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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 녹색 사회주의를 비판함
게시물ID : sisa_3700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1
조회수 : 22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3/10 01:37:29


필자가 아까 올렸던 글 - "좌파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글을 약간 비판하는 입장에서 써보려 함.ㅎ 필자의 입장은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스탠스고, 올렸던 글의 원작자, 서영표씨는 녹색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바, 혁명적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이를 좀 비판하는 소고를 밝히고자 함.


우선적으로, 이른바 평화, 통일, 세습반대라는 대 명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견이 없다는 거. 사회주의자로서, 평화 지향은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임. 왜냐하면,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평화라는 논리로써 귀결됨. 이는 당연한 것.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는데, 당연히 평화라는 것을 세팅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반대를 할 수 있겠음? 평화는 당연한 것임.


나아가, 통일. 분명 분단된 상황이 극복되어야 하고, 이런 분단 상황이 수많은 내적모순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통일이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그러나, 이 방법론에 대해서는 조금 모순이 있다는 거... 북한의 관심병스러운 행동과,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적 통일의 방향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지 못하면 통일이라는 것은 그저 구호에만 머무를 수 있다는 거.


세습 반대 역시, 그것이 자본주의적 논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이것을 비판해야 할 것. 이는 자본주의 비판의 미시적 연장선상이므로, 비판의 촛점은 "세습" 그 자체가 아니라, 세습 자체가 자본주의적 논리라는 측면에서 서술되어야 한다고 봄.


여기까지는 뭐, 크게 이견이 없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임. 


무엇보다, 글에서 내가 가장 크게 동의했던 부분은,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만이 진보정치의 대안이라 씨부리는 종자들에 대한 일침이었음.


둘째, 사이비 진보인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만을 진보정치라고 생각하는 진보세력과 대결해야 한다. 강남좌파 등의 소위 명망가들의 담론이 그것이다. 소위 ‘강남좌파’의 존재는 어쩌면 한국 진보좌파운동의 현실적 수준을 드러내 주는 말일지도 모른다. ‘강남좌파라’라는 범주 자체가 좌파의 무능을 드러내주는 치욕스러운 호칭이기 때문이다.


아주 적나라하게 까고 있는 부분인데,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으로 인해 사실상 진보정치의 본질이 상실된 사례가 적지 않음. 우리는 진정으로 진보의 대안을 고민하기 위해, 좌파 본연의 텍스트를 잃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거.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은 사실 거의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음. 우리는 이들을 견제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연합은 사실상 이들에게 헤게모니를 내어주겠다는 것. 그래서 내내 좌파들이 민주당 엄청 비판했던 것이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 글의 글쓴이, 서영표 교수는 진보의 대안으로서 '녹색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주장함. 그러나 난 여기엔 동의하지 않음. 우선 그의 주장을 간단히 살펴봅시다.


진보좌파의 재건은 시민운동-대중운동-지역운동을 통해 이루어져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좌파는 이러한 운동을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를 아우르는 이념으로 녹색사회주의를 제시한다.


이 주장을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사회주의라는 대의의 주체로서 노동계급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3 계급, 즉 "시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 즉, 시민이 주체가 되어 대중 운동을 이끌고, 지역 운동을 활성화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자는 논리. 그것이 곧 "녹색 사회주의."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 주장은 한계점이 너무나도 많다는 거. 우선 이들이 이야기하는 시민 계급, 즉 제 3 계급으로서의 시민계급 자체가 불명확함. 그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사회적 주체로서 상정되기엔 너무나 추상적인 집단이라는 것. 또한, 거진 대부분 시민계급이라고 보통 이야기하면 프레카리아트, 혹은 프티 부르주아 정도를 시민이라고 일컬었음. 즉, 이데올로기적으로 굉장히 자유주의적 언어에 가까운 것이 바로 "시민 계급"이라는 형용모순이라는 거.


이런 점에서 주류 녹색운동이 제기하는 생산, 소비,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이러한 과제는 자본주의체제의 변혁 없이는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개인의 결단이나 정신수양에 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체제와 구조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녹색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시장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에서도 나와 있듯, 녹색 사회주의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며 변혁적 사상을 이야기 함. 그러나,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불투명하기 그지 없음. 귀찮아서 붙여넣기는 안했으나, 본문을 읽어보면 녹색 사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써 글쓴이는 "지역으로부터의 급진정치"를 주장함. 그 대안으로써 협동조합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논리의 주요한 논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적 공동체의 한계를 비판하며, 그 것의 대안적 탈시장화 공동체로 나아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함.


요컨대,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런 지역 운동으로부터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정립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이라는 대의를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


난 여기에 대해 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 HOW? 어떻게? 간단히 말하면, 이들에게 미시적 수준의 실천 과제 자체는 매우 명료함. 그러나, 거시적 수준에서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비판할 담론은 굉장히 협소하고 한정적임. - 즉 생태중심의 논리로 시장자본주의를 비판하나,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가 낳는 내적 모순, 즉 착취와 소외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비판점을 제공해주지 못함. 따라서, 이들의 미시적 주장, 즉 협동조합이라던가 지역 공동체라던가 하는 대안적 관계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이들이 지니는 근본적 한계 - 즉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혁할 것인가에 대한 텍스트의 부재에 대해서는 비판되어야 한다고 봄.


녹색 사회주의 역시 사회주의 운동의 한 조류이긴 하지만, 난 이것이 부정될 이유도, 그렇다고 무작정 긍정될 이유도 없다고 봄. 최소한, 미시적 수준에서 이들의 주장은 매우 탄력적이나 거시적 수준에서 근본적 변혁에 대한 텍스트가 부재한다는 건, 이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자본주의 체제의 급진적 변혁이라는 대의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한다고 봄. 


자본주의는 변혁되어야 한다는 거. 녹색 사회주의는 과연 이런 변혁에 대해 어떤 텍스트가 존재하느냐는 것. 이것이 나의 비판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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