….
  째깍째깍.
  "벌써 40초가 경과했군. 이젠 2분 20초 남았어. 난 급해서 떠난다. 
  이 폭탄의 위력은 엄청나니까 말야. 자네 집안의 앞일은 자네가 결정해. 
  보다시피 두 사람은 이미 끝났어. 그리고 아래층에는 동생 둘이  있어. 남은 시간은 2분 남짓하고, 
  금고는 자네 어머니  안구가 있어야 열 수  있지. 이러면 됐나? 
  이미 답은 주어졌으니 결정은 자네가 내리게."
  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일 수조차 없었다. 
  그냥 멍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도 시계초침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째깍째깍.

  3.
  나는 악몽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여 수술용 칼을 집어들었다.
  째깍째깍.
  모든 것이  악몽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찌그러진 거울에 비친 사물처럼 비현실적으로 일그러져 보였고 
  모든 움직임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째깍째깍.
  시간은 어느새 1분 50초로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칼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달빛에 번뜩였다.
  째깍째깍.
  나는 다시 방안을 둘러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침대 위에는 아버지가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었다. 
  오른쪽 눈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침대 옆에는 어머니가  주저앉아 있었다.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몸으로.
  째깍째깍.
  아래층 금고에는 동생 둘이 갇혀있었다. 그 금고는 어머니의 눈빛으로만 열 수 있었다.
  째깍째깍.
  하지만 어머니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째깍째깍.
  그리고 내 손에는 수술용 칼이 들려있다.
  째깍째깍.
  날카로운 수술용 칼이.
  째깍째깍.

  4. 에필로그.
  아아, 나는 그럴 수 없다.
  째깍째깍.
  절대로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째깍째깍.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째깍째깍.
  물론 나 혼자 달아나면 된다.
  째깍째깍.
  하지만 그렇게 되면 두 동생이 죽는다.
  째깍째깍.
  어머니는 포기한다 치더라도.
  째깍째깍.
  그렇다고 두 동생을 구하기 위해선…….
  째깍째깍.
  나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째깍째깍.
  그냥 도망갈 것인가, 두 동생을 구할 것인가?
  째깍째깍.
  하지만 그 애들을 구하기 위해선…….
  째깍째깍.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째깍째깍.
  하지만, 하지만…….
  째깍째깍.
  이 일을 마치지 않을 수가 없다.
  째깍째깍.
  아래층에서는, 아래층에서는, 공포에 질린 그 애들이…….
  째깍째깍.
  나는 어머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째깍째깍.
  여전히 말을 못하는  어머니는 그래도 뭔가 말하고 싶어했다.
  째깍째깍.
  넋이 나가있음에도 뭔가를 말씀하려 하셨다.
  째깍째깍.
  그 눈빛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째깍째깍.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째깍째깍. 째깍째깍.
  그 눈빛을…….
  째깍째깍. 째깍째깍. 째깍째깍. 


출처

디씨 영상소설갤러리 박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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