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진왜란, 김성한 작 (배경 : 1593년 조선 평양성) ------------------
그러나 문제는 먹을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날은 하다 못해 북어꼬리에 술 한잔이라도 있어야 격에 맞을 것이 아닌가 ? 그런데 술은 고사하고 조밥도 부족해서 한사람에 계란보다 클 것도 없는 밥덩이 하나씩 돌아갔다.
역시 죽일 것은 조선 종자들이었다. 조선 땅에 들어온 후로는 식량은 조선의 책임이었다. 이 게을러빠진 것들이 어떻게 했길래 엄동설한에 싸우고 피를 흘린 용사들을 이렇게 굶긴단 말이냐 ? 자기들은, 적어도 조선의 임금이니 대신이니 하는 자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계집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술잔을 기울일 것이 아닌가 ?
생각할 수록 부아가 치밀었다. 이대로 있을 것인가 ? 말깨나 하는 병사들은 장수들을 찾아 한마디 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 ?
이여송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는 평안도 도순찰사 이원익을 불렀다. 그동안 평양과 순안 사이를 내왕하면서 식량 수송을 책임진 인물이었다.
"어째서 이 모양이오 ?"
이여송의 호통에 이원익은 할 말이 없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 아니오 ?"
조선 조정은 명군의 요구대로 그들에게 일정한 급식을 약속하였다. 장군들에 대해서는 각각 접반사가 따라붙어 특별한 대접을 하는 외에 천총, 파총 등 장교 이하 사병에 이르기까지 질서정연한 식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 장교들에 대해서는 천자호반(天字號飯)이라 하여 고기, XX, 채소, 자반 각 한접시, 밥 한그릇, 술 석 잔.
. 각 관아에서 파송되어 온 연락관에 대해서는 지자호반(地字號飯)이라 하여 고기, XX, 채소 각 한접시에 밥 한그릇.
. 일반 병사들에 대해서는 인자호반(人字號飯)이라 하여 XX와 소금에 절인 새우 각 한접시에 밥 한 그릇.
. 그들이 타는 말에 대해서도 규정이 있어 한끼에 콩 소두 한말, 풀 한단씩. 단 점심에는 삶은 콩을 소두로 4되.
의주에서 평양에 이르는 길에는 연속부절로 그들의 관원과 군인들이 내왕하였는데 각 역참에서도 이에 준하여 그들을 대접하기로 되어 있었다.
강압에 못 이겨 약속은 했으나 실천할 형편은 못 되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새우 같은 것은 전부터 호남의 해안지방에서 거둬다 병량으로 사용 중이었고, 또 비축하여 둔 것도 얼마간 있었다. 이것을 명군에게 돌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선 육류가 문제였다. 난리통에 백성들은 흩어지고 제대로 가축을 기르는 집이 드물었다. 벽지를 돌아다니면서 돼지니 닭 같은 것을 애써 긁어모았으나 장군들을 대접하기도 빠듯했다. 장교들은 문서에만 있고 실지로는 상에 오르지 않는 고기반찬 때문에 불평이 그칠 날이 없었다.여기서 xx는 과연 무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