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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게시물ID : lovestory_207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행인(가입:2004-02-06 방문:1221)
추천 : 11
조회수 : 49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5/29 00:41:41
참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다.
1학년일때는 한달에 두번 세번꼴로 내려가더니..
2학년이 되었다고, 한달에 한번꼴...

집에 내려가기 전날 엄마랑 전화통화를 했다.
내가 금요일날 내려간다고 하자, 엄마는 금요일날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구역예배도 드려야 하고, 마을 단위로 놀러가는 여행에서 아버지랑 같이 철쭉 꽃 구경하러 놀러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상관 말고 다녀오라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토요일날 다시 바로 올라와야 하는 나를많이 못 볼까봐 아쉬웠는지 엄마는 아버지랑 같이 꽃 구경하러 가시지 않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엄마는 항상 나를 많이 걱정 하신다. 내가 이래저래 말썽을 부려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이 밖에서 나가 공부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항상 많이 걱정 해 주시는 것이다.


엄마와 이래 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졸렵다는 핑계로 낮잠을 청했고 엄마는 빨래를 하러 개울에 나가셨다.


저녁 6시가되어 아직 들어오시지 않은 아버지 대신에 소여물을 해줬다.
소여물을 다 해주자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이거 너 아빠가 너 먹으라고 사 온거여."
라며 호도과자 봉지를 건네주고 가셨다.

'어, 아빠는 안 들어오시나?
같이 버스 타고 오셨을텐데.. 그리고 내가 집에 오는것도 아실 텐데 왜 이렇게 따로 전해 주시지?'
라는 의문은 잠시 뒤 술에 취해 비틀 거리시며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금방 풀려 버렸다.

아빠는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참 반가웠던 탓인지 술에 취한 탓인지
"어~ 아들 왔어?"
라고 크게 말하며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아주셨다.

이제서야 우리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뒤늦게 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 아래로 누나들 셋이 있고 그 아래에 내가 있다. 나는 막내 누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이고 딱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실은 내 위로 형들 두명이 더 있었으나, 태어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둘다 죽었다고 한다. 나도 이 이야기를 들은 건 고3 수능이 끝나고 누나로부터 들었다. 나 또한 태어났을 때 원인 모를 이유로 많이 아파서 고생하다가 겨우겨우 살아났으니 엄마 아빠의 사랑이 내겐 얼마나 컸을지 내가 아닌 사람들도 이야기만으로 쉽사리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한번도 말하신 적 없으시고, 두분 모두 내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걸로 생각하신다.

내가 늦둥이라 말했듯이 나는 21살의 대학교 2학년생이고, 아버지는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44로 시작하는, 이젠 손주도 여섯이나 두신 외할아버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바람에 공감대 형성의 기회가 극히 없었고, 농사를 하시는 아버지 역시 일년 내내 바쁘셨기에  서로 이야기 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여기에 나의 애교 하나 없는 성격도 큰 몫을 했다. 이렇게 아버지와 나는 그냥 묵묵한.. 집에서도 자주 말 하지 않는.. 그런 아들과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가 술에 취해 기분이 좋으신 탓에 아들을 꼬옥 껴 안으며 아들에게 잠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아들아,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집이 가난해서 그러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술이 취해서 사셨고 그나마 그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집이 너무 가난했단다. 그래서 내가 돈을 벌어서 우리집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지.

내가 군대에 갔을때란다. 전역하기 2개월 전에 나는 월남전에 참가하겠다고 그랬어. 부대에서 말리더구나. 전역 2개월 남은 녀석이 어딜 가냐고... 윤병장, 생각 다시 하라고...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어. 집이 너무 가난했거든. 난 내가 월남전에 참가해서 죽으면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가족들이 편히 살 수 있을꺼라 생각했어. 그래서 난 월남전에 간다고 말했던거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팔짜는 아니었나보다. 죽으려고 갔는데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지.


집에 돌아왔을 때 큰 고모가 왜 죽지않고 살아서 돌아왔냐고 말하더구나. 네가 죽었으면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왜 죽지 않았냐며 날 전혀 반기지 않았어. 그날 난 큰고모에게 큰 실망을 했고 화가나서 싸우고야 말았지. 그러나 난 가난을 탓 할 수 밖에 없었어. 모든게 가난 때문이었거든.


그 이후로 난 열심히 살았단다. 정말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너네 엄마를 소개 받아 결혼도 하고 그러다가 너를 낳고...

그래도 못 배운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농사 뿐이었고 남들처럼 부자가 될 수는 없었어. 못 배운 탓에...... 아들아, 너는 꼭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가슴이 찡했다. 요즘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빠는 잘 모르시니까 가슴 아픈건 나 혼자였다.



공부 한 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저질러 놓긴 하였으나, 실제로는 열심히 하는 것도 딱히 없고... 하루에도 3시간 4시간씩 컴퓨터를 붙잡고 히히덕거리기만 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용돈 떨어지면 말해라. 아들이 용돈 없다는데  아버지가 되서 용돈 하나 못 주겠냐. 통장에 300만원 정도 있다. 네 용돈은 얼마든지 대 줄 수 있어."



솔직히 통장에 들어있는 300만원이라는게 큰 돈은 되지 못한다. 허나 아들을 위해서 하나 하나 아껴 모은 그 돈의 가치는 정말 큰 것이다. 정말 후회스럽고 바보같은 점은 내가 그 가치를 모르고 이래저래 용돈을 받는 족족 써버렸다는 것이다. 남들 입는 메이커 옷을 찾고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이라며 비싼 음식 골라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먹었던 내 모습. 이제서야 내가 바보같이 내 대학시절을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서야 내가 공부 해야겠다는 결심이 확실히 세워졌다.



너무 늦지는 않았나 조바심도 나지만, 한 평생을 너무 힘들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께 멋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겠다.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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