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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적어본 판타지] 한 신관과의 대화
게시물ID : art_25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이오네요
추천 : 1
조회수 : 45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24 10:23:56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한 조끼 비워내고 나서야 지루함을 느낀 티모시가 어제 저녁 풀숲에서 불쑥 나타나 불침번을 서던 그의 동행자 아몬을 놀라게 한 신관에게 말을 건넸다. “참, 아르 너 무슨 신의 신관이랬지?” 아르는 불침번을 서던 아몬을 놀래 키고 티모시가 뽑아 든 호신용 검에 외투가 반쯤 잘려나간 신관의 이름으로, 자신이 어제 밤에 일으킨 소동을 다 잊은 듯 식사후의 즐거움을 담아 대답했다. "모든 일에 반대하는 방관자의 신관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티모시는 미간을 좁히며 반문했다. "모든 일에 반대한다고? 넌 만사에 찬성하잖아. 우리가 동행 하자고 했을 때도, 이곳으로 여정을 잡을 때도 반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반대의 신관이 될 수 있지?" 아르는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높인 잔으로 목을 축이며 질문을 들은 후 대답했다. "반대는 제 몫이 아닙니다. 신께서 제 반대를 모두 가져가셨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티모시가 답답한 듯이 여급이 새로 놓고 간 맥주 조끼를 젖히며 대답을 기다렸다. "세상의 왕들이 저희 신관들을 싫어하는 이유죠." 하지만 아르의 대답은 여전히 티모시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티모시의 좁힌 미간은 골똘히 궁리하는 듯이 것에서 아리송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선문답 같다.” “왕에 대한 이야기죠. 왕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왕? 왕이야...왕이지.” 티모시는 자신의 대답이 바보 같다고 생각된 모양인지 재빨리 “권력자?” 하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르는 그런 티모시의 반응이 재미있는 것인지 계속 싱글싱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왕은 자신의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자입니다. 어느 영주가 폭정을 일삼는다면 그를 다스리지 못한 것이 왕의 책임이고 재판에서 누군가 정당치 않은 처벌을 받게 된다면 잘못된 법을 제정한 왕의 책임이며 거지가 배고파 음식을 훔친다고 하여도 백성의 굶주림을 돌보지 못한 왕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르의 대답에 의문이 남는지 티모시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게 뭐야? 그럴 것 같으면 왕 하기 싫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잘못한 일도 다 자기 책임이라는 거잖아.” “그 책임만큼의 권한을 가진 것도 왕이죠. 폭정을 막기 위해 영주를 처벌할 권한도 잘못된 법을 고칠 권한도 굶주리는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권한도 모두 왕의 것이니까요.” “그럼 권력자 맞잖아?” “왕은 권력을 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가로 권력을 얻은 것입니다. 그저 권력을 사용할 줄 아는 자와는 다릅니다.” “그래, 아무튼. 그래서 왕이 너희 신관들을 싫어한다는 건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왕은 사람들의 책임을 떠안는 대신 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잖아요. 하지만 저희 신관들은 세상의 왕에게 그 책임을 맡기지 않거든요. 신관들이 행한 행사의 책임은 모두 신의 것이며 그 결과도 신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왕들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만큼 권력을 행사할 수도 없는 신관들을 싫어하죠. 게다가 때때로 고리타분한 말들을 늘어놓기도 하거든요. 하하.” 아르는 그 질문들에 모두 대답해 줬지만 티모시는 그 내용이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고 세 번째로 주문한 맥주조끼를 들었다. 잠시간의 침묵과 티모시의 목젖이 꿀꺽이며 움직이는 소리, 아르가 잔을 홀짝이는 소리가 지나고 나자 아몬이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 “아르, 네 말대로라면 왕이 책임의 대가로 얻은 것이 권력이군. 그러면 그 권력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도 왕의 것이 아닌가?” 아르는 누군가 다시 말을 걸어주는 것이 즐거운지 소리치듯 대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네가 걸어온 길도 왕이 자신의 백성들을 편하게 위해 닦은 길이고 지금 이렇게 우리가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평화로운 여관도 왕의 치하덕분일 것인데 왕이 그 권력으로 베푸는 것들은 누리면서, 그 대가인 왕에게 넘길 책임과 자신에게 행사할 권력을 왕에게 주지는 않는다는 건가?” 아르의 기분과 대로 아몬의 질문은 아르의 말을 힐책하려는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는 그런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 점이 왕권이 신권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 중 하나죠. 하지만 제가생각하기에 다른 나라의 여행자가 왔다고 그 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여관에 머물지 못하게 하지는 않는 것과 같아요. 자신의 백성이 아닌 여행자에게도 그 정도는 베풀어 줄 아량이 왕에게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때로는 통행료도 내고 이 여관에 지불한 숙식비의 일부도 세금으로 왕에게 가는 것이니 대가는 지불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몬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값이 매겨진 도로의 통행료와 머무는 여관의 숙식비는 그 나라의 백성이라고 해도 똑같이 낸다. 그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차이가 생기지 않아.” “그래서 왕들이 신관들을 더 싫어하죠. 하지만 대부분의 신관들은 그것을 여행자에 대해 베풀어야 할 당연한 호의라고 생각하지 자신이 왕의 치하를 입어 평안한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의 치하에 있으니 신의 행사에 의해 자신의 여행길이 평안하다며 신에게 영광을 돌리겠죠.” 여전히 즐거워하는 아르에 반해 아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딱딱해 졌다. “그것참 제 편할 대로의 논리군. 자신의 책임을 신에게 떠넘겼다는 이유로 세상과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군. 너는 다른 의견에 반대하고 누군가의 대립자로 서며 세계에 맞서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반대를 네가 믿는 그 신에게 팔아버리고 그 대가로 다른 의견에 동의하고 누군가의 편에 서는 자신을 얻은 거야. 신관들은 다 너 같은 겁쟁이인가?” “신관들은 그걸 보고 자신의 삶을 신에게 바쳤다고 표현하지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몇 번째인지 모르는 맥주 조끼를 여급에게서 빼앗아 오는 티모시를 보며 아몬의 말을 듣던 아르가 산뜻하기까지 한 대답을 하자 아몬은 드디어 화가 났는지 소리치듯 물었다. “난 지금 네 말에 대립하고 있다. 너는 이것도 부정하지 않을 건가? 부정을 팔아버린 신관이라서?” 하지만 아르는 여전히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긍정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부정하지 못하겠군요. 부정은 신의 몫이니까요.” “그렇군. 모든 일의 반대하는 자가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인 건 너희 신관들이 자신들 몫의 부정을 모두 신에게 떠넘겼기 때문이야. 하지만 부정하지 않고 살 수는 없어. 네가 세상을 부정하지 않으면 언젠가 세상이 널 부정해서 세상 밖으로 쫓아낼 거다.” 아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르가 대답했다. “그것이 저희 모든 일에 반대하는 자의 신관들에게 내려진 믿음의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반대 하는 자는 때때로 모든 일의 방관자가 되기도 하시죠.” 아몬은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완고함은 한층 더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과연 모든 일에 반대하는 방관자라 이거군. 흥. 자신의 방식 외의 것들을 다 배척한 결과 방관할 수 밖에 없어진 것이겠지. 그리고 넌 이것 또한 부정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어진 아르의 고개를 젓는 행동은 아몬을 놀라게 했다. “그렇군요. 제가 그것을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반대하는 자의 신관들이 무언가에 대해 부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을 모두 신이 가져가 버렸다면서?” “부정은 신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사실 그 부정은 저의 것이었습니다. 단지 제가 할 것을 신께서 대신 해주신 것에 불과하죠. 누군가 맡겨둔 물건을, 물건을 맡은 사람이 잠시 사용한다고 해서 그 물건의 주인까지 바뀌는 경우는 없습니다. 제가 긍정을 하면 동시에 그에 대한 부정을 신께서 하시지만, 그 긍정과 부정 모두 저의 것입니다.” 아몬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아르를 노려보았다. “아까는 모두 맡겨버렸다더니 이제는 그래도 자신의 것이라고? 정말로 제멋대로군, 신관들은. 게다가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한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르는 여전히 그런 상황이 즐거운지 방글대며 이제 바닥을 보이려고 하는 잔을 들었다. “그것이 제가 신관이 되어 신학을 배우는 묘미죠. 인간들의 관점에서 모순으로 보이는 것들이 연속으로 나타나거든요.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긍정만 하고 부정은 신께서 해주시는 것이죠. 하지만 신께서 하신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신의 것은 건 아닙니다.” 아몬이 흥분했던 자신의 모습에 맥이 빠진 듯 자신의 잔을 들고 반쯤 남은 내용물을 한번에 비워버렸다. “정말 편한 대로군. 자기들한테 유리한 것만 가져다 놓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왕들이 신관들을 왜 싫어하는지 이제야 정확히 알겠어.” “그렇죠. 왕은 책임에 대한 대가로 권력이 자신의 것이 된 줄로 착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여전히 백성들의 것이니까요. 권력자의 위치에 선 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쉽게 스러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걸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아까는 권력자와 왕은 다르다더니 이제는 왕들은 권력자라고? 게다가 마지막 말은 너희가 믿는 신에게도 적용될 것 같은데?” “세상 왕들과 달리 신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사람들이 뭐라 하건 홀로 영광 받으시는 왕이시니까요.” 아몬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아, 더 이상 이야기하기가 지치는군. 너희 신관들은 너무 제멋대로야. 도저히 말이 통하질 않는군.” 아르도 일어나며 티모시에게 했던 왕에 대한 질문에 이어 아몬에게도 첫 질문을 던졌다. “네, 그렇군요. 그나저나 티모시를 방까지 옮기려고 하는데 도와주시겠어요?” 아몬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미 고주망태가 된 티모시의 한쪽 어깨를 잡고 있는 아르를 도와 반대쪽 어깨를 받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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