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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던 고려말의 상황..
게시물ID : history_56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늘의유령
추천 : 25
조회수 : 17464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2/09/19 00:21:56

이전에 어떤 이상한 사람이 고려말에 위화도 회군만 아니었으면 명나라를 처발렀다는 희한한 소리를 해서 토탈워 까페에서 쓴글인데...

 

밑에서 또 어떤분이 조선 건국이 명분이 없었다는 희한한 소리를 해서 여기에도 다시 올림..

 

1. 권문세족의 대토지 겸병으로 인한 개막장 국가 재정

 

고려가 망조 테크 시작은 무신정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나라가 결딴나는건 사실 몽골 침입임. 1231년(고종 18년) 몽골군의 1차 침입 이후 30년동안 7번이나 침공당하면서 전 국토가 잿더미화 됨.

 

이때 무신정권은 섬멀티 강화도로 도망쳐서 역전의 베틀쿠르져를 생산 하는게 아니라 부처님께서 나라를 구해주길 바라며 팔만대장경을 조판.

 

 

 

그 와중에 생존에 위협을 받은 농민들이 죽기살기로 싸워 2차 침입때 살리타를 사살하는 등 나름의 전과를 올리나 지방 관리나 농민들의 산발적인 항쟁은 몽골군의 침입을 막기에는 역부족, 결국 인구의 감소와 황폐화된 농지만 남음.

 

이후 문벌귀족들과 권문세족들이 중심이 되어 황폐화된 토지를 개간해서 사유화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국가의 토지, 왕실의 토지, 사원전, 민전, 군인전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잡아먹기 시작하면서 개박살난 국가재정을 완전히 털어먹음. (세금을 거둘래야 거둘곳이 없다!!!)

 

[고려후기 문제가 된 농장은 이미 12세기 초엽 睿宗代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3세기 후반 원 간섭기 무렵부터는 14세기 사회경제 모순의 상징으로 농장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 이때 농장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몽고와의 전쟁후 권세가 위주로 진행되었던 농지개간 때문이었다. 권력형 농장에 의한 탈점은 국가기관과 왕실의 토지,寺院田,軍人田,民田 등 모든 토지를 대상으로 행해졌다.그 중 민전에 대한 탈점이 가장 극성이었다. 이렇듯 이 시기 농장은 사적인 지배 예속관계를 기초로 한 대토지 집적이어서 많은 농민층이 유망하거나 국가 재정에 문제를 초래하였다.(朴宗基, 14세기 고려의 정치와 사회)]

 

2. 망조가 든 나라는 항상 등장하는 말,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여기서 또 막장인게 30년 전란속에서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농민들에게 2중으로 세금을 거둠. 당연히 등골이 뽑힌 백성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유민화되서 도적떼가 되거나 권문세족의 노비로 전락. 이도저도 싫은 사람들은 po반란wer일으키다 참수 ㄱㄱ

결국 양민은 하나도 없고 노비들만 즐비한 기형적인 인구구조가 탄생!!

 

[고려전기에 租∙ 庸∙ 調 3稅가 토지를 매개로 수취되고 있었으며, 庸∙ 調에 해당하는 常 ∙ 雜貢이 戶를 매개로 하여 다시 부과되고 있었다. 즉 庸∙ 調가 이중으로 수취되고 있었다.(李惠玉, 高麗後期 收取體制의 變化)]

 

[司法의 폐단이 오래되매 國庫가 고갈되고 양민이 빈곤하다. (高麗史 卷78, 食貨1 田制, 恭愍王 12年 5月條)]

 

[농장 확대와 아울러 주목되는 현상 하나가 노비 집중이다. 田柴科 제도가 무너지면서 농민의 流民化가 증대하고, 이들이 권문세족의 농장에 투속하여 노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권문세족들이 강제로 양인을 노비화하는 경우도 증대했다. 이리하여 고려 후기 권문세족의 노비가 증대하고, 이로말미암아 무엇보다 국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양인 농민 수가 감소하여, 병역동원에 큰 차질이 생겼다. (안혜진, 高麗末 辛旽 改革政治의 性格)]

 

3. 국방력의 약화

나라가 막장이 되서 군대를 만들 돈도, 사람도 없으니 사방에서 만만하게 보고 물어뜯기 시작하는데, 특히 왜구의 침입이 심각했음.

 

공민왕 재위 23년간 115회나 침공당하는데(羅種宇,「倭寇」,『韓國史』8, 國事編纂委員會), 남쪽인 경상, 전라도가 당하는건 말할 것도 없고 충청,경기,강원,함경,평안도(사실 전국)의 해안 뿐만 아니라 내륙지방까지 쓸고 다님.

 

심지어 개경도 위험해서 계엄령이 떨어지기도 함. (高麗史節要 卷 28, 恭愍王 15年 5月條)

 

거기에 공민왕 8년 10년에 들어온 홍건적의 침입 때는 2차때 개경이 함락되고 왕이 안동으로 도망가는 등 추태를 보이고, 그 외에도 별별 잡놈들이 건드려대는 통에 헬게이트 열린 트리스트럼보다 더한 참상이 여기저기서 벌어졌음.

 

그런데 무슨 초능력으로 명나라를 처바르나요? 아래의 상황이 당시 고려의 현실임.

[창고가 텅비고 宿衛가 고단하며 軍政을 다스리지 않았으므로, 병기는 가질 만한 것이 없고 갑옷을 줄 만한 것이 없으니 모든 군사가 기운이 없어 적을 바라보고 감히 나아가지 못하였다. (高麗史節要 卷 28, 恭愍王 15年 5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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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 나라가 전란에 빠진 틈을 타고 개새끼들이 토지를 독점함.

2. 먹고살기 힘들어진 농민이 거지가 되서 개새끼들의 노비가 됨.

3. 돈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 국방력이 파탄남. 동네북 전락.

 

ps. 고려를 빨면서 조선을 까는건 어불성설. 차라리 조선도 까고 고려도 까는거면 모를까... 고려말의 참상에 대면 조선말의 상황은 그나마 양반임.

 

ps2. 어떤 대제국을 가져다가 대도 망조들어서 망할때는 다 비참함. 막장만 보고 까면 세상에 안까일 나라가 없음. 신의 저주를 받아 일격에 멸망당하는 것도 아니고...

 

ps3. 고려말의 농민이 이성계를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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