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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심형래가 다른 이무기들을 품어라
게시물ID : humorstory_1405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늘보
추천 : 0
조회수 : 6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7/08/06 18:13:26
펌)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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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는 마이너다. 용이 되지 못한 한을 품고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이무기가 이만큼 컸다. 개봉관을 잡지 못해 각종 회관을 전전하던 이무기, 극장에서 평가받지 못해 비디오 가게에나 젖줄을 대던 이무기, 그래도 용이 되길 열망하는 걸 감히 포기하지 않았던 심형래 이무기가 이만큼 컸다.

심형래만 이무기인가. 한국 영화계도 이무기다. 감히 천상을 올려다보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한국 영화계 안으로 들어오면 이무기 밑의 이무기들이 또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이무기이나, 한국이라는 작은 도랑에서는 태산 행세를 하는 메이저 영화들 밑에서 기어다니는 저예산 이무기들이 있는 것이다.

만약 <디워>가 미국에서 흥행한다면, 동양의 신비함 어쩌고 하면서 오리엔탈리즘 팔아먹어 성공한 부류 말고 동양에서 최초로 제대로 붙어 성공한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다. 이무기가 용에 가까워지는 거다. 승천이다. <디워>는 심형래 이무기의 여의주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디워>가 여의주가 된다면, 그래서 심형래 이무기가 용이 된다면, 정말로 한국이란 개천에서 용이 난다면, 난 심형래가 다시 한국의 이무기들에게 여의주가 돼줬으면 좋겠다.

첫 번째 여의주 영구아트무비

영구아트무비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심형래는 위대하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외경쟁용 산업이 국가의 철저한 육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거친 벌판에서 잡초처럼 혼자 큰 경우는 없다. 반도체? 80년대 말 반도체 개발자금의 90% 이상이 국가가 댄 것이었다.

영구아트무비를 육성하기 위해 국가가 무슨 대단한 역할을 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심형래라는 이무기의 한이 만들었다. 아이들을 방학 때마다 백만 명씩 불러 모으던 놀라운 흥행감각이 그 토대가 됐다. 하지만 그 아이들 감수성에 대한 비상한 흥행감각은 거꾸로 감독 심형래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가 됐다.

시장에서 돈을 번 업자들은 많다. 심형래가 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 빌딩이나 샀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다. 욕도 먹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용이 되길 갈망했던 것 같다. 그 열망이 영구아트무비를 만들었다. 이것은 사건이다. 한 산업분야가 생겨날 수도 있는 씨앗을 뿌린 것이다.

<디워> 제작과정에 대한 내밀한 지식은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이 영화가 일종의 집단창작일 것 같다. 영구아트무비 집단적 역량의 총체란 뜻이다. <용가리>가 만들어질 당시 영구아트무비 제작팀의 모습을 다룬 다큐물을 몇 번 봤었는데 화면 너머로 열정과 오기가 뿜어져 나왔다. 꼭 해내겠다는 열정, 왜 우리라고 못 하겠느냐는 오기.

영구아트무비는 지구상에서 가장 투입 대 산출비가 뛰어난 특수영상 집단으로 성장할 것 같다. 영상은 단지 문화의 한 분과가 아니라 국가의 흥망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산업영역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 안에서 특수영상의 역할 또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수영상은 기술력의 집적체여서 선진국만의 점유물이었다. 영구아트무비가 매우 근접했다. 승천하기 직전이다. 심형래 이무기가 우리나라에 선사한 여의주가 될지도 모른다.

이무기들을 품어내는 한국 영화계의 여의주로


ⓒ 쇼박스
90년대 이래 영상문화가 만개하면서 B급영화라는 말이 유행했다. 원래 B급영화는 A급영화보다 질이 떨어지는 싸구려 오락물이라는 경멸적인 뜻으로 쓰였었다. 점차 그 뜻이 넓어져 메이저 스튜디오가 아닌 곳에서 만든 저예산 상업물 일반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는데, 서양에선 70년대부터 B급영화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B급영화는 저예산 영화여서 거대 스튜디오의 지휘 하에 만들어지는 대형영화보다 오히려 더 작가의 특성이 잘 발현될 수도 있고, 산업적으로 B급영화는 인재들을 키우는 일종의 요람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통째로 B급이다. 이 좁은 도랑 안에서 심형래의 인생은 그야말로 B급 중의 B급이었다. B급 인생이 만든 B급 영화들로 각종 회관과 비디오 가게를 누볐다. 개봉관은 A급의 것이니까. 그 B급이 한국의 메이저를 거치지 않고 대뜸 미국 본바닥의 A급 극장으로 치고 나갔다. 기적이다.

이상하게 한국에서 90년대 이래 형성된 B급영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은 심형래 이무기에게만은 적용이 안 되는 것 같다. 한국적 B급영화의 장인이라면서 애정 어린 조명을 받은 남기남 감독 정도의 대접조차도 받지 못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태다. 픽사의 스티브 잡스가 받는 상찬에 비해 영구아트무비를 만든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심형래 감독은 그것 때문에 너무나 마음 아파하는 것 같다. 그것이 한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곧 심형래 이무기가 용이 된다면, 여의주를 문 용이 사람들에게 한을 품는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용이 된 심형래 이무기가 한국 사회에 통 크게 복수하는 길은 B급 이무기들을 여봐란듯이 용으로 품어내는 것이다. 심형래가 거대한 여의주가 되는 거다. 미국에선 로저 코만이라는 B급영화의 대부가 있어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 마틴 스콜세지 등 영화사에 남을 용들이 아직 이무기였을 당시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

B급 이무기들에게 영화를 만들고 세상에 나올 기회를 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여의주다. 심형래 감독의 연출역량에 대해선 아직 의구심이 있지만, 제작자로서의 능력, 기획자로서의 능력, 리더로서의 능력 등은 위대한 수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과 시스템을 키우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판 B급 시스템의 산실로 아예 이무기 영화사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개인과 국가가 힘을 합쳐 제작+배급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심형래 감독 정도라면 추진해봄직 한 일이다. 국가도 이런 일엔 통 크게 돈을 내놔야 한다. 심형래처럼 자력으로 용이 되는 이무기는 세상에 극히 드무니까.

평소 해준 것도 없이, 피눈물나는 고생으로 이제 이룰 만하니까 뻔뻔하게 뭔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심형래 감독이 고생담을 말하며 눈물을 쏟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건 정말 크게 맺힌 눈물이었다. 그래도 난 심형래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영구아트무비를 만든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용이라고 믿는다. 이젠 다른 차원으로 승천할 수 있으니 부디 한국이라는 작은 도랑 안에서 받은 상처는 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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