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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과 노무현, 그리고 당신들의 투표
게시물ID : sisa_1177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슈트레제만
추천 : 2
조회수 : 623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1/09/30 19:35:34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촬영. ‘2차 희망버스' 시민들이 부산 영도로터리에서 경찰과 맞서며 “김진숙을 만나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을 때, 집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야간 밤샘 당직이었고, 부산 희망버스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효과적인 편집을 위해 <오마이TV> 생중계창을 띄워 놓았다. 하지만 부산의 치열한 상황과 상관없이, 아늑한 방에서 노트북 자판 치는 노동은 자연스럽게 졸음을 불렀다. 그러다 일시적으로 잠에서 확 깨어났는데, 김진숙을 향한 연대의식이나 직업 윤리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오마이TV>에 올라온 댓글 하나가 잠시나마 수면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 올렸다. “참 안타깝습니다. 정말 내년에는 투표를 잘해야겠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하든 말든 개인 선택의 몫이니, 그런 ‘다짐’을 비웃거나 코웃음친 게 아니다. 여성 해고 노동자 김진숙, 180일 훌쩍 넘긴 그녀의 크레인 고공농성,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그리고 희망버스.... 많은 사람은 이런 문제를 마주하면서 왜 하필 ‘선거' ‘투표' 떠올리는 것일까. 정말, 투표를 잘하면, 4년마다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5년마다 반복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선택을 잘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유권자들이 ‘고작’ 4,5년마다 찾아오는 그 찰나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고등학교도 못 나온 해고 노동자 김진숙은 개고생을 하지 않게 될까? 멀리 돌아가지 말자. 김진숙이 ‘화두'이니 김진숙의 글에서, 그녀의 이야기에서 찬찬히 생각을 해보자.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주익은 600여 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많이들 아실 거다. 여기서 ‘당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 글은 김진숙씨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편지 형식으로 쓴 추모글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의 한 부분이다. 역시, 많이들 아실 거다. 지금 김진숙씨가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은 그의 동지 김주익씨가 2003년 129일 동안 농성을 하다가 스스로 목을 맸던 현장이라는 것을. 그리고 2003년 그때, 이 나라의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는 것을. 투표를 잘 하자고? 투표를 잘 하면 꼴 보기 싫은 MB도 심판해주고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다시 김진숙씨의 글을 보자.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중략)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3년 10월, 김진숙씨가 부산역에서 읊은 <김주익 열사 추모사>의 한 부분이다, 투표를 잘해서 세상이 바뀐다면 전태일의 비극은 80년대 후반, 적어도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점, 아니 100보 양보해서 김대중이 대통령 하던 그 시절에 끝나야 했다. 하지만 김주익은 노무현 시절에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맸고, 김진숙은 MB시대에 다시 그 크레인에 올랐다. 도대체 투표를 몇 번 하자는 말인가. MB가 너무 수준 이하여서 그럴까? 우리는 종종 DJ 시절에 정리해고가 도입됐고, 노무현 시절에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음의 바위 끄트머리로 내몰렸다는 사실을 잊는다.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 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졌습니다.” - 김진숙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에서. IMF 극복 시기여서, 바야흐로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지 않았느냐는 말은 하지 말자. 그걸 긍정하면, 배고픔을 면하게 해준 박정희를, 경제 호황기의 전두환을, 금융위기 때 임기 초반을 보낸 MB도 긍정해야 한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 김진숙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에서. MB를 긍정하기 위해서, 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쨌든 발전했고, 세상은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고, 노무현 시절에 동지가 목을 맨 그 크레인 꼭대기 위로, MB 시대에 그의 친구가 다시 올라 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주장을 하며 180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발전’과 ‘나아짐’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안산의 외국인 노동자에게, 울산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지가 목은 맨 현장에 다시 선 김진숙에게, 우린 “어쨌든 세상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온 이력을 돌아보면, 사실 “아, 세상이 변했구나"라고 말하던 때는 투표를 마치고 나온 이후가 아니었다. 인간의 역사, 사람 사는 세상이, 투표 용지(배운 사람들은 ‘종이 짱돌'이라고 그럴싸하게 부른다)에 도장을 찍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그런 행위로 달라졌다면 김진숙씨가 크레인 위로 올라갈 일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먼 옛날 스파르타쿠스가 노예이길 거부했듯이, 고려시대 노비 만적이 그러했듯이, 4.19 청년학생과 6.10의 노동자와 시민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5.18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프랑스 6.8혁명의 학생들이 그랬듯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제도와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는 행위와 실천을 했을 때, 세상은 유의미하게 달라졌고 변화했다. 투표와 선거로 정리해고를 종식하고, 김진숙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고? 그런 ‘얌전한 투쟁'은 MB가 꿈꾸고, 이건희가 원하며, 조양호-조남호 ‘한진그룹' 형제가 바라마지 않는 우리들의 순종적인 모습이다. 김진숙의 글로 시작했으니, 그의 글로 마감하자.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 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 김진숙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여전히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오는가? 고졸 대통령 시절이나 CEO 대통령 시절이나 똑같이 없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하늘에도 닿을 수 없고 천국에도 닿을 수 없는 굴뚝이나 크레인에 오르는데, 고작 투표 용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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