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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장편(掌篇)소설 '겨울 왕국의 사냥꾼'
게시물ID : readers_50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잿더미처럼
추천 : 1
조회수 : 255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2 20:21:52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눈발이 눈꺼풀을 뚫고 이따금씩 들어와도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송이가 얼굴에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즐겼다. 살을 에듯 날카로운 바람도 그녀에겐 어머니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 같은 그 바람에 고향의 향기가 실려 왔다. 그녀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온기와 풍요로움의 여신’의 달이 뜰 때 모든 국민들의 축복으로 태어났다. 햇빛을 받으면 윤기를 머금어 찰랑거리는 은빛 머릿결은 눈부시게 빛났고, 달빛을 받으면 마치 은하수라도 품은 것 같은 반짝거림을 보여주었다. 눈처럼 희면서도 수줍게 발그레한 피부와 눈밭에 피는 복수꽃 같이 앙증맞은 입술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 게다가 자비로운 성격과 사려 깊은 배려심, 모두의 마음을 절로 평온하게 만드는 미소는 공주로 태어난 그녀를 왕국의 보물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또다시 뒷골목 사창가와 도박장을 돌아다니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한량인지를 보여주듯 하는 행태에 빠져 궁에 들어오지 않는 남자를 생각했다. 애초에 나라의 존속을 위해 팔려오듯 한 몸이었지만 남자의 소문이 어찌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남자를 건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두 나라간의 거리를 좁혀볼 요량이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한겨울 눈이 뒤덮인 곳에서만 핀다던 복수꽃. 일년 중 가장 따뜻한 달인 ‘온기와 풍요로움의 여신’의 달이 뜰 때 태어난 그녀와 닮았다. 모두 땅 속에 잠들어 있는 중에 혼자만 온기를 찾아 싹을 내민 꽃. 그녀는 이맘때면 새하얀 눈에 뒤덮히던 고향과는 전혀 다른 삭막한 풍경의 도시를 보며, 어쩌면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차다. 문 닫고 들어 오거라.”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놀라긴 커녕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항상 어딘가에서 기척 없이 나타나 그녀를 지켜본다. 그 눈빛은 어디론가 도망가지나 않는지 감시하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소리를 듣기만 했는데도 어쩐지 원망 섞인 대꾸가 튀어나와 버릴까봐 차마 뒤돌아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제 고향에서 이 정도는 춥지 아니합니다.”

“그래, 어차피 돌아갈 수 없으니 바람에 실린 소식이라도 듣거라. 허나, 니 몸은 이미 이 나라의 것이니라.”

그녀는 혹여 분한 마음에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들킬까봐 앞으로 모아 쥐었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이 폐하의 소유겠지요. 허나, 아드님이 폐하의 소유가 아니듯, 저 또한 폐하의 소유가 아니옵니다. 연고로 소녀, 이 나라의 소유도 아니옵니다.”

참아보려 했지만 고향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결국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뒤의 목소리는 어쩐지 침착했다.

“폐하라고 부르는구나.”

그녀는 뒤돌아 고개숙였다.

“죄송하옵니다.”

“그리고 아드님이라고 하는구나. ……. 되었다, 고개 들거라. 허나, 짐이 옥쇄를 내려놓기 전엔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만은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너와 너의 아버지의 왕국을 위한 유일함이니라. 잊지 말거라.”

그녀의 시아버지, 황제는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림자처럼 황제의 뒤를 따르는 문신들과 호위병들이 나갈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것이 드레스를 꼭 쥔 손과 더불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방문이 닫히고 방안이 고요해졌다. 그러길 한참, 이내 바람이 그녀의 침대맡까지 눈송이를 밀어 놓고서야 그녀는 고갤 들어 손의 힘을 풀었다. 고개를 든 그녀의 눈가엔 촉촉한 물방울이 맻혀 있었다. 그리고 뒤돌아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먼 곳에 있을, 달빛을 받아 고고하게 빛나곤 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성을 떠올렸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은 이미 하늘을 어지럽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 짊어진 겨울왕국의 백성들을 차마 내려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찾아뵙지 못할 정도로 구속된 몸에는 너무도 커다란 짐이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창을 감상에 젖어 있던 그녀는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마음은 이곳을 줄곧 거부해왔건만 어느새 이 따뜻한 공기에 몸이 적응해버린 것이다. 한숨이 나왔고 가슴에 얼음덩어리를 얹은 듯 무거웠다. 그렇지만 그녀가 이겨내야 할 운명이다.

테라스의 창을 닫으러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푸드덕거리는 날짐승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급히 뒤돌아 본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커다래진 동공 가득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들어찼다.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짓은 너무나 사뿐했다. 그 새는 반대편 테라스 난간에 내려앉았다. 집채만 한 몸집의 새였지만 테라스가 무너지기는커녕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날갯짓 소리조차 일부러 내지 않고서는 들릴 리가 없는 고요한 존재였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 숨을 헉, 들이마시며 비명이 나올까봐 얼른 입을 막았다. 놀람의 비명이 아니다. 반가움의 비명이다. 그 새는 바로 그녀의 고향의 새였던 것이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너무나 반가웠다. 이 남쪽지방에는 서식하지 않는 새였다. 몸집은 거대했으나 그 존재 속에 각인된 달의 힘 덕에 태어날 때부터 무게는 가벼운 존재였다. 은빛으로 빛나 달빛아래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깃털을 가지고 있다. 흡사 그녀의 머리칼 색깔과 닮아있었다. 고고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커다란 새는 고개를 숙여 새까만 눈을 그녀와 맞추었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다가가 부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여기…… 어떻게 왔니.”

‘창공과 바람의 여신’의 달이 뜰 때만 태어난다는 새. 그 커다란 새는 그녀의 고향에서 사냥꾼에게 길러지는 동물이었다. 신성함과 그 고고한 크기 덕분에 설원의 들짐승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거나 장거리 운송수단으로 길러졌다. 게다가 거주지가 한정되어 있는데다 특별한 신화를 가지고 있어서 절대 다른 나라로 반출이 되지 않는 동물이기도 했다. 그러한 이 새가 여기 있다는 것은 또한 이 새를 조련하는 사냥꾼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쪽에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시러 왔습니다.”

그녀는 그리운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새를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그 목소리에 또다시 가슴이 마구 뛰었다. 고개 숙인 새의 등에서 날쌘 남성 하나가 그녀의 옆으로 뛰어내렸다. 그녀와 똑 닮은 장발의 은빛 머리칼이었다. 소리없이 완벽하게 뛰어내린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너무나 그리웠던 목소리로 말했다.

“모시러 왔습니다. 누님”

그녀는 기쁨에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나 보고 싶던 그녀의 남동생이 그녀를 데리러 온 것이다. 현명한 그녀의 머리는 이 자리에 겨울 왕국의 왕자가 있을 수 있는 이유를 금새 알아차렸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그녀의 동생이 내민 손을 잡았다.

 

남쪽에 위치하던 항구의 나라는 황제의 승하 후, 망나니 왕자에 의해 나라가 반쪽이 나고 만다. 후에 역사학자들은 아들의 성격을 고치고 정국을 제대로 운영해 줄 겨울 왕국의 공주를 볼모로 잡아와 며느리로 삼았었으나 왕자가 바깥으로 도는 것을 강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타국에 강제로 혼인하여 온 공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무뚝뚝한 황제에게 그 책임이 크다는 평을 한다. (200*19)





으앙... 쓰다보니 세계관 커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생기고 인과관계라던가 벌어질 일들, 있었던 일들이 마구마구 생겨나는 바람에 손바닥만한 장편 소설로는 적합하지 않는 내용이 되어버렸네요;;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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