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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생소한 역사이야기] 감자
게시물ID : history_54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가바드
추천 : 12
조회수 : 114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08/26 22:33:39

기원전 부터 남미 특히 칠레와 페루에서 길러지기 시작했던 이 식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주요식량으로 애용되어왔다.

모 감자에 대한 역사를 구구절절하게 이런식물이니 이런 대우니 하는 이야기는 위키백과나 포털검색하시고

다만 감자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한다.

 

16세기 에스파냐의 남미정복 이래 남미 원주민들은 가축취급을 받으며 극심한 수탈에 시달려야했다.

거기서 심각한 착취속에서도 그들을 생존하게 해준 고마운 식물은 감자였다.

초기 서유럽사람들은 감자를 수탈항목으로 취급안했으며 싸게 원주민들을 먹여 착취할수있는 원주민식량쯤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남미에서 감자는 원주민들의 주요식량으로 그 기여도가 점차 높아져갔다.

그런데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이 감자를 기르는 모습에서 한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한 밭에 여러가지 종류의 감자 품종을 골구루 뿌리는 것이였다. 즉 보라색감자 황색감자 길쭉한 품종 짤막한품종 작은 알감자 등등

(지금에와선 많은 감자품종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미쪽에선 많은 품종의 감자가있다.)

 

그들은 원주민의 행동을 비웃었다. 크고 품질좋은 감자를 심으면되지 왜 품질이 떨어지는 품종까지 섞어서 심을까? 그들은 원주민이 경제개념이 없다고 천시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더 착취하기위해서 감자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원주민의 감자농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즉 가장 좋은 품종의 감자만 일률적으로 심었다.

 

그러나 다음해 남미 원주민이 수십 수백만명이 아사위기에 처하고 실제로도 엄청난 인명피해를 속출했다.

문제의 원인은 감자에 있었다. 그해 감자에 전염병이걸려서 먹을수가 없던 것인다. 감자는 모든요소에서 잘자라는 식물이지만 유독 전염병 풍토병에 취약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풍토병이 여러가종류가 있고 한해마다 다르게 발병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원주민들이 여러품종의 감자를 한밭에 심는 것은 그 해 어느 풍토병이 발병할지 모르기때문에 생존을 위한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그들은 수세기에 걸쳐 이미 이러한 사실을 체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를 통해 서양정복자님들이 교훈을 얻었으면 됬는데 이분들은 다시한번 사고를 치게된다.

 

유명한 아일랜드 감자파동이다. 1845년 미국발 감자전염병이 아일랜드에 상륙하게 된다. 문제는 당시 아일랜드의 경제구조인데. 아일랜드는 영국의 통치하에 많은양의 농산물이 영국본토로 방출되고 있었고 아일랜드의 토양은 이상황에서 잉여생산물을 남길정도로 농사가 잘되는 품질은 아니였다. 이때 감자는 고마운 식량으로 극심한 착취속에서도 아일랜드를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였다. 따라서 그들은 삼시세끼 감자를 먹고살았다.

근데 문제는 그들은 생산량만을 추구한 나머지 거의 획일화된 감자를 심었고 그것이 마침 딱 맞아떨어진것이다. 영국은 대기근속에서 농산물 착취를 유지했고 당시900만명쯤되던 아일랜드인은 7년 정도만에 반토막이난다. 그중 절반은 굶어죽고 절반은 미국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가난했던 아일랜드인이 생존을위해 한정된 배편을 구하는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으며 이들은 이민지에서도 핍박받아야했다.

(당시 세계는 영국이 갑ㅋ 거기다 이들이 떠난주요 정착지는 영국본토 스코틀랜드 미국으로 미국의 경우는 긴항해도중 많이 죽음)

거기다 사람들이 떠난 아일랜드 본토는 영국인이 헐 값에 사들이고 착취는 그다지 변하지 않음

당연하지만 아일랜드인의 영국본토에 대한 증오심은 상상 초월하고 종교문제와 함께 극심한 반영문제로 발전하게 됨

 

어떻게 보면 영국과 아일랜드의 분쟁속에서는 서양인의 감자에 대한 무지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네요.

감자는 20도에 서늘한 기온에서도 잘자라지만 풍토병과 전염병등에 취약하고 현재까지도 이러한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다고하네요.

 

추가로 우리나라에 감자가 전국적으로 재배된것은 사실 100년정도 밖에 안됬습니다. 소개된것은 1800년대 정도고요.(중국은 1600년쯤 옥수수와 함께 입성) 곡물이 대량 방출되던 일제시대를 버틸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했죠.(일제가 쌀대체작물로 권장하기도 했고요)

 

 

Ps. 요즘 역게에 뻘글도 많고 전체적으로 글이 많이 올라오지도 않아서 (최근 기타게시판 유배에도 당황ㅋ)

       영향가가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종종 소소한 역사이야기를 써볼려고요. 써놓고보니 그리 짧지는 않네요.

      재미있길 바라지만 역사이야기가 사실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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