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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게시물ID : military_1849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eio
추천 : 145
조회수 : 13441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3/04/02 00:34:06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아니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 말로 부대안에서 분대장 노릇을 하는 강병장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부대 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창고정리 중인 1종계원에게 건빵과 맛스타를 얻어먹은 것을 비롯으로 

보급관에게 붙잡혀 작업을 하고나서는 포상 외박증을 한장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칠개월 동안 휴가 구경도 못한 강병장은 외박증이 손바닥에 떨어질제

거의 눈물을 흘릴만큼 기뻣었다.


그의 부분대장이 복통으로 꿀럭꿀럭 거리기는 벌써 반나절이 넘었다. 조식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맛다시 한 첩 써본일이 없다.그는 아프다는 놈에게 자꾸 의무대에 보내 눕혀놓으면 재미가 붙어 아프지도

않은데 의무대에 또 간다는 자신의 신조에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무대에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의되 반듯이 누워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눕는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로 심해지기는

아침에 빅팜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강병장이 오래간만에 월급을 타서 빅팜 하나를 사다 주었더니 강병장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놈이 

천방지축으로 전자렌지에 넣고 돌렸다. 마음은 급하고 이쑤시개로 옆을 트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놈이 

젓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 하더니만 그날 아침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홉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때 강병장은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놈, 조롱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강병장은 앓는 이의 조인트를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강병장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점심때부터 콜라가 마시고 싶다고 분대장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놈! 빅팜도 못 먹는 놈이 콜라는,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내무실 문을 나설 때였다. 뒤에서 '강병장!'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부대 보급관 인 줄 강병장은 한 번 보고

알 수 있었다. 보급관은 다짜고짜로, "강병장 오늘 작업한번하지?"라고, 물었다. 아마도 오늘까지 하기로 한 작업이 늦어졌기 때문이리라.

작업을 하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짬좀 찬 병장들은 짱박혀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강병장을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작업 말입니까?"하고 강병장은 잠시 주저하였다. "그래 작업" 하고 보급관은 초조한 듯이 바라보았다. 혼잣말 같이, "김병장은 의무대에

있고, 박병장이 어디 짱박혔던가.."라고 중얼거린다. "포상외박증 한장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강병장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놀래었다. "포상외박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보급관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지금까지 한 작업으로 치면 한장 주실때도 됐지요. 또 이런 진날에 작업인데 한장 주셔야지요." 하고 웃는 강병장의

얼굴에는 숨길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삽질을 하는 강병장의 팔은 이상하게 가뿐하였다. 삽질을 한다기 보다는 거의 굴삭기로 땅을 파내는듯 하였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px에서 그의 동기 이병장이 나온다. "여보게 강병장 자네 작업하고 오는 모양일세그려. 월급도 탔을테니

한잔 빨리게."  px안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냉동짬뽕을 돌리는 전자렌지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곱창이며

만두며 과자며 초코파이... 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탁자에 강병장은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 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우선 분량많은 냉동짬뽕을 한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순식간에 냉동짬뽕 한그릇과 곱창볶음 한 판을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강병장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초코파이 두개를 까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콜라를 부어라 하였다.

 이병장은 의아한 듯이 강병장을 보며 '여보게 또 먹다니, 벌써 우리가 먹으것만 2만원일세' 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이만원이 그리 끔찍하냐. 내가 오늘 작업해서 대박을 쳤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무슨 대박을 쳣단 말인가?"

"포상외박증을 받았어, 포상외박증을! 이런 젠장맞을 콜라 왜 안부어... 괜찮다 괜찮다, 막먹어도 상관이없어. 이번주면 외박나가는데.."

그러더니 강병장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이병장은 어이없어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강병장은 코를 들이마시며, "내 휴가가 짤렸다네."

"뭐. 휴가가 짤리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에끼 미친 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짤렸어, 참말로... 정량제에 정기까지 다 짤려놓고 내가 콜라를 마시다니... 내가 미친놈이야 미친놈이야." 하고

강병장은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이병장은 흥이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인사과로 가세, 가." 하고 우는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강병장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짤리긴 누가짤려"하고 득의가 양양.

"짤리긴 왜 짤려, 생떼같이 남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휴가가 나를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사람이 정말 미쳤다 말인가. 나도 철수휴가가 취소된다는 말은 들었는데."하고, 어느 정도 불안을 느끼는 듯이 강병장에게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다음날 뉴스에서는 북한 뽀글이가 또 다시 핵실험을 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강병장은 불안한 와중에도 a급전투복을 다리고 

인사과에 다달았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TV뉴스 속보만이 들릴뿐이다. 

강병장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인사과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놈. 고참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 놈."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 말로 제 몸을 엄습해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외박증을 들이밀 새도 없이 목청을 있는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놈, 주야장천 앉아만 있으면 제일이야! 외박자가 와도 왜 일어나지를 못해."라는 소리와 함께 외박증을 몹시 던졌다.

하지만 휴가통제가 걸렸다는 느낌이 있었다. 외박증을 보여줘도 보람이 없는 걸 보자 강병장은 인사계원에게 달려들어 

"이놈아, 말을해,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놈!"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이놈아, 통제란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통젠가버이."

그러다 고개를 끄덕거린 인사계원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 뽀글이! 이 뽀글이! 왜 내가 안나갈땐 가만히 있고 지금 그러느냐 응."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강병장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뻣뻣한 a급전투복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강병장은 미친듯이 a급전투복에 얼굴을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전투복을 다려놓았는데 왜 입지를 못하니.. 왜 입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어제는!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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