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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영화. <도가니>
게시물ID : sisa_1207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슈트레제만
추천 : 1
조회수 : 53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10/15 21:40:51
한줄평 : 감독이 소설을 읽고 흥분 상태에서 만든 영화

사회 고발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은 높게 산다.
칭찬 끝




보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하고 짜증났으며 지루했다.
이건 마치 3류 영화를 (무려 돈 주고) 보고있을 때보다 더한 기분이었다.
분노? 분노하긴 했다 그러나 방향이 달랐다.
나의 분노는 저렇게 중요한 사건을 저렇게 멍청하고 가볍게 만들어 버린 감독에 대한 분노였다.

영화 전체가 온통 감정에 휩쓸려 있다.
정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영화에서 색을 탈색시키고 기본 골조만을 보면, 죽어 마땅한 절대악과, 완벽히 선한 절대선의 대립만이 꼴랑 남는 다는 점에서 삼류 액션or스릴러물과 완벽히 일치한다. (차이라고는 주인공이 패배한다는 것 정도?)
화려한 휴가에서 배경지식을 빼버리면 삼류 로맨스 영화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하디 중요한 소재를 가져다가 도대체 뭘 만든 것인가.

그리고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봤는데, 공지영 작가는 감성적이지만 또한 대단히 이성적인 작가이다. 결코 감정에 휩쓸려 이런 어이없는 것을 내놓을 리가 없다.
그런 생각으로 소설을 읽어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옥석을 가져다가 (본질적 의미를 곱게) 가루를 내어 (분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방방 뛰며)사방 팔방에 살포하다가 (악인은 죽어 마땅하다! 푹! 찍! 악! 으로 깔끔하게) 거름을 끼얹어 묻어 버렸다.

소설에서는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즉,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의 전환을 계속해서 시도한다.
마냥 선vs악으로 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들도 돋보인다.
(그 장치란게 별 것이 아니고, 가해자든 피해자이든 그저 선악을 동시에 지닐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가해자 중에서도 힘있는 이와 없는 이의 극명한 대립 역시 선vs악이 아닌 '사회 문제'임을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묻혀가는지, 어떻게 대중들에게서 잊혀가는지까지도 공지영 특유의 물기 가득한 필체로 서술했다.
정말 생각할 것을 한가득 안겨주는 명작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무언가.
그러한 안배는 전혀 없다.
악인은 악하게만 묘사되어 있고, 선인은 그저 선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관객은 생각할 필요 없이 그 구도만을 따라가면 된다.
영화의 시간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은 해봤지만,
칼로 푹푹 찔러 복수하는 3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어이없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 생각은 잽싸게 접었다. 
그 장면의 위력은 정말이지 '화려한 휴가'의 '내 딸을 부탁하네!'와 동급이었다.
둘 모두 영화의 하나는  삼류 법정 스릴러물로, 또 하나는 로맨스물로 한심한 정체성에 정점을 찍고 화려하게 인증을 장면이었으니까. (현재의 비극과 과거의 비극을 갖고 끼리끼리 아주 잘하는 짓들이다.)

그렇게 견고히 쌓아 올려진 '그들만의 거성'을 비극적인 사건을 통하여 처절하게 고발한 공지영 작가의 눈물 어린 명작은,
모 감독의 깨방정으로 싸구려 동정과 싸구려 분노의 배설구로 재탄생했다.
결국 관객은 여느때와 같이 영화를 즐기고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여운이 가라 앉으면 그들은 언제나처럼 잊을 것이다.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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