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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생소한 역사이야기] 혁명의 법칙
게시물ID : history_55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가바드
추천 : 3
조회수 : 56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8/28 02:11:22

월래 다른걸 쓸려다가 시사게시판에 혁명이랑 쿠데타차이 묻는 글있길레 써봄

 

우리가 역사에서 종종 자주 언급되는 말이 혁명인데 대개 급격히 변화된 현상에도 자주 적용되기는 합니다.

 

그렇치만 단순하게 급격한 변화에 혁명이라는 표현이 붙는건 아닙니다.

(사실 역사에서 혁명이란 말은 함부로 던지는 표현은아님 혁명적이란 표현은 자주써도 명사로 혁명이 붙는건 많은 검증을 요함)

 

정치학적으론 모르겠지만 역사학에서 혁명을 규정하는것은 크게 3가지로 수렴하게 됩니다.

 

1. 상황 (위기가 있었는가? 이러한 위기는 사회경제적위기 + 구체제로인한 위기)

2. 주체세력(세력간 사회적 대립이있었는가?)

3. 혁명이후 급격한 변화가 있는가?

(이말은 성공했냐란 뜻도 포함되야함 성공해야 몰바꾸든하니. 실패하면 그냥 반란ㅋ또한 변화란 것은 구체제를 대신할 신체제를 의미 추가로 긍정적인 부분을 요함)

 

우리가 익히 아는 혁명들은 저 3가지중에 최소 2가지를 완비해야 혁명의 명칭에서 논란이 적어짐

(3가지중 몬가 미심적이면 혁명이 맞네 않맞네 논쟁이 발생함)

특히 3번이 성립안되면 1, 2만 있어도 혁명이라고 할 수가 없음 추가로 급격한 변화 라는점에서 주목해야함

 

때로는 단순하게 3번의 영향이 너무 클때 붙여지기도함 (예: 산업혁명 농업혁명 등등)

하지만 이러한 현상명칭은 단순하게 어휘적인 뜻으로 혁명을 급격한 변화라는 시점에서 해석한것이고

 

우리가 지금 혁명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소위 시민혁명과 같은 정치현상이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 생각해야함

 

가령 예를 들면 청교도 혁명의 경우가 있는데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혁명이란 표현이 옳은지 의견이 분분한데

딱히 사회경제적 위기가 영향이 크다고 하지 못하며 혁명을 담당한 지주계급 젠트리가 왕당파와 의회파로 갈라섰기에 주체세력적 대립도 완전치 못함  그래도 살짝 빗겨만있지 어느정도 규정안에 의의를 품기때문에 혁명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큼(논란이 있다는 소리)

서술해보면

1. 1620년대 모직물수출 부진+ 1630년대 연이은 흉작으로 경제위기, 스코틀랜드 반란, 이 상황에서 왕의 전쟁동원 

2.  종교적대립, 의회파와 왕당파의 대립

3. 절대왕정이무너지고 의회중심의 헌정상의 자유와 종교적 자유시도

앞서 말했듯이 몇가지가 애매하긴 하지만 구색을 대충 갖추었기때문에 교과서에 청교도혁명이라고 공식적으로 배우고 있는것임

 

이와 비슷하게 미국혁명도 혁명이 아니란 말이 있음 이렇듯 혁명이 붙는건 쉬운 일이아님

단순히 성공한 쿠데타가 혁명이다 라고하는건 역사적으론 괴변임

 

혁명은 소위 혁명적인 상황과 혁명적인 결과가 필요한것임 거기에 정권은 부수적인 것으로 최종 목표는 사회를 급변시키는데에 있으나

쿠데타는 단순히 정권을 쟁취하는 행위로 정권탈취가 최종목표임

 

어느나라 공주님께서 자주언급하시는 군사혁명에 대해 분석해보면

1. 위기가 있었나?

- 민주당내에 신구파벌싸움과 장면정부의 무능에 불만을 품은 시위대 난립 하지만 시위대에 요구는 체제적 모순에 대한 불만이아닌 단순히 정권에 대한 불만임 만약 시민들이 당시의 민주주의나 의회정치를 비판하고 독재를 요구했다면 혁명요건에 맞을 수 있음, 경제적위기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그 당시 못살았다고 위기가아님 전에 비해 민란낼 정도로 안좋았냐가 위기임 아쉽게도 6.25이후 경제는 꾸준하게 올라가는 추세였음 완만해서 그렇지. 하지만 사회 혼란이란 측면에서만 따진다면 억지로라도 조건 충족했다고 고려해볼 여지가 있음 

2. 주체세력

- 군대가 사회세력과 대립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당시 정치주체세력과의 대립점도 찾을 수 없음.  

3. 혁명이후 급격한 변화가 있었나

-  혁명과 쿠데타를 가르는 중요한 부분인데. 5.16이후 신체제 제시는 있을 수가없었음 왜냐면 구체제에 대한 불만이 없었으니깐. 또한 정권교체 이외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음 모 군사독재정권 들어슨게 급격한 변화일 수 있는데 구색이라도 과거의 정치체제가 유지되는 점에서 정권교체 이외에 별다른 변화가 있다고 보기엔 어려움 더욱이 군사독재가 긍정적이지도 않음 (즉 프랑스혁명이후 왕정복고를 왕정복고혁명이라고 하지는 않음. 또한 그때 즉위한건 나폴레옹ㅋ 유럽을 정ㅋ복ㅋ) 추가로 왜 긍정적이지 않냐면 불법독재가 싫어서 정권 부시고 2공화국 만든 사회를 다시 불법독재로 회귀하는건 왕정복고적인것 이외에는 의미부여하기가 어려움. 이렇듯 변화한게 정권뿐이라면 쿠데타일뿐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경제발전과 같은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근데 이건 따로 생각해야하는 것임 앞서말했듯이 급격한에 주목해야함 미국혁명은 혁명이 성공한 후에 바로 독립하고 연방정부구성했고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은 바로 절대왕정에서 의회권력으로 즉각적 변화가 수반되었고 프랑스혁명도 마찬가지임. 만약 5.16 쿠데타 이후에 바로 경제발전이런 구도였으면(허경영과 MB각하는 가능할수 있음 당선되자마자 코스피3000이였던가..)아 그럴수도 있겠네 하겠지만 그게 아니란말임 이건 제3공화국의 치적이라고 표현해야지 혁명의 성과라고 하기엔 말이 안된다는 점임

 

다시 말하지만 5.16쿠데타 이후 변화된점은 4.19이전 같은 독재정권이 더욱 강화되어 군사독재정권이 되었다는 점 뿐임.

 

그럼 위에 상황을 고려했을때 공주님 입맛에 맞추어볼 수 있는 표현은 5.16쿠데타로 정권잡은 제3공화국은 경제를 발전시켰다 정도가됨

5.16자체가 '역사'교과서에 혁명으로 배울만큼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며 정권쟁취를 했던 쿠데타일뿐임.

(박정희 경제발전이 박정희가한거냐부터 정말 경제발전이 맞냐의 논쟁도있겠지만 경제사랑 안친해서 잘모름)

 

 

*음 이것 저것 쓰다보니 짧지가 않고 지루해서 5.16이후에 간단한 에피소드나 쓰고끝냄(많이들 알지도모름)

5.16에 놀란 장면은 운전기사랑 날름. 그리고 어느 한적한 성당에 숨고 운전기사에게 절대로 자신의 위치를 발설하지 말라고 명령함

근데 사실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 했을때 동원한 병력은 그다지 많은 숫자가 아니였음 동원병력이 늘어나는건 쿠데타가 안정되어 가는 시점

즉 통수권자가 정신차리고 즉각적으로 대응했으면 막을 수도 있었고.. 추가로 미국도 있었음

한국에서 쿠데타가났으니 미국에선 난리가났음 초기에 미국정부는 쿠데타따위 용납할 마음도 없었음 근데 주한미군 사령부든 주미대사관이든 미국 정부든 발만 동동구른게 혁명세력처분의 명분이될 정당한 정부 구심체가가 없던거임 즉 쿠데타세력을 진압하고싶어도 내정간섭소리 피할려면 장면의 요청이라는 구색을 맞춰야했고 쿠데타세력을 일소하고나서 세울 정부요인도 필요했던건데. 그 중심인물이 사라진것

덕분에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기관에는 쿠데타세력과 박정희 지휘벗어난 비쿠데타세력이 함께 근무하는 어처구니없는 시간이 흐름(즉 박정희가 모든 군부를 등에 업고 했던 쿠데타가아님. 아마 이때 북한이 남침했음 지휘계통 혼란으로 순삭당했을지도 모름)

미국은 정보력을 동원해서 마지막까지 같이있던 그 운전사를 찾았는데 어처구니없게 그 운전사가 충성심이 너무 강했음. 안그래도 대북위험때문에 미국입장에서 초조한대 몇날 몇일이 지나도 장면을 찾을수가 없음. 미국정부는 어쩔수없이 쿠데타 세력에 대한 사실상 인정으로 일단 남한정부안정시키기로 가닥을 잡고 그 다음은 익히 아는대로임

사실 5.16쿠데타는 '당시에' 그다지 꼼꼼하지도 않았고 대규모 지지를 등에 업고 한 쿠데타는 아니였음

장면은 장면대로 결단력과 용기도 없고 유유부단함이 가득해서 5.16상황도 자기손으로 파고 해결할 기회도 놓침

(당시 실질적권력은 대통령이아니라 국무총리자리였음 즉 윤보선은 큰 의미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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