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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단편] 거미 단편선 ① 덫
게시물ID : panic_178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몬샤벳
추천 : 2
조회수 : 122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7/29 21:54:21
다시 힘내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문경계선-----------------------------------------------------

오랜만이네요

개인적으로 밴드와 뮤지컬, 그리고 공부를 병행하느라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서 공게를 와보지못했는데..
정말 심각한 수준까지 되었네요 ㅜ.ㅜ
제가 공게 부흥 운동을 할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앞으로는 더디더라도 꾸준히 글을 쓸 생각이에요 ㅠ 

이 거미 단편선은 
거미의 특성을 주제로 해서 쓰는 단편을 모두 모아서 지칭하는 건데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이어지지 않으니 굳이 앞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아요 ㅎ

각설하고 시작할게요! 







[BK단편] 거미 단편선 ① 덫 




#1


"내 잘못이 아니야……. 난 충분히 할 만큼 한거야. 그래. 죄책감같은 거……."

비바람은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주변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고,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는 빗줄기조차도 땅에 그 기세를 부딪혀보기도 전에 어둠 속에
삼켜지고 있었다. 그러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사이로 한 남자가 뛰어가고 있었다.
그의 몰골은 상당히 초췌해져있었다. 물론 그가 뛰어다니는 이 곳이 설악산의 깊은
골짜기라는 것이 그의 몰골에 설득력을 입혀주는 요인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그의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연신 '나는 잘못이
없어.'를 되뇌이며 앞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의 수풀을 헤집고 있었다. 가끔씩 그가 지나
가는 수풀들 사이로 가느다란 무언가가 뒤따르는 듯 했지만 이내 그 조그마한 움직임
조차도 삼켜버리는 어둠 탓에 그러한 움직임은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남자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2



"이번 수학여행도 산이라며?"
"아, 미친. 말도 마. 우리 학교 교장 무슨 노스페이스 사장이라도 된대냐? 무슨 놈의
등산을 이렇게 좋아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산이었는데 무슨 학교 3년 내내 등산만
하는 거 같네."

떠들썩한 여느 고3 학생들의 교실. 학생들은 다가오는 수학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불만을
뒤섞은 채로 이러저러한 잡담을 떨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등산이라는 수학여행의
주제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수능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듯 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이러한 분위기에
섞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미친새끼 또 이러고있네."
"그게 재밌냐? 이거 완전 또라이아니야. 니가 무슨 초딩이냐? 푸하하."

아까까지 수학여행에 대한 잡담으로 떠들썩했던 학생들의 무리 중 몇 명이 교실 구석에서
혼자 무언가를 조물딱거리던 학생에게로 주위를 돌린 것은 그때였다. 그들의 시선을 잡아 끈
학생은 한눈에 보기에도 체격이 왜소해보였고, 자신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경계
라도 하듯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무언가를 숨기려 손을 가슴팍으로 모으고 있었다.

"야! 민철아, 이 새끼 또 이거 가지고 노는데? 너 얘랑 짝이랬지? 너도 이런 거 가지고
노는거 옮아오는 거 아니냐? 푸하하."
"재수없는 소리하지마, 미친 놈아."

민철이라고 불리운 녀석은 이내 왜소한 학생의 팔을 잡아채고는 그가 숨기려고 했던
무언가를 집어들고서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왜소한 학생의 손가락에선
끈적한 흰색 실이 주욱 늘어났고, 그 것은 이내 공기 중에서 몇번 팔락대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동수야, 이 새끼야. 초딩도 아니고 아직까지 딱풀을 가지고 노는 새끼가 어디있냐."
"돌…돌려줘……."
"에휴 이 병신. 야, 걍 신경끄고 가는 게 낫겠다. 존나 나 지금 팔에 풀묻어서 기분 더러워."

민철은 동수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후려친 뒤에 기분나쁘다는 듯 팔을 스윽 쓸고는
무리들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주목하고 있던 교실의 시선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수학여행에 대한 잡답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동수는 자신의 
손가락에 묻어있던 풀뭉치들을 뭉쳐서 옷에 스윽 닦고는 쓰레기통에 쳐박힌 풀을 가져오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무리의 학생들과 잡담을 나누던 민철은 그런 동수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재수없다는 듯 혀를 찬 뒤에 친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3



"자, 모두들 알다시피 바로 내일이 수학여행이다. 각자 자기 짝과 모여서
계획을 짜도록."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철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생들과는 다르게 민철은
뭔가 불만인 듯 자리에 앉은 채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민,민철아."

창문 밖에 시선을 두고 있던 민철에게 동수가 말을 건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동수의 목소리를 들은 민철은 기분 나쁘다는 듯
동수를 쳐다보고는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동수는 그러한 민철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손가락은 언제나 그랬듯 무언가를 뭉치는 듯 동글동글
움직이고 있었다.

"우,우리 준비물……."
"니가 다 가져와 새끼야."
"으,응."

동수는 민철의 말에 주눅이 들었는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기 위해 몸을 돌렸다. 순간 누군가가 밀었는지 동수의 몸은 중심을 잃고 비틀
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동수의 몸이 틀어짐과
동시에 그의 주위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장난으로
동수의 몸을 민 것이 분명한 듯 보였다. 옆으로 넘어지던 동수는 반사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손을 뻗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민철의 팔을
잡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세울 수 있었다. 

“미,미안…….”
“아, 미친새끼가 진짜 돌았나! 어디다가 그 더러운 손을 대고 지랄이야!”

그저 동수가 그의 팔을 잡은 것이었다면 아마 민철이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으리라. 동수의 팔이 닿았던 자리에는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묻어있었고,
그 무언가는 이내 기분나쁜 끈적함을 풍기며 민철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고 있었다. 
딱풀이었다. 동수의 팔을 쳐낸 민철의 주먹은 이내 동수의 얼굴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퍼억. 짧고 굵은 파열음이 동수의 안면에 작렬했고,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민철은 다시금 주먹을 그에게 날렸다. 퍼억. 퍼억. 동수의 얼굴은 
금새 빠알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따금 동수가 민철의 폭력을 막기위해 그의
손을 잡았지만, 동수의 손에 묻어있던 끈적한 풀들은 민철의 기분을 더욱더 안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른 학생들 역시 민철의 폭력이 정당하다는 듯, 아니 오히려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발견했다는 듯 주위를 둘러싼 채로 구경하고 있었고, 선생님 역시
신경쓰기 귀찮다는 듯 혀를 두어번 끌끌 차고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교실에는
학생들의 함성소리와 민철의 욕, 둔탁한 파열음과 동수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풀가루만이 가득 차 있었다.



#4



“학생! 학생! 정신이 드나? 정신 좀 차려봐!”

아까 전까지 초췌한 몰골을 하고 산을 헤메이던 남자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119에 신고를 하는 듯 했고, 건장한 청년 하나는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초췌한 남자를 업기 위해 몸을 굽히고 있었다. 건장한 청년은 이내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물었다.

“학생! 이름이 뭐야? 학교는 어디고?”
“박,박 민철이요. 풍천고등학…….”
“이봐, 학생!”

민철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이내 정신을 읽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때마침
누군가가 연락한 119의 엠뷸런스 소리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고, 민철을 업은
건장한 청년은 엠뷸런스를 항해 뛰어갔다. 그의 등에 업힌 민철의 표정은 살았다는
안도감이 보이는 듯 했다. 엠뷸런스를 향해 뛰어가는 청년과 민철의 뒤편으로
무언가가 잠깐 반짝이는 듯 했으나 이내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5



민철과 학생들을 태운 버스는 설악산의 한 골짜기를 돌고 있었다. 여느 수학여행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떠들썩했다. 단잠을 자던 선생님은 몇 번 들뜬 학생들을 
제지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피식 헛웃음을 
짓고는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버스 기사는 구불구불한 설악산의 코너를 돌기위해
모든 정신을 쏟고 있었기에 학생들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철 역시 자신과
친한 몇몇 아이들과 맨 뒷자리를 점령하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한참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야 근데 동수새끼 오늘도 풀 가지고 온거 아니냐?”
“아까 보니 가져온 거 같던데.”
“큭큭. 병신 이제 너도 풀에 찌들어가지고 오겠다. 끈적~끈적~. 푸히히”
“재수없게 자꾸 그딴 소리 지껄일래?”
“야. 혹시 아냐. 막 산에서 니네끼리 조난당했는데 그 새끼랑 너랑 둘만 딱 남아가지고
풀 조물딱대면서 119아찌들 기다릴지. 우엥우엥~살려주세요~. 푸하하!“
“지랄도 정도껏 해야 개성이다. 소설을 쓰시네요. 아주?”
“동수 저 새끼 별명이 거미잖아, 거미. 크큭. 그래도 조난당하면 그 끈적한 풀로 니 몸
딱 묶은 다음에 존나 벽 타고 너 살려줄지 누가 아냐. 동수 별명이 거미인 거 풀 가지고
노는 거 말고, 막 벽타고 올라가는 거 졸라 잘해서 그런 거잖아.“
“생각 만해도 역겹다. 저 새끼 도움 받느니 차라리 죽지.”

민철은 장난이라도 기분이 나쁘다는 듯 몸서리를 쳤고, 그러한 모습이 재밌었는지
그의 친구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민철은 친구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동수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대었다. 동수는 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무언가를 조물딱대고 있었다. 아마도 딱풀로 풀실을 뽑아내는 듯 했다. 민철은
뭐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러한 동수의 모습을 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뚜벅뚜벅 동수에게 걸어갔고, 친구들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지 그러한
민철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키득대고 있었다. 민철이 동수와 가까워짐과 동시에
동수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수의 손에는 끈적한 풀이 이리저리 엉켜있었고,
동수의 손때를 한껏 묻힌 그 풀덩이들은 시꺼먼 색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민철은 미간을 찌푸면서 동수가 가지고 있던 딱풀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앞좌석
쪽으로 그 딱풀을 던지고는 동수의 멱살을 잡고 그 앞으로 밀쳐내었다. 동수는
힘없이 버스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러한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버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민철은 동수를 경멸스럽게 바라보고는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친구들을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민철은 친구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한 민철의 뒤로 비틀대며 딱풀을 향해
움직이는 동수의 모습이 보였다. 동수는 심하게 비틀대고 있었다. 불안할 정도로.



#6



TV에서는 ‘풍천고등학교 조난 실종 사건’에 대해 떠드느라 연신 시끄러웠다.
한창 여행시즌일 때 일어난 조난사건인데다가 조난자 35명 중 살아남은 사람이
1명이라는 사실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민철은 TV에서 
떠드는 앵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TV를 꺼버리고는 리모콘을 던져버렸다.
그의 한쪽 팔과 다리에는 깁스가 채워져 있었고, 정상적인 팔 한 쪽에는
링거가 을씨년스럽게 그의 팔에 꽂혀있었다. 그는 피곤한 지 눈을 감고는 
잠을 청하려는 듯 호흡을 골랐다. 아마 지금 그의 병실을 열고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는 조금이나마 달콤한 잠을 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 민철학생? 조난 사건에 대해 알아볼 게 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민철에게 말을 건넨 사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서 그에게 보여
주었다. 아마도 경찰수첩인 듯 했다. 민철은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레 일어서서는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내 경찰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민철은 기계적으로 그들의 물음에 응답했다. 몇분이 흘렀을까. 이례적인
질문들이 오간 뒤에 경찰들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민철 역시
가벼운 인사를 한 뒤에 그들에게서 몸을 돌려 누웠다. 곧이어 민철의 숨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이내 잠이 들었는지 쌕쌕거리는 작은 소리만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7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민철이 던진 딱풀을 잡기위해 뒤뚱뒤뚱 걸어가던 동수의 중심이
무너진 것은 버스가 급커브를 돌고 있을 때였다. 동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잡은
무언가가 하필 버스기사의 손이 아니었다면 아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동수의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버스기사의 손은 커브의 반대편을 향해 돌아섰고,
버스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버스가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동수는 자신의 딱풀을 집어드는 것을 잊지 않았고, 떨어지는 버스
안에서 민철은 그러한 동수와 눈이 마주쳤다. 뒤집어져서 땅으로 낙하하는 버스와
그 안에서 버스기사의 손을 잡은 채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동수의 모습을 본
민철은 녀석이 마치 ‘거미’같다고 느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민철의 머리는
의자에 세게 부딪혔고 이내 그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민철이 정신을 잃어버리려는
찰나에 보았던, 동수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은 어쩌면 그의 착각일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8



“의사 선생님…….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음……. 글쎄요.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치료 과정에서 약간의
부작용이 일어난 듯 보이네요.“
“부, 부작용이요? 아니 의사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세요?”
“뭐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몇몇 환자들에게도 보이는 가벼운 부작용이니
까요. 항생제에 반응해서 몸이 자체적인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과정일 뿐이에요.
털이 많아지는 것도…….“

자신없는 듯한 의사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민철이었지만, 그보다는 의사
가 의학적 지식으로는 앞선다고 생각했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그의 말을 수긍하고는
자신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예전의 매끈했던 민철의 팔과는 다른,
흰색과 검은색이 기괴하게 얽힌 털들이 수북히 자리잡은 팔이 민철을 놀리기라도 하듯
하늘거리고 있었다.

“기분나쁜 털이잖아…….”

민철은 기분이 나빴는지 표정을 한껏 찡그리며 자신의 팔에 나있는 털을 한가닥
잡고는 거칠게 뽑아버렸다. 딱히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치 털이 하늘거리는
것 같은 느낌에 그는 황급히 손을 흔들어 그 털을 떼어내었다. 민철에게서 떨어져
나온 털은 몇 번 공기 중에서 떠다니다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민철은 그런
털의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멍해졌고,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팔을 다시 바라보았다. 몇 번씩이나 쳐다보았지만 그 역겨운 털의 모양에
적응이 되지 않는 민철이었다.



#9



민철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두워져가는, 별이 반짝
이는 맑은 하늘과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우거진 나무들, 그리고 고요한 풍경과
대조적으로 민철의 기분을 상당히 어지럽히는 동수의 거무튀튀한 손길이었다.

“뭐, 뭐야!”
“민, 민철아……. 정신이 좀 들, 들어?”
“손대지마, 미친놈아. 다른 애들은 다 어디갔어?”
“그, 그게…….”

동수는 어쩔 줄 모른다는 듯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었다. 그의 거무튀튀한
손이 동수의 입술을 지나 혀에 닿는 모습을 본 민철은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동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부정이라도 하려는 듯이.

“어디 갔냐고! 내말 못 들었어?”
“그게……. 정신을 차려보았을 때는…….”
“빨리 말해, 답답하니까!”
“으, 응. 우리밖에 없어. 다…….”

동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고는 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기 시작했다. 민철은 동수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았다. 모두의 목숨을 삼켜버린 곳이라기엔 이 곳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풀벌레소리와 살아남은 자신을 비춰주는 따스한 달빛, 그리고 총총거리며
빛나는 별들이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기에는 너무나도 몽환적이었다. 민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벌떡 일어나려했다. 하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민철의 몸은 그의 의지를 따라주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극심한 고통.

“아악!”
“움, 움직이지마……. 너 부러졌어. 다리.”
“뭐?”

민철의 매서운 눈빛에 동수는 이내 눈을 내리깔고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무언가를
가지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민철은 자신의 다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민철의
다리는 심각할 정도로 부어있었다. ‘어쩌면 저 나무 밑둥보다 두꺼울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눈으로 확인한 다리의 상태가 민철의 뇌에게 고통을 호소라도
한 듯, 민철은 극심한 고통에 머리가 어질해짐을 느꼈다. 그는 힘없이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다리의 통증은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왜 자신은 이 모양인데 동수는 멀쩡할까?’라는 작은 의문조차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말이다.



#10



“퇴원 축하한다, 민철아!”
“엄마,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민철아?”
“아, 아니 저 녀석이 부모님 말씀하시는데!”

민철은 부모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빨리 샤워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온 몸이 찐득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병실이 그리 더운 편도
아니었는데 민철의 몸 상태는 그러한 온도에서도 땀을 흘릴 정도로 나빠졌는지 
온몸이 끈적거리고 있었다. 민철은 자신의 몸 상태 때문인지 짜증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그는 거칠게 방문을 닫고는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채 화장실로 향했다.
그의 몸은 어느새 그 거무튀튀한 털로 덮여있었다. 흡사 전설에나 나올 듯한 
늑대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털들은 굵기가 매우 얇았고, 그래서 그런지
그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의 저항을 버티지 못한 몇몇 털들이 민철의 뒤에 기다란
호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제기랄. 끈적거려. 기분 나쁘잖아. 이런 기분.”

그는 기분 나쁜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에 물을 틀고는 자신의 머리 위로 끼얹었다. 시원한 물줄기들이 그의 
몸을 씻어 내려감과 동시에 많은 털들이 사라지듯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갔고,
끈적거리던 기분은 그나마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민철은 마치 기분 나쁜 그날의
기억이 씻겨 나가는 듯해서 더욱더 많이, 더욱더 강하게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었다. 마치 무언가에서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이 말이다.



#11



주위는 처절할 정도로 고요했다. 가끔 들리는 풀벌레소리와 산짐승들이 풀밭을 
가로지르는 소리 외에는 조그마한 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니, 동수가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리는 조용한 가운데에서
민철의 고막을 더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찌익. 쩍. 쩍. 쩍. 찌익』

민철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뒤로 눕혔다. 동수는 아랑곳하지않고 예의 그 찌익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아마 동수가 자기 혼자서 찌익대고 있었
다면 기분은 좀 나빴을지라도 민철은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민철의
다리가 아직도 많이 아팠다면, 민철의 팔이 심하게 두동강이 났다면 그는 억지로라도
참을 수 밖에 없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민철의 다리는 그나마 걸을 만 해졌고, 민철의 
팔은 아직 누군가를 밀칠 정도는 되었고, 동수는 자기 혼자 놀기에 지쳤는지 항상
가지고 놀던 그 끈적한 딱풀덩이를 민철의 눈 앞에 들이대고는 같이 놀자며 히죽
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은 결국 민철을 폭발하게 만들고 말았다.

“미친놈이 둘만 있다고 내가 친구인 줄 아냐? 돌았어? 가뜩이나 기분도 더러운데
잘걸렸다, 개새끼야.“

민철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분노와 짜증,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분위기에 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동수는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낄만도 했지만 그 끈적한 손과 주욱 늘어난 풀실을 민철에게 가져다대면서
히죽대고 있을 뿐이었다. 민철은 주위에 굴러다니던, 동수가 걸어다닐 때 쓰라고
꺾어주었던 나무막대기를 들고 동수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12



“으음…….”

민철은 잠이 오지 않는지 계속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샤워를 끝내고 개운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던 민철은 설악산에서의 악전고투와 병실에서 겪었던
경찰들의 질문공세에 피곤해질대로 피곤해졌는지 금새 눈이 감겼고, 마치
누가 수면제라도 먹인 듯 스르르 잠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던 민철은 수시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분명 몸은 마치 잠에 든
것처럼 나른했지만 정신만은 이상하게도 멀쩡해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묶인
듯한 부자유는 민철의 정신을 멀쩡하게 하는 하나의 이유로 작용하고 있었다.
샤워를 한 직후에 사라졌던 예의 그 끈적한 느낌은 다시금 민철을 옥죄고 있었고,
그러한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민철은 더더욱 거칠게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어딘지 모를 익숙한 끈적함을 없애기 위해 말이다.



#13



"내 잘못이 아니야……. 난 충분히 할 만큼 한거야. 그래. 죄책감같은 거…….“

민철은 자신을 집어삼키는 듯한 어둠에서 달아나기 위해 불편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앞으로,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있었고
그의 동공은 어두운 주위에서 한줄기 빛을 흡수하기라도 하듯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민철은 계속 ‘내 잘못이 아니야.’를
중얼대면서 걸음을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래. 동수, 그 자식이 잘못한거야. 그 자식이 그 기분나쁜 것만 나에게 들이대지
않았어도, 아니 애초에 수학여행가는데 그런 끈적한 더러운 것을 가져오지만
않았어도 난 녀석을 죽이지 않았을거라고……. 내 잘못이 아니야.“

민철은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칠흙같은 어둠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순간이었다. 분노로 점철된 민철은 자신이 들고있던 나무 막대로 동수의 손을 세차게
찍어버렸고, 그 바람에 동수는 놀라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민철은 한 대에
만족할 수 없었는지 그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고, 그와 동시에 동수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의 변화는 민철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그가
동수를 향해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그의 몸을 낭떠러지의 어둠이 삼켜버린 뒤였다.
민철은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마치 동수의 끈적한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더욱 몸을 움직였다. 지금 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어둠도, 죽음의 공포도 아니었다. 그저 실실대며 웃음짓는 동수와 그의 손에 묻어
있었던 그 끈적한 ‘실’ 이었다.



#14



“하, 하하하. 하하하하. 이거였네. 처음부터 이거였어. 이 개새끼야…….”

민철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자라나던
그 거무튀튀하던 털들은 이미 털이라기엔 너무나도 길어져있었고, 마치 밧줄과
같은 그 털들은 민철의 몸을 둥그렇게 옭아매고 있었다. 민철의 동공은 
마치 그 날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듯 한없이 커져있었다. 그의 동공에서 무언가가
잠깐 비친 듯 하였지만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민철은 생각했다. 평소 
거미라고 불리울만큼 중심을 잘 잡고 무언가에 잘 매달리던 동수의 모습을.
민철은 떠올렸다. 버스가 급커브를 돌 때, 심지어 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 자신조차
잘 서있었던 바로 그 때, 쓰러지며 버스기사를 잡던, 아니 버스기사를 자신 쪽으로
당기던 동수의 모습을. 민철은 기억했다. 뒤집어지는 버스와 괴성을 지르던 
반 아이들과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동수의 그 소름끼치는 웃음을.

“왜 니가 그 절벽을 기어 올라온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제기랄.”

민철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감겨가는 민철의 두 눈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는 거대한 거미가 보이고 있었다. 아니, 민철을 향해
그 끈적한 손가락을 들이대는 동수가 씨익 웃고 있었다.






#15



-거미는 자신이 잡은 먹이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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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싸이에 오시면 더욱 많은 제 글들을 보실 수 있어요 ㅎ
웃대에서 검색하셔도 되지만 웃대버전과 제 싸이에 올라온 버젼이
다른 글들도 몇개 있으니 취향에 맞게 선택해 주세요 ㅎ

앞으로 자주 찾아뵐게요 ㅎㅎ 




출처

웃대 hero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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