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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자살할 용기로 살아라.?
게시물ID : lovestory_37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테노그래퍼
추천 : 17
조회수 : 216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1/10/30 21:44:04

새벽경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 올라온다. '님들 저 자살할 거예요. 준비 다 해놨어요.' 몇분 지나지 않아서 수십개의 리플이 달린다. ** : 죽지마세요. *** : 부모님 생각해서 사세요. ** : 자살 그거 정말 바보같은 일입니다. * : 죽을 용기로 살아봐요. - 거리를 거닐다 보면 웃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모두들 힘에 겨워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도,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어른이 돼도, 중년이 돼도, 노년이 돼도 우울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이런 우울은 대부분 사회와 개인의 갈등에서 오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우울증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갔다왔다고 말하면 거의 다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니까 말이다. 정신 병원은 말 할 것도 없고. 이런 사회의 모습은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못믿으시겄다면 지금 당장 아무 커뮤니티에 가서 검색창에 자살을 쳐보시기 바란다. 수백 개의 글을 넘어 수천 개의 글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말한다. "자살할 용기로 사세요." - 과연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자살할 용기로 살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 보통 자살을 진지하게 꿈꾸는 사람들은 이미 삶에 대한 미련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다. 외출을 해도 여기서 죽을까 저기서 죽을까, 지금 죽을까 다음에 죽을까,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할까 버스에 달려들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삶은 더 이상 가치가 없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자살할 용기로 사세요.'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명 '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용기'를 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삶에서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얘기와 더불어 단골로 나오는 이런 식의 리플들이 있다. '그런 거 나중에 되면 아무일도 아니에요. 전 님보다 더 오래살았는데 이런 고통도 있고 어쩌고 저쩌고~' 라면서 오히려 자기의 힘든 점을 털어놓음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맞다.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힘들고 고등학교가 중학교보다 힘들고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생활보다 힘들고 대학생활보다 직장생활이 더 힘들다는 건 어느 정도 보편화된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그 당사자에겐 무슨 위로가 될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보다 더 힘든 고통이 기다린다는 걸 알라는 말일까? 이렇게 따지다 보면 미취학아동-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직장인-대한민국 빈곤층-아랍권 여성들-아프리카 빈곤층-인도의 최하위 빈곤층, 이렇게 누가누가 힘든가 경쟁을 하자는 것일까? (사실 이런 공식도 성립되지 않는다.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가진 대학생과, 부모님 두분을 잃고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초등학생도 있으니) 아니면 당신보다 못한 사람도 사는데 왜 당신은 그깟 것에 힘들어 하냐고 알려주려고? 그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인지해주려고?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하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는 사람은 더 한심하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누구나 다 지나간 일은 힘들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고통을 '과거'로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고통은 '현재진행형'으로 봐야만 한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사람은 방과후까지 남아 모조리 외울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그때 구구단 7단 중 7x1=7 이상을 나가지 못했다. '외울 때까지 집에 못간다.'라는 선생님의 말과 학생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 혼자 남은 교실, 그리고 창밖으로 점점 져가는 해, 그리고 여전히 외워지지 않는 7x2=14. 난 그때 처음으로 집이 아닌 밖에서 울어봤다. 뒤늦게 구구단 검사하러 오신 선생님은 당황하시며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셨다. 지금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들 'ㅋㅋㅋ'거릴 일이고, 내가 봐도 웃긴 일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소위 이런 말이 있다. '진짜 죽을 사람은 저렇게 행동 안 해요.' 도대체 왜 타인이 자기의 기준대로 무게를 재고 '저건 가짜 우울증' 이건 '진짜 우울증'이라고 분류하는가? 자신의 우울은 진짜 우울증이고 남들이 우울한 것은 엄살이라고 보는 잣대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남의 우울은 허세이며 생색이고, 자신의 우울은 사색이며 진정한 우울증인가? 우울은 빙하와도 같아서 아주 조그마해보여도 속에는 얼마나 큰 우울이 있는지 타인은 잘 알 수가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다 고통스러운 일을 한 개 이상씩 안고 산다.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잡고 물어봐도 엄마의 구박이라든가 학교에서의 삼각 관계, 외모 문제, 친구 관계, 무서운 선생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학원 등 수십 가지의 고민거리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고민들이 해결점과 상담할 사람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곪게 되면 그것은 우울의 눈덩이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렇게 생겨나는 우울이 자신의 기준에서 가벼운지 무거운지는 중요하지 않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볍든 무겁든 간에 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고통을 함께 들어주는 것이다. 누군가가 힘겨워 할 때 "나는 이런 것도 이겨냈는데 너는 그런 것도 못 이겨내니? 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더 힘들어! 세상은 원래 다 힘들어! 부모님 생각은 안 하니? 그런 용기로 살지 그래?"라는 말은 이제 고이고이 접어두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조용히 다독이며 물어봐주자. 해결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겄지만 설사 우리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이라도 상관 없다.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이나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동감해주고, 함께 해준다는 사실에도 크게 고마워 할 것이다. ----------------------------------------------------------------------------------------------------- 출처는 모르겠지만.. 좋은 글 같아서 여기에 올려요. 그 글이 복사하기가 안 돼서 약간의 맞춤법을 고쳐 베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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