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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생소한 역사이야기] 마녀사냥의 유산
게시물ID : history_5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가바드
추천 : 5
조회수 : 8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9/18 01:10:35

이미 여러가지글들을 통해서 마녀사냥이 단순한 광기의 일탈적 행동이 아님은 알려져있다.

오유에도 베오베에 마녀관련된 글이 몇번 올라온것을 보았고 역게에도 존재한다.

덕분에 우리는 마녀가 진짜 마녀가 아니란 것을 알았고 그들이 대개 나이많고 민간에서 훌륭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여성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대개 이러한 마녀사냥은 나이 많은 미망인들의 재산을 뺏는 사업처럼 혹은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로 묘사되곤한다.

 

물론 이러한 점은 마녀사냥의 일부 원인이기도 하지만 여기선 마녀사냥의 원인과 유산에대해서 좀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마녀로 지목되는 대상은 대개 여성으로 특히 나이가 많거나 과부가 많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은 정식교육을 받은적 없으나 대개 해산에 능통했고 구전된 이야기와 상식면에서 박학다식했다. 또한 가벼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민중문화라는 공동체의 기억전달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왜 미움을 받았던 걸까?

 

문화사 연구에서는 교회와 사법 당국의 문화적 헤게모니와 민중문화에 대한 억압으로 이를 설명한다. 근대초 혼란한 사회(종교혁명)에서 질서를 재정립해야하는 교회와 정부 특히 사법당국은 정의의 구현자로서 혹은 믿음의 원천으로 자신들이 민간사회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성들은 제거되야할 대상이였다. 마녀사냥은 교회에서 점차 세속법정으로 넘어갔으며, 중앙권력이 미약한 변경 특히 도시보다 농촌이 더욱 심했다.

 

여성사적으로 살펴보면 근대 초 가부장제가 강화되면서 여성에 대한 배제가 이루어졌다. 이미 가톨릭사회에서 여성은 성적인 간교함과 열등하고 위험한 존재로 나타나며 특히 사회적으로 결혼지참금으로 그들의 지휘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들은 공적인 집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못했으며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였다. 문제는 근대초 이러한 상황이 더욱 커졋다. 특히 가톨릭보다 개신교에서 강했는데 개신교는 성경에 나오는 여성의 원죄를 강조했으며 루터와 그의 지지자들은 여성혐오적 글을 발표했다. 가정생활을 중시한 개신교는 가정에서 여성의 예속적인 역할을 강조했고 가정이 강조됨에 따라  가부장권에 권위도 상대적으로 오르게 되었다.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나 여성수도회를 통해 종교적 여성의 자리가 있었지만 혼란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 전통적인 정숙, 순종, 절제의 신념이 강조되고 사회의 뿌리조직인 가정이 가부장중심으로 안정되야 했다. 여기서 추가로 사회의 자본주의로의 이행과 사유재산제 발달도 여성의 예속화와 지휘하락을 가속화 시켰다.

 

위에 두가지 설명만 보면 왜 마녀사냥이 영국 프랑스보다 독일 지방에 더 많이 발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더 마녀사냥속에는 지배자들의 통치방식의 변화가 발생한다.

먼저 잦은 전염병과 전쟁위협으로 공포분위기가 조성되고 권력자들은 사회불안에 대해 책임회피를 위해 희생자를 찾게 되었다. 여기에는 앞서 말했듯이 사회통제를 위해 권력을 집중하고 공포의 효과를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

 

두번째는 공동체의 해체가 있다. 유럽중세는 공동체의 사회였다. 즉 사회 하층 혹은 잉여적 존재에 대해 공동체가 부양할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중세적 공동체가 해체되어가고 또한 혼란하고 살기 힘든 사회에서 사회적 잉여를 배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마녀사냥은 좋은 기회였다. 

 

여기서 개인을 보호하는 공동체의 붕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국가와 개인의 1:1관계를 의미하기도한다. 물론 마녀사냥으로 공동체 붕괴전체를 정의 할 수는 없지만 국가의 개인관계가 재정립되가는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할 수는 있다.

 

아이러니한것은 과학혁명의 시기와 마녀사냥이 동시에 성행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마녀사냥을 과학혁명의 영향이라고도 말한다. 즉 이성의 시대의 도래는 약한자를 내치고 강한자에게 복종하는 시대로의 변화로 이과정에서 불필요한 잉여적존재 특히 정부나 교회입장에서 더욱 불필요했던 박학다식한 여성의 존재는 배제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통치방식의 큰 변화는 자발적 복종의 시작이였다. 사회불안의 희생물로서, 공동체 내에서의 인적 청산으로서, 사회상층부의 사회통제를 위한 발판으로서 마녀사냥은 이용되었다. 공포는 훌륭한 재료였다. 결국 마녀사냥은 거칠고 불확실한 근대 초 유럽의 자화상이며 하나의 헤게모니가 형성되가는 과정이였다.

 

ps. 자발적 복종이란 예를 들어 과거에는 병사들이 직접가서 무력으로 위협도하면서 세금을 걷었다면 이제 사람들이 세금을 알아서 가져다 받친다는 의미로 생각하시면됨 즉 아무도 없고 차도안다니는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가도 되지만 우리는 내면적으로 신호를 기다렸다 가야한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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