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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미안해 서울함
게시물ID : military_150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글로배웠어요
추천 : 11
조회수 : 2462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2/16 13:32:25

2함대에서 전남함이란 이름의 FF(호위함)을 타던 1995년.

오랜 항해를 마치고 인천으로 귀항하던 날.

우리는 이미 정박해 있는 서울함의 우현에 좌현을 계류하게 되었다.


해군에서는 서로 다른 급의 함정끼리 계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일이 좀 까다롭다.

우선 배 길이가 다르다보니 후갑판의 위치도 다르고

당연히 포의 위치나 각종 구조물의 위치가 다르다.

따라서 상대 함정에 방해되지 않게 현문을 설치하거나

육전(육상전원) 케이블 등 각종 구조물을 설치하려면 위치를 잘 맞춰야 한다.

하지만 서울함은 다행히 우리와 같은 FF이기 때문에

대충 현문 설치할 위치만 맞추면 된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위치가 맞지 않았다.

각각 함수와 함미쪽에 위치한 YTL(예인선)이 밀고 당기기를 여러번...

좀처럼 위치가 맞지 않았다.

도선사와 함장, 그리고 갑판장도 나름대로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겠지만

배가 이리저리 끌려 다닐 때마다 다른 배와의 직접 충돌을 막기 위해

휀다를 들고 뛰어 다녀야 하는 사람들도 머리가 아프기는 매 한가지였다.

- 해군에서 사용하는 휀다는 크게 고정식과 이동식 두가지가 있다.

고정식은 아예 정박 전부터 한곳에 고정해서 설치하는 것이고

이동식은 출입항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세밀한 곳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이 들고 다니며 대 주는 것이다.


한참을 씨름하던 배가 드디어 위치가 맞기 시작했다.

나는 충돌에 대비해 이동식 휀다를 들고

충돌이 예상되는 지점에서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함수와 함미쪽 YTL이 서로 싸인이 맞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도선사가 지시를 잘못 내린 건지

서울함과 우리 배의 함미가 불과 1m도 남지 않은 순간

갑자기 배 위치가 틀어져버린 것이다.

우리 배는 함미 모서리 부분으로 정확하게 서울함 함미를 가격했다.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마침 그 위치에 이동식 휀다를 대고 있던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쇠가 쇠를 갈아내는 육중한 소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전남함과 서울함은 함미 부포 갯수와 장비의 차이로 무게 차이가 있다.

우리 배보다 가벼웠던 서울함이 약 20cm 높았던 탓에

우리 배 모서리가 서울함 함미 훌넘버 있는 부분에 내 머리만한 구멍을 내고 말았다.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서울함 함장이 노발대발 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얌마!!! 휀다를 똑바로 대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너 이거 어떻게 책임 질거야?\"

\"....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남의 배에다 빵꾸를 내 놓고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

\"... 송합니다\"

\"이름이 글로야? 너 직별이 뭐야? 기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내 군생활이 끝나는구나 싶었다.

그 순간...

O-1 데크(중갑판)로부터 한줄기 서광이 비추는 듯 하더니

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서울함장. 거 왜 애를 갖고 그러나?\"

\"아 선배님. 아 글쎄 이 녀석이 휀다를 똑바로 안 대서...\"

\"내가 다 봤어. 우리애 잘못이 아니잖아. YTL이 잘못 밀어서 그런 건데\"

\"그래도 선배님...\"

\"내가 때워 줄까?\"

\"그건 아니구요\"

\"말 해. 내가 때워 줄게\"

\"아니 뭐... 괜찮습니다\"

\"퇴근하는 길이지? 오랜만인데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


그랬다.

우리 함장이 서울함장보다 사관학교 선배였던 것이다.

분명 서울함장은 피해자임이 분명했지만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끗발로 밀어붙이는 우리 함장에게 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뒤로 절대로 이동식 휀다를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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