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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현재, 파워게임을 하는 축협(1)
게시물ID : sports_43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vin
추천 : 10
조회수 : 103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06/06/28 04:41:47
일단 이야기에 앞서 이 모든 이야기가 개인적인 것임을 밝힌다.

 프로리그의 활성화, 실제 2002년 후로 계속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나 2002년 이후 잠시 반짝했던 프로리그의 활성은 결국 현재에 와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이러한 것을 누구에게 책임전가 하는가에 앞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겪는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축구는 생각보다 과거는 길다. 예전 일제침략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축구가 사실적으로 94년, 98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중 월드컵 최고 참가국이며 가장 강팀중 하나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시아가 축구의 후진지역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월드컵을 나서면 죽을 썼고, 실제 참가해서 가장 좋은 실력을 낸 것은 94년도의 2무1패의 성적이였다.

 반대먹을지 모르지만 가장 비교되는 야구는 실제 일제침략기부터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었고, 독립후에도 고교야구와 다른 경기로 주목을 받는 기반위에 프로리그가 창단되었다. 즉, 축구와 근본자체가 틀리다.
 축구는 그정도의 기반도 없었고, 더욱이 나중에 창단되어 야구의 인기와 싸워야 되는 위치에 있었다. 더욱이 내세울만한 성적은 우리가 일본보다 월등하다는 점 하나였고 말이다. 아주 단적으로 말하자면 무에서 시작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숙적이라는 그 일본도 우리와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팀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축구의 시작은 우리에게 있어 암울함을 불러들였다.
 쇼트트랙을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분들은 없다. 왜냐하면 동계올림픽에서 우리에게 금메달을 많이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나오는 얘기가 무엇인가? 코치, 임원들간의 싸움, 즉 파벌싸움이다.

 상대적으로 덩치만 큰 우리 축구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이 이른바 파워게임으로 불리는 이 파벌싸움이다.

 1. 축구의 희망전조와 싸움의 시작
 2002년 월드컵전 한국팀은 98년의 악몽의 휴우증을 앓는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패배를 겪고 있었고, 더 이상의 방안도 구체적인 뚜렷함도 없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의 암흑기였다.

 사실 이러한 것은 94년 까지 거슬러간다. 94년 우리는 엄청난 희망을 본다. 스페인과 비기고, 독일에게 한점차까지 따라붙는 저력을 보인 것이다. 
 즉, 한국 축구라는 것이 부흥할 수 있는 어떠한 빛을 본 것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축구는 관심가질만한, 즉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대회가 있어 관심을 가지고 볼만한 경기이고, 우리가 비록 작은 나라라도 아시아에선 일류라고 떵떵거릴수 있는 종목이엿다. 결국 월드컵이라는 곳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던 것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94년 이후 우리는 다른 꿈을 꾸게 된다. 본선리그전을 돌파하는 것. 물론 우리때문에 아시아 전체에 축구라는 종목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축구현실은 비참이였다. 관심없는 종목의 비애, 실제 축구계에서 힘을 가진 윗선들은 몇몇학교에 불과했다 - 이유는 당연하다. 비관심 종목이다보니 승리 그 자체만이 관심사였다. 즉, 많이 이긴 선수가 제일 좋은 선수인 것이다. 당연히 골키퍼는 선수중 젤 못하는 선수라는 인식, 공격수가 가장 뛰어난 선수라는 인식..
 이는 그 당시 축구선수들을 보았다면 어느정도 수긍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라는 팀은 현재에 보면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드필더에서 공격수까지 전부 원래 포지션이 공격수인 사람으로 꾸려져 있었다.

 하여간, 94년 이후 뭔가를 보고 축구발전을 꿈꿔오던 때에 갑자기 한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 이 사람은 솔직히 한국축구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었다. 한국에 있지도 않았고 대부분 외국에서 있었으니, 한국내 연고가 있을리 없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차범근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사실 그는 우리나라의 고대(?)축구에 최초로 근대축구라는 걸 가져온 사람이다. 피지컬 트레이닝이라든지 선수선발을 과학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것들말이다.

 문제는 차범근이 비주류라는 것 98년도의 월드컵 리그돌파, 아니 하다못해 첫승이 이 사람에 의해 나타나면 어찌 되겠는가?
 더욱이 차범근은 협회의 추천선수를 뽑지 않고 감독 스스로 인선하기를 희망했다. 축협 주류의 위기가 온 것이다. 그렇기에 협회에서는 적당한 타협을 본다. 추천하는 많은 선수중에서 감독이 뽑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피파만큼이나 축구협회에서는 비열한(?) 행위를 한다. 이름은 있지만 감독에 의해 중용되지 못하는 선수의 비난을 옹호하고 같이 감독을 비난한 것..
 사실 98년 월드컵에서의 멕시코전은 차감독의 책임이라기보다는 하석주 한사람의 잘못이였다. 엄밀히 따지면 그 이후 제대로 대응못한 대표팀과 나아가 감독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태클이 카드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의식없이 먼 거리에서 태클을 행한 하석주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축협은 차범근감독 그 자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94년도에 희망을 본 이상 이번이 아닌 다음 월드컵에서 이루어도 된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차감독에게 결정적인 한타는 네덜란드전, 하지만 이미 선수들과 차감독은 그렇지 않아도 힘을 뭉쳐야 하는 때에 분열직전의 모습을 보인다.
 짐작이지만, 그때까지 유망주라 불리고, 여기저기서 모셔가려하는 선수들을 차감독이 험하게 다루니 선수들도 자연스레 반항하는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러한 분위기도 많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렇게 욕먹는 감독이니 금방 물러나겟지 하고 있을테고...

 물론 대 패배이후 선수들 자체에게도 비난이 생기자 다시 마음을 잡고 마지막 경기를 제대로 했다.
 아 선수들을 욕하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당시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즉, 주류로선 비주류였고 연고도 없는 차범근이라는 사람에게 자신들이 쌓아놓은 공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범근도 그냥 물러서질 않고 이 비리를 터트리지만, 축협은 무시무시한 짓을 한다. 바로 한국축구계에서의 축출,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는 크다. 이유는 차범근은 한국사람이고 엄연히 한국축협에 등록되어 있다. 어딘가에서 감독을 하려면 그 이력에 대한 보증이 필요한데, 축협은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축구에서 추방시킨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생각대로 흘렀다. 문제는 그 이후에 터진다. 바로 일본의 실력 향상과 월드컵 유치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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