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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그녀와의 62분 15초
게시물ID : mabinogi_8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Fairytale
추천 : 13
조회수 : 95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2/08/14 07:44:58
 

 


*

 어제 아본에서 어떤 유저의 악기세공 버프 20 효과를 보고... 진지하게 음악재능 그랜드마스터를 퇴고했다.

 그 사람은 장인개조도 안하고 대충 개조한 버프 6의 만돌린. 수치로 따지자면 도합 26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리라개조7, 장인개조4, 마에스트로 타이틀5, 알레그로인챈트3... 을 모두 더해도 겨우겨우 19의 효과. 그랜드 마스터를 달아도 버프 추가효과가 5밖에 안된다면 도합 24. 이럴바엔 음악재능 그랜드 마스터를 할 이유는 없었다. 젠장. 의욕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레자르씨,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도 음악재능 인장을 얻기 위해 온건가?"

 "네... 미션 주세요."

 "거참 신기하군. 음악 재능을 그랜드마스터로 선호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왜..."

 "...수고하세요."

 

 지금까지 하루에 한개씩 모은 인장 8개가 아까워서... 아니면 그냥 음악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뭔지 모를 의무감이었을까? 아니면 나중에 어떻게든 그랜마 타이틀 효과가 세공보다는 좋게 패치가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희망이거나, 남들이 잘 안하는 길이라는 것에 대한 알량한 자부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타라왕성 앞 레자르에게 음악재능 그랜마 미션을 받았다.

 

 

 

20개까지 가야할 길이 더 멀다.

 

 분명한 것은 이제 음악 하나만 파서는 파티에서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근에 랜스무기를 손에 들게 되었다. 스킬랭크가 낮아 인챈트의 효과는 하나도 보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이었지만 그래도 전사스킬을 많이 올려놔서 잉여수준은 겨우 면하는 정도였다.

 

 앞에는 랜스, 등뒤에는 리라... 크기로 보나 역할로 보나 둘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어떻게든 간판은 달고 입에 풀칠은 해야겠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이틀동안 4인 퀘스트를 한번도 클리어 하지 못한, 아니 파티원조차 모으지 못한 나였다. 미션을 받았지만 또 한숨이 깊게 나왔다. 그냥 두번째 미션만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도도 안해보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포기하면 왠지 모를 누군가가 나를 비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하던 걱정은 머리 속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파티원을 구할 수 있을까?'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파티원을 모집하기 위해 타라제단으로 가려던 찰나, 옆에서 누군가의 파티 창이 열렸다.

 

 

 

 

궁수로 보이는 여엘프 유저 한분이 파티창을 띄우고 있었다.

 

 아직 파티원은 한명도 모집하지 않은 상태였다. 가입해도 될까? 스펙을 물어보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이틀동안 파티원 구경도 못해본 나였기 때문에 과감하게 파티가입을 했다. 다행히 파장분은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이외에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왠지 오늘은 그랜마 4인 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전사와 연금술사 마스터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남자 인간 유저 두분이 가입했고 우리들은 순조롭게 미션에 진입하였다.

 

 그랜드마스터 미션은 90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진다. 몹서버라도 다운되지 않는이상 그 안에 클리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랜마 4인 미션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에 파티원들은 도합 20번도 넘게 죽다 살아났고 모두 다 당연한듯이 포션 중독에 걸려 버렸다. 장비들의 축복이 풀려 바닥에 떨어졌다 주웠다는 반복하기 일쑤였지만 급박한 전투 속에서 축질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꾸역꾸역 9번째의 아크 리치를 물리치고 마지막의 이프리트까지 왔다. 너무나 많이 죽은 탓에 우리들은 금새 지쳐버렸다.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이프리트가 마지막이에요! 마지막이니까 힘내서 가봐요!"

 

 나는 일전에 들어간 그랜마 미션에서 이프리트보다 이프리트가 소환하는 샐러맨더가 더 짜증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샐러맨더를 유인했다. 아이스볼트를 맞은 샐러맨더는 나를 쭐래쭐래 따라왔고 나는 여유롭게 샐러맨더를 부쉬 바깥쪽에 걸쳐놓았다. 나이스를 연신 외친 파티원들과 나는, 다시한번 서로에게 기합을 다지고 이프리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이프리트는 필드보스였기 때문에 우리의 공격에 넉백이나 다운되지 않았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유저에게 즉각 거대한 화염의 망치를 아낌없이 휘둘렀다. 공격범위가 넓어 동시에 세명이 나가 떨어지기도 했다. 언 발에 오줌누기로 반신화와 변신을 해보았지만 이프리트의 매서운 공격에 생명력의 상처는 시커멓게 깊어졌고 결국 우리들은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단 빼요!"

 

 전멸 직전에서 바닥에 누워 퇴각을 신호한 내 채팅이 보였는지, 새까만 생명력으로 이프리트에게 연신 매그넘을 쏘아대던 파티장이 분수대 쪽으로 도망쳤다. 끈질기게 쫒아가던 이프리트는 분수대 주위의 구조물 끝에 걸려 멍청하게 서 있었고, 그 사이에 연금술사는 바닥에 누워있는 나와 전사유저를 살려냈다. 다행이다. 다시 분수대의 구조물을 사이로 이프리트와 대치한 우리는 치료와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치료를 하려던 찰나, 나는 이프리트가 구조물의 모서리쪽에 서있었기 때문에 '화살로 걸치기를 해서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치료를 하다 말고 펫 가방에서 롱보우와 화살을 허겁지겁 꺼내 (나는 악기를 들기 이전에 궁수유저였다) 이프리트에게 걸치기 조준을 시도했다. 내 모습을 본 궁수유저도 의도를 알아 차렸는지 이프리트의 걸치기 조준점을 찾기 시작했고 전사와 연금술사도 우리 둘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한참을 접근해도 이프리트는 공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땐 이프리트의 반응도 전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프리트가 오브젝트에 끼어버린것이다.

 

 

 

***

 

 

 

남은시간 62분 15초

(오전 1시인데 낮처럼 밝은 그림자 던전)

 

 닭 쫒던 개 신세가 된 마냥 이프리트를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던 우리는 경직펫을 소환해보고 온갖 범위스킬을 써보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로에게 미안했는지 포션 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다시 재도전하자는 이야기는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다들 나만큼 멘탈이 약했던 거겠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버그리포팅을 해보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차피 62분 15초나 남았으니, 남은 시간안에 GM이 오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파티원들은 다들 내 의견에 찬성했고 우리는 그 동안 밥을 먹느니 TV를 보느니 하면서 이프리트 옆에 앉아 GM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결국 전사는 바쁜일이 있는지 가봐야겠다며 그림자 던전을 나가버렸다. 책임감을 덜어낸 연금술사도 뒤따라 나가버렸다.

 

 '젠장. 오늘도 결국 여기까진가.'

 

 나도 남은 45분을 그냥 포기하고 미션을 나갈 준비를 했다. 깝깝하다. 미션을 받을 때 처럼 다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한숨을 뒤로, 파티장 엘프(여캐니까 이후로는 그녀라고 칭하겠다.)만은 끝까지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먼저 GM을 기다리자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나가기에는 알량한 자존심이 용납치 못했다는 변명을 한다 치지만 그녀는 왜 나가지 않는껄까.

 

 그녀는 파티원들이 나가던 말던 상관없이 묵묵히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었다. 그녀도 나만큼 아쉬운 거겠지. 경직펫을 소환해보기도 하고, 야수화로 변신을 해서 엘븐 미사일을 날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했던 시도를 또하고, 또하고...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나도 결국 그녀를 따라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보기 시작했다. 랜스차지, 마상랜차, 경직펫 소환하기, 반신화, 이프리트 시야밖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보기, 윈드밀, 자장가...

 

 물론 이프리트는 묵묵히 우리를 무시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남은 시간 2:30

 

 그림자 던전의 시간에 오류가 났는지 어두워야할 밤은 눈부시게 밝았고, 밝아야져야 할 새벽에는 어둠이 짙어졌다. 그런 이질감 속에서도 이프리트와 우리는 GM을 기다리며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결국 3분이 채 남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바닥에 휴식을 하고 있었다. 시간은 밤이었지만 햇살은 따스했고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사실 지금 GM이 온다고 해도 둘이서 반피 이상 차있는 이프리트를 2분만에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도 그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나가지 않았다. 작은 기적이라도 바란걸까? GM이 올꺼라는 기대감? GM이 대신 때려잡아줄까? 그냥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마저 기다리자는 아쉬움? 뭔지 모르겠다.

 

 

 

 

 "같이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사실 나는 그녀에게 같이 기다려 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았다. 지금와서 진지하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리포트를 믿고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멍청한 짓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같이 멍청하게 기다려 준 그녀가 고마웠다. (사실 그렇게 고마워 할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고... 그런 나의 채팅에 그녀도 작게 대답해 주었다.

 

 

 

 

*

 

 

 GM은 글을 쓰는 3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구조요청 리포트를 읽지 않았다.

 62분 15초를 멍때린 미션은 실패로 끝났다. (글을 쓰면서 아직도 혼자 남아 GM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떠났고 얻은 것은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오늘은 아주 얻은 것이 없진 않은 것 같다.

 

 

 혼자 남아 글을 쓰는 그림자 던전의 새벽밤 하늘이 눈부시게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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