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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 년 저력은 다른게 아니다.(유교까지마라)
게시물ID : history_41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장비를정지
추천 : 32
조회수 : 185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4/17 11:46:51
우리나라가 신라천년 - 고려 오백년 - 조선 오백년 의 롱타임 테크를 타서 그렇지

보통 왠만한 나라들은 200 년도 가기 힘든게 사실임

  

기술의 발전이나 생산력이 적던 고대의 경우야 그렇다 쳐도

중세이후의 조선이 500 년이나 버틴건 정말 놀라운 일인데 

우리나라 사람들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음
 

 

조선이 국가체제를 그토록 오래 유지했던 이유를 여러가지에서 찾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강력한 "도덕성" .

 

 
일단 당장 조선의 경우 관리의 임용 자체가

"" 유교경전 "" 에 대한 시험이었음

쉽게말해 도덕적이고 청렴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과목

 

부모잘만나는게 유일한 조건인 세습에 의존한 다른나라에 비해서 

세습은 조까고 비록 양반계층 내부로 제한되긴했지만 닥치고 실력빨로 관리를 선발했고

시험과목은 도덕

 


여기서부터 일단 절반 먹고 들어감

무력집단이나 세습집단이 아닌 도덕을 공부한  ""학자"" 들이 실력에 따라 선발되어 통치


 

 

거기에 더해서 조선왕조 실록으로 대표되는 막강한 도덕성

실제로 실록 기록하는 사관들은 왕을 졸졸졸졸 따라다니며 다 기록했음

 



 
존나 칼부림 대마왕 세조가 뒷뜰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발 헛디뎌서 휘청

옆에있던 따라다니던 사관이 쓰기를

"" 세조 발 헛디뎌서 휘청댐 "" 이라고 쓱쓱 기록



쪽팔린 세조가 야 시발 그건 쓰지마라. 쓰면 죽여버린다. 라고 위협


사관은 물끄러미 세조를 바라보다가

"" 세조가 부끄러워하며 쓰지말라고 나 위협했음. ""  이라고 기록-_-

 

심지어 왕은 오줌싸고 털때 왼쪽으로 세번턴다 라는 기록도 있음....




 
목을 날릴수는 있어도 뜻을 꺾을수는 없다는 선비정신의 깡다구

그리고 후세의 역사가들이 자신의 행적을 매섭게 비판할 것을 두려워한 청렴함

그게 조선의 원동력이었음.

 

 
임진왜란때 동네 양반이 나서서 농민들은 나를 따라라! 하고 돌격하면

농민들이 양반이 무서워서 총칼 번쩍이는 왜놈들한테 와~ 하고 같이 돌격했겠음?

저 사람은 목숨보다 뜻을 소중히 한다는 평소의 존경이 뒷받침 안되면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음

 


결국 다른 제국들처럼 조선도 도덕성이 무너져서 혼란이 찾아와 멸망했지만,

조선왕조 500 년의 저력과 아무리 잘살아도 예와 법을 모르면 짐승취급했던 우리 선조의

깡다구는 무시할수 없는 유산임.

 

 

우리가 고리타분하게만 여기고 비판하는 꽉막힌 상명하복은

일본놈들이 심어놓고 침일파들이 계속 써먹어온 군사문화의 잔재일뿐이고 



진정한 유학사상과 선비정신은 자유로운 토론과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해서 나무껍질 뜯어먹고 사는 선비도 왕에게 정치좀 잘하라고

훈수두고 욕하는 선비정신의 깡다구임.

이건 우리가 세계만방에 자랑할 만한 도덕적 유산이고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될 보물임.

 

 

 

 

 

그리고 그 덕에 우린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놈을 짐승취급하며 개무시 때리고 있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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