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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현재, 파워게임을 하는 축협(2)
게시물ID : sports_43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havin
추천 : 13
조회수 : 9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6/06/28 05:06:57
앞서에 연계되는 내용입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2. 한국축구의 위기, 싸움의 전개
 98년 이후 우리가 가장 크게 맞은 건 바로 일본이 무시무시하게 성장한 것이다.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거기에다 일본은 그걸 굳히려는 듯 피파에 월드컵 유치를 위해 착실히 기반을 다진 상태였다.

 아시아 최고이고 아시아에선 우리보다 월드컵에 가까운 나라가 없다고 자부하며 한국축구의 발전을 이루려한것이 단번에 깨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피파소식이 그만치 늦게 알만큼 이때까지도 우린 변방이었다. 거기다 98년 패배이후 계속적인 국내주류 감독들이 패배도 위기를 만들었다.
 일본 월드컵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정말 늦게 월드컵 유치에 뛰어들었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정몽준 현 축협회장이다. 
 약간의 배경이 필요한다. 현대는 이미 예전부터 유럽판매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투자도 많이 했고..그 일련으로 월드컵과 축구에 많은 투자를 했었다. 그 결과 알게모르게 현대는 피파에 지인도 많고 지지자도 많은 상황이었다. 단지 필요한건 한국대표라는 명목뿐이었다.
 또 하나 축구협회는 정확히 한국체육의 분파라고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피파에 가입하고 있었고, 피파는 축구의 정치,경제에서의 엄정중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협의 구조는 민주주의 정치체계처럼 삼권분립의 형태를 가진다. 즉, 아무리 회장이라하더라도 전부 다 참여하고 관여하기도 힘들지만 축협에 전부가 주류사람들인 이상 비주류인 사람 하나가 들어온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차범근도 도전했다 실패한 것처럼 말이다.

 그 생각대로 축협회장은 피파에 가서 그 짦은 기간에 더 많은 돈을 들여부워가면서 일본이 만든 아시아월드컵 유치와 일본 단독개최를 뒤엎어버렸다. 그나마 일본은 투자한 것을 인정받아 공동개최를 명받았다. 새돌이 굴러온 돌을 빼지 못한다고, 처음부터 축구투자를 해왔던 현대와 월드컵을 위해 반짝 거대투자를 한 일본이 어찌 상대가 되었을까?
 
 물론 이 다음 상황은 다들 아시니 넘어가겠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안방에서 좋은 성적 거두자며 외국감독을 희망하는 여론이 일었고, - 사실 이 여론도 정몽준이 일으킨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98년부터 있던 국내감독불신이 겨우 2년만에 외국감독선호로 바뀐것이니..
 그 희망대로 정몽준은 히딩크라는 걸쭉한 스타감독을 데려온다. 그것도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사실 이 당시 정몽준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되었으니 주류로선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당시 히딩크의 여러가지에 맞추기 위해 업무편의를 위하여 정몽준은 자기 사람들을 축협에 끌어들인다.

 2002년 히딩크의 조건은 당시로선 파격이다. 선수선발, 기용의 완전 자유, 훈련내용의 선정 완전 자유, 코치, 임원진들의 선발 자유 등 연봉뿐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협이 쥐고 있던 모든 권한을 송두리채 내준 것이다. 
 그래도 주류진들은 뭐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월드컵 유치라는 미약에 취해있었다. 축구변방이라는 나라가 월드컵을 유치했으니 자신들의 입지도 강해질테고 체육계에서 목소리도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그때까지도 정몽준이 꿈꾸는게 무엇인지 모른 것이다. 단지 그들은 외국감독을 깎아내릴 일만을 찾았다. 즉, 성적이 나쁘더라도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히딩크와 그를 인선한 정회장이 잘못이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시다시피 히딩크가 대패를 하고 있을때 인터뷰하면서 그를 비난하고 불효용을 말하던 사람들 전부가 주류인사이며 한국축구를 그때까지 잡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당시의 일들을 미루어볼때 축협은 우리가 결승, 4강이 아니라 아예 리그조차 통과 못하거나 통과하더라도 16강에서 대패할거라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히딩크가 유명함에도 받은 연봉이 적은 데다가 오히려 옵션에 연봉보다 더 많은 것들이 걸려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다 하나더 말하자면 그때까지 단 한번도 못간 8강 4강까지 보험을 들었다는 것 자체도 문제다. 축협에서 쓰는 돈은 대부분 기부금이거나 세금인데, 이를 개인이 뜯어먹기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가 보험이다. 즉, 보험회사에서 얼마 받고 들어주는 것이다. 거기다 히딩크가 호언장담을 하니 뭐 어떠냐 대놓고 돈 뜯은거다.

 그러나, 히딩크는 정말로 4강까지 갔다. 월드컵에서 일승조차 못한 나라가 4강에 당당히 든 것이다. 거기다 8년전 3점먹다 극적으로 1점차로 따라붙은 독일과 4강전에서 단 한점으로 진 것이다. 엄청난 효과..

 솔직히 그 전까지 히딩크의 훈련이나 기타 여러가지를 적고 배우는 것도 우습게 본 그들이다. 잘 모르시겠지만, 그 당시 폴란드는 유럽중에 최약체로 꼽았고, 미국은 우리와 같은 변방이며, 그나마 포루투칼이 맞서싸워볼 상대로 지목하고 있었다. 이게 우리나라 축구주류들의 판단이었다. 괜하게 조가 좋다느니, 해볼만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런 식으로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전부 틀리다는 점, 폴란드는 우리 생각보다 강한 상대이고, 미국은 월드컵개최이후 굉장히 상승세를 타며 우리만큼 월드컵 진출하고 더욱 좋은 성적을 내었던 팀이다. 게다가 포르투칼은 우승후보였다. 
 이 말은 사실 우리가 조별리그를 돌파한 후에 나오던 말이다. 

 하여간 여기서 끝나지 않고 16강에선 이탈리아를, 8강에선 스페인을 깼다. 그 당시 8강이라 불리던 나라중 3팀이 우리에 의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여기서도 재미잇는 사실이 하나 있다. 갑작스레 기술위원장이 바뀐 것이다. 앞서 말햇듯, 삼권형태의 축협에서 기술위원회는 일종의 국회와 같다. 여기의 의장이 바뀌었다는 건 위원회를 구성하는 주류측 인사들이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언론을 끌고 4강 진출한 선수들의 숙에에 가서 파티비슷한 짓을 한것이다. 당시 축협회장도 축전으로 끝냈는데 말이다. 선수들로서도 까마득한 선배이고 원로이니 거부하기 힘들었을테고.. 나중에 이 일로 축협전체가 비난받는다.

 하여튼 2002년은 그렇게 끝났고, 그 시점에서 보기에는 완벽한 비주류들의 승리였다. 끝나고 보니 주목받는 사람들은 전부 축구계에서 비주류였던 사람들이고 주류였던 사람들은 비난만 받게 된다. 
 세력판도의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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